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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행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한 시간을 헤맸다.
 델리에서 바라나시로 행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한 시간을 헤맸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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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에서 델리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비좁은 침대칸에서 나와 함께 칼잠으로 누워 있는 이준씨의 어깨를 흔들었다.

"오줌 안 마려워?"
"전 괜찮은데요."
"그려, 그럼 그냥 자."

오줌보와 함께 폭발한 성질... 버스를 세우다

암리차르에서 출발한 지 세 시간쯤 지났는데도 버스는 휴게소에 멈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10시쯤에 버스가 출발했으니 밤 열두 시가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운전기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승객들이 잠든 버스 안에서 홀로 온몸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이준씨가 옆으로 누워 있던 몸을 바로 세우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운전기사한티 얘기하믄 적당한 곳에서 세워 준다던데요."
"좀 더 버텨 보고..."

버스는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 시간을 더 달렸다. 단전에 힘을 모아 오줌보를 붙잡고 있던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버스 기사 앞으로 다가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듯 운전석을 보호하고 있는 유리 칸막이를 툭툭 쳤다. 운전석 옆에서 졸고 있던 차장이 눈을 꿈뻑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얼마나 더 가야 화장실에 갈 수 있습니까?"

버스 차장은 귀찮다는 듯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려 이내 눈을 감아 버린다. 나는 다시 칸막이 문을 두드렸다.

"오줌을 싸야 하는데..."
"당신 자리에 가서 앉아 조금만 기다려 봐요."

그러고 30분 이상을 지나도 버스는 쌩쌩 달리기만 했다. 우리는 버스 맨 뒤 칸에 타고 있었기에 창문을 열고 볼일을 볼까 싶을 정도로 다급해져 다시 운전석 앞으로 다가가 차장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귀찮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요."

버스 안의 독재자가 따로 없었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화를 폭발하면 오줌보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오줌 줄기와 화를 꾹꾹 눌러 참아가며 십 분쯤 지나 버스를 세우지 않으면 여기서 싸버리겠다고 말할 기세로 다시 운전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구원병이 나타났다. 말끔하게 생긴 인도 청년이 내 뒤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는 차장과 운전기사에게 명령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나도 볼일을 봐야 하니까. 당장 버스 세워!"

그리고 5분도 채 안 돼 적당한 장소에 버스가 멈춰 섰다.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나서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도로변 곳곳에서 바지를 까 내리고 볼일을 봤다. 이들 역시 오줌보를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호되게 당한 기분이었지만 시원한 오줌 줄기에 활활 타오르던 화 기운이 꺼졌다. 모든 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내 앞에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나시에 가기 위해 델리 빠하르간지에서 하루를 묵었다.
 바라나시에 가기 위해 델리 빠하르간지에서 하루를 묵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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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새벽 무렵에 델리 빠하르간지에 도착했다. 델리에서 각자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열차표를 예매하기로 했다.

연극배우 이준씨는 낙타 사파리를 경험하기 위해 카톡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자이살메르로 떠나기로 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줄곤 함께 해왔던 현정이, 지희, 순이는 인도 유학생 주상씨와 함께 타지마할로 목적지를 잡았다.

나 역시 본래 예정지였던 바라나시로 떠날 준비를 했다. 바라나시에서 한국에서 알고 지낸 이 선생과 카톡을 통해 알게 된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연재 글을 즐겨 찾아 읽었다는 그녀, 나처럼 처음 인도 여행을 하고 있고 그것도 홀로 인도 여행을 감행하고 있다는 겁 없는 그녀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본래 콜카타에 자리한 마더 테레사의 '죽음의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델리에 도착하자마자 홀리 축제에 막혀 열차표를 예매하지 못해 일정이 뒤틀려 버린 것이다.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대략 만나기로 한 날짜가 일 주일이 넘었기에 델리와 캘커타의 중간 지점인 바라나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들 각자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따로 있어 바라나시는 나 혼자 떠나야 했다. 어느 정도 인도에 익숙해져 인도 어디든 혼자 떠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인도 밤거리보다도 더 골치 아픈 열차 예매가 문제였다.

우리 일행은 델리에 도착해 서로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델리에 도착해 서로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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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 놓고 젊은 친구들과 한국식당에 들러 모처럼 한국 음식을 먹었다. 본래 내가 가지온 옷은 단 벌이었기에 150루피짜리(우리 돈으로 3천원 정도) 헐렁한 윗 옷을 구입하고 나서 무작정 델리 역으로 향했다. 어떻게 표를 예매할 것인지는 가보면 알겠지라는 심정으로 외국인 전용 열차 예매 사무실로 찾아 갔다. 때마침 그곳에 이준씨가 와 있었다. 몇몇 외국인들 역시 이준씨처럼 열차 예매를 위한 서류를 앞에 놓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부분 열차표 구입 용지에 코를 박고 안내 직원에게 검사를 맡아 다시 작성하곤 했다.

이들은 그나마 영어가 통하기에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마저 '깡통'이었다. 이준씨가 작성 요령을 겨우 터득했다는 용지를 그대로 베끼다 시피하여 열차표를 구할 있었다. 이준씨가 없었다면 비지땀을 뻘뻘 흘려가며 개고생 했을 것이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 까지 기차로 열두 시간 이상 걸린다 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기 위해 저녁 시간대의 열차표를 끊었다. 다른 기차역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열차표 예매 용지 한 부를 필사해서 보관해 두었다.

젊은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이 돌아왔다. 열흘 동안 서로를 의지해 가며 여정을 보냈던 젊은 친구들과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늦은 저녁 델리 역으로 향했다. 드디어 온전하게 혼자가 되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인도현지인들. 나는 바라나시행 열차 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한 시간을 헤매야 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인도현지인들. 나는 바라나시행 열차 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한 시간을 헤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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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역
 델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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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기 위해 한참을 헤매야 한다는 사전 정보에 따라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갖고 델리 역으로 향했다. 델리 역에 도착하자마자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차표에 적힌 번호에 따라 플랫폼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열차 칸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열차는 보통 1, 2, 3등 칸으로 나눠져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주로 1, 2등 칸을 이용하는데 1 등급은 에어컨이 나오는 3A, 2A, 1A로 표시되어 있고 내가 이용할 열차 칸인 SL(Sleeper Class)은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2등급이라 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3등 칸은 인도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3등 칸을 이용할 현지인들이 길게 줄어 서 있었다. 중간에 새치기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경찰인지 역 관리인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손에 들려 있는 작대기로 새치기 하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후려치며 질서 유지에 나서고 있다.

기차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나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기차표에 적혀 있는 번호를 머릿속에 몇 번이고 숙지해 가며 어슬렁어슬렁 열차 칸을 찾아 나섰다. 길게 이어져 있는 열차는 어림잡아 백오십 미터는 넘어 보였다. 열차칸이 보이지 않아 결국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아무리  찾아 봐도 기차표에 적혀 있는 열차 칸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삼십 분쯤을 헤매고 다니다가 인도 현지인들이나 열차 관리인들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가며 기차표를 내밀어 보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 가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뒤쪽으로 가보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 기차표 번호와 맞다 싶은 열차 칸으로 올라탔다.

열차 안으로 들어서자 인도 현지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며 좌석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과 함께 사람들 사이를 비좁고 들어가 기차표에 적혀 있는 번호와 같은 좌석을 찾았다. 땀을 훔쳐가며 겨우 자리를 찾았다 싶었는데 인도 현지인 몇몇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기차표를 내밀며 말했다.

"거기 내 자리인데요."

영어를 할 줄 모르는지 내 좌석 번호에 앉아 있는 그는 딴 짓을 한다. 옆에 앉아 있던 인도 청년이 내 표를 유심히 보더니 열차 칸을 잘못 선택했다며 내려서 SL칸을 다시 찾아보라고 한다. 알고 보니 3등 칸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었다.

"어이구, 환장하건네!"

배낭을 챙겨 메던 내 입에서 한국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손전화기를 열어 보니 출발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배낭이 꽉 끼어 빠져 나가기조차 힘든 3등 칸 열차 밖으로 겨우 빠져 나왔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열차 관리인에게 물어물어 올라탔는데 이번에 올라탄 열차 칸에는 내 기차표와 맞는 좌석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아, 죽겠구먼."

어리버리한 시골 영감 처음 타 보는 기차 놀이가 따로 없었다. 부리나케 다시 그 열차 칸에서 내려 SL칸이 있다는 앞 쪽을 향해 뛰었다.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인가 보다. 평소 여유만만하게 늘어지는 인간이 허둥대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동안 젊은 동료들에게 의지해 별 탈 없는 여정을 보내오다가 비로소 낯선 땅 인도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추레한 옷차림, 텁수룩한 수염에 봉두난발의 긴 머리, 생김새는 전혀 서두를 것 없어 보이는 내가 땀을 벌벌 흘려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에게 쫓겨 기차를 잡아타야만 목숨을 부지할 것만 같은, 혹은 시간에 쫓겨 떠나는 애인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허둥대는 꼴이 딱 내 모습이었다. 카메라 앵글이 나를 집중적으로 포착해 롱 테이크로 따라 붙었다면 가히 볼 만했을 것이었다.

한 시간을 헤매고 나서 천신만고 끝에 열차 칸을 찾아 지정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한 시간을 헤매고 나서 천신만고 끝에 열차 칸을 찾아 지정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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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로 향하는 8시 40분 행 기차가 떠날 예정이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정 좌석을 찾지 못하면 아무 곳이나 퍼질러 가면 되지 싶어 일단 SL이 찍혀 있는 열차 칸에 올라탔다. 열차가 역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땀인지 빗물인지 온몸이 젖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기차표를 꺼내 좌석 번호를 확인했다. 기차표를 들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였다. 꽁지머리를 한 젊은 동양인이 손을 내밀며 영어로 말했다.

"열차표 좀 보여주실래요?"

그는 내 열차표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땀에 훔뻑 젖어 있는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여기, 내 바로 옆 자리네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초보 여행자들에게 악명 높다는 인도 열차타기,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난 훈련병처럼 배낭을 내려놓고 꽁지머리 사내 옆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혹독한 인도 적응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태그:#델리행 버스, #화장실, #바라나시행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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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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