프로의 세계에서 '몸값'이란 곧 선수 본인의 가치이자 자존심이다. 현역 수명이 짧은 운동선수들에게는, 보통 일반인들이 평생에 걸쳐 모을 재산을 20~30대 사이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벌어놓는 것이 목표다. 제약된 시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 부담도 크지만, 잘 풀리면 남들은 평생 동안 이루기 힘든 '대박'의 꿈을 한 순간에 이룰 수도 있다. 이는 프로스포츠 선수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한번쯤 FA 대박을 꿈꾼다. 한국야구에는 1999년부터 FA 제도가 생기면서 고액 연봉자들이 대거 늘어나기 시작했다. FA 제도는 스타급 선수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인생역전의 신세계를 개척했다. 한편으로 국내 야구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몸값 폭등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과 '먹튀(고액 계약 후의 성적 하락을 비하하는 말)'의 양산이라는 부작용도 따라왔다.

점점 치솟는 FA 몸값... 효율은 글쎄?

 LA다저스 류현진이 한국 투수로는 처음으로 미국프로야구에 데뷔한 해에 두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류현진은 3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벌어진 시카고 컵스와의 방문경기에서 선발 등판, 5⅓이닝 동안 2실점 하며 4연승과 함께 시즌 10승(3패)째를 수확했다. 사진은 류현진이 이날 경기 1회말 공을 던지는 모습.

LA다저스 류현진이 한국 투수로는 처음으로 미국프로야구에 데뷔한 해에 두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 연합뉴스


올해 프로야구는 역대 최대 규모의 FA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FA 총액이었던 523억 원을 뛰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의 경우 롯데 강민호가 4년 총 75억 원으로 국내 FA 역대 최고계약을 경신했다. 이를 비롯해 한화 정근우(4년 70억 원)-이용규(4년 67억 원) 등 FA 1~3위 기록이 모두 경신됐다. 투수 최대어였던 삼성 장원삼도 4년간 60억 원에 계약을 체결하며 역대 투수 FA 최고액을 기록했다.

이번 FA 시장은 삼성의 윤성환과 안지만, SK 최정, 롯데 장원준 등 지난해 이상의 대어급 선수들이 넘쳐난다. FA 신청 선수만 사상 최다인 19명이다. 각 구단은 외부 FA 선수를 최대 3명까지 영입할 수 있게 됐다. 내년부터 10구단 시대를 맞이하며 수준급 선수들에 대한 수요가 더욱 높아진 반면, 공급은 부족한 실정이라 자연히 선수들의 몸값은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직업의 특성을 감안해도,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기 힘든 '수십 억 원대 계약'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가는 국내 야구 FA 시장이다. 야구팬들과 정서적 위화감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선수 입장에서야 일생에 1~2번밖에 없는 FA 기회를 통해 높은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현재 FA가 과연 투자한 비용 대비 제값을 하고 있느냐다. FA 몸값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잠시 정체 조짐을 보이다가 최근 2~3년 사이에 다시 급격하게 치솟는 추세다. 2004년 심정수(4년 60억 원) 이후 멈춰있던 FA 최고액이 10년 만에 강민호의 75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올해 야수 최대어 최정은 시장 가치를 감안할 때 FA 사상 첫 100억 원 시대를 여는 것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프로야구 탄생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곡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들인 몸값에 비하여 그만큼의 활약을 해준 선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류현진, 윤석민, 이대호, 오승환, 김광현 등 국내 최정상급 선수들은 FA 자격을 얻으면 해외진출에 먼저 눈을 돌리는 시대다. 국내 구단들도 정상급 선수들을 지키기 위하여 이제 배팅의 규모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이나 미국과 정면으로 경쟁하기는 어렵다. 냉정히 말해, 진짜 일류 선수들은 해외로 떠나고 그에 다소 못 미치는 선수들을 잡기 위하여 몸값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거품 논란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FA 최고액을 경신한 강민호의 경우, 98경기에 출장해 타율 0.229(310타수 71안타) 16홈런 40타점 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수비에서 나름 안정된 투수리드와 우수한 도루 저지로 공헌했다는 점, 다년계약 중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섣부르게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롯데가 강민호를 잡기 위해 쏟아 부은 천문학적인 비용이나 '공격형 포수'로서의 기대치에는 전혀 부응하지 못한 성적표인 것도 사실이다.

사실 강민호의 몸값 거품 논란은 지난해 FA 계약 때부터 우려되었던 부분이다. 강민호는 사실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다.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는 대형 포수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국가대표 출신이며 만 20대에 불과한 강민호는 충분히 거액을 안길만한 '희소성'이 있는 선수였다. 강민호가 몇 남지 않은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간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 등 내부 FA들을 잇달아 놓친 롯데로서는 강민호마저 잃을 경우, 전력의 타격도 타격이지만 여론의 부담도 컸다.

강민호를 비롯한 다른 고액 FA들도 대부분 투자 대비 효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난 시즌보다 개인 성적이 오른 선수는 거의 없다. 그나마 한화 정근우가 125경기 타율 0.295·32도루·91득점, 삼성 장원삼이 11승 5패 평균자책점 4.11을 기록했다. NC 이종욱이 타율 0.288·78타점·73득점을 올리며 자기 몫을 해준 선수들로 평가된다. 베테랑 선수의 경우,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팀 공헌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발휘한 리더십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올해 타고투저 열풍과 선수들의 전성기 평균치를 감안하면 만족할만한 성적도 아니다. FA의 목적이 결국 지나간 성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가치라고 했을 때 고액 FA들의 몸값에 지나치게 거품이 끼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해 FA 영입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것을 한화였다. 한화는 정근우-이용규 영입을 비롯하여 내부 FA 선수들을 잡는 데 들인 비용까지 감안하면 무려 178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화의 팀 성적은 3년 연속 꼴찌에 그쳤다. 한화 다음으로 FA에 많은 돈을 투자한 롯데도 7위에 머물렀다. 반면 한때 FA 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던 삼성은 최근에 이렇다 할 외부 FA 영입 없이도 내부 단속과 선수육성만으로 통합 4연패를 이뤘다.

고액 FA...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아

국내 프로야구에서 고액 FA는 성공보다 실패사례가 더 많다. 과거에는 FA 선수들의 취득시기가 너무 늦은 탓에, 많은 선수들이 전성기가 지나가는 상황에서 FA 자격을 얻는 경우가 많다보니 실패 위험도 높았다. FA 초창기에는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몸값 대박을 달성한 이후, 목표의식을 상실하거나 혹은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았다.

주목할 부분은, 비교적 성공한 FA 선수 중에는 원 소속팀과 재계약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화 송진우(2000년), SK 박경완(2003년), 삼성 박한이(2014년)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FA 선수 중 선방한 장원삼도 원 소속팀과 재계약한 사례다. 삼성 양준혁(2001년)은 LG 소속이었지만 FA자격을 얻어 친정팀으로 귀환한 경우다. FA일수록 자신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심리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선수생활 후반부에 엄청난 몸값을 받고 팀을 옮겼다가 낭패를 본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삼성 심정수(2005년), LG 홍현우(2001년)-진필중(2004년)-박명환(2007년), 롯데 이상목 (2003년)등은 FA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다.

물론 드문 예외도 있다. 2008년 SK에서 LG로 옮긴 이진영이나, 두산과 롯데를 거치며 꾸준하게 장수하고 있는 최준석은 팀을 옮기고도 성공한 'FA 모범생'의 전설과도 같다.

꾸준한 성적과 내구력은 성공한 FA들의 필수요소다. 기량은 녹슬지 않았어도 FA 계약 이후 잦은 부상으로 좌절한 선수들은 수두룩하다. 지난해 강민호나 이용규의 경우, 이미 FA 전부터 개인 기록이 꾸준히 하락세였고 부상 전력도 있었다.

올해 FA 최대어로 꼽히는 선수들에게 우려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최정은 올해 타율 3할 5리를 기록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올 시즌 82경기 출전에 그쳤다. 윤성환은 꾸준함이 강점이지만 삼성이라는 리그 최강팀에서 누렸던 수혜를 무시할 수 없다. 장원준은 5시즌이나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으나 2011년 커리어 최다인 15승을 거둔 것 외에는 1·2선발급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 없었다. 장기계약을 해야 하는 구단 입장에서는, 과연 이 선수들이 국내 FA 최고액을 배팅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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