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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는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3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1만여 명의 농민들은 쌀시장 전면 개방에 이어 한중FTA협상을 졸속 타결한 박근혜 정부를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언론에서 한중FTA 협상 결과를 양호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일선 농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형을 내동댕이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상 결과에 숨어있는 불편한 진실

정부는 한중FTA 농업 협상 결과에 대해 전체 농수산물 2240개 품목 중 개방협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품목이 612개, 개방 폭을 소폭 확대한 품목이 670개 등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액을 기준으로 60%가량을 완전개방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협상 결과에 매우 만족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언론 역시 농업 분야에서 '선방'했다며 동의하는 모양새다.

정부 주장의 핵심은 사실 한미FTA 등 기존에 체결한 FTA와 비교해 농업 분야의 개방 폭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당국은 관세 완전 철폐대상에서 제외된 품목과 수입액의 숫자를 최대한 포장하려 했다. 이는 실제로 FTA가 체결되어도 관세를 낮추지 않아도 되는 상품의 목록(초민감 품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 목록에는 산양고기, 면양고기, 토끼고기, 키위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거나 아예 생산되지 않는 품목들이다. 관세를 15년 내지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낮추게 되는 '민감품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말고기, 칠면조 고기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니아 새'라는 타조과의 조류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산양고기, 말고기, 토끼고기, 기니아 등이 중국에서 수입되면 국민들이 국산 닭고기, 돼지고기 대신에 이들을 소비할 것이라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목록은 협상 관계자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이다. <한국일보>의 취재결과에 의하면, 협상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생소한 이름들이 많았고 생산량도 적은 것들이 많아 관련 부처에 확인했더니 부처 의견이 아니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된 맨데이트(의무사항)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은, 정부당국이 세계적인 키위 수출국인 뉴질랜드와의 FTA 협상에서 키위를 무관세로 전면 개방하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중국산 키위는 '초민감품목'으로 분류해놓은 것이다. 이런 조치가 한국 농산물 시장을 방어하는 데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쌀 또한 협상에서 제외했다고 하지만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내년부터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어 중국을 포함한 기존 수출국들과 반드시 추가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장관회의 참석자들이 일선 협상관계자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목록을 만든 이유는 결국 한중FTA의 협상의 실상을 가리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이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농민들에게 한중FTA가 훨씬 위협적인 이유

정부는 한중FTA 협상 결과로 한국 농업의 피해가 적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현재 한국 농산물 시장의 현황과 농산물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허황된 논리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 농산물 시장은 안전성을 보장받기 힘든 값싼 외국산 농산물로 흘러넘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질 좋은 국내 농산물은 생산비용조차 건질 수 없는 낮은 가격 때문에 시장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산지에서 그대로 폐기처분되고 있다. 지난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산지에서 곧바로 폐기된 농산물은 약 44만6000톤이다.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면 289억 9700만 원 어치로 한 해 평균 7만 4000톤, 48억 원 어치가 폐기된 셈이다.

중요한 사실은 산지에서 폐기되는 농산물의 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원인은 수입농산물 증가 때문이다.

만약 농산물도 공산품처럼 상하지 않고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공급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수입농산물로 인한 피해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본래 농산물은 계절과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저장에도 한계가 있다. 저가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내 농산물이 산지에서 폐기되는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배추나 무, 대파, 양파 등 신선채소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일반 농민들 입장에서 한미FTA보다 한중FTA가 위협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미FTA의 경우는 협상 상대국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신선한 먹거리를 수입할 수 없고 대부분 냉동된 상태의 농산물과 빵 등 가공식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은 한국과 매우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신선식품이 수입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게다가 음식에 사용하는 재료 역시 유사한 측면이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들여올 수 없는 배추, 무, 양파, 고추, 고사리 등 많은 중국산 식재료들이 이미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중국산 신선식품의 수입 가능성을 열어주고 말았다. '전자적 서류 제출', '48시간 내 통관 원칙', '부두 직통관제' 등과 같은 수입절차와 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이 전격 타결된 것이다. 중국산 신선식품이 수입되기 시작하면 국내 농업은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김치와 같은 중국산 가공식품이 더 많이 수입되는 경우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일례로 중국 김치의 수입량이 늘어나면, 국내산 김치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김장할 때 사용하는 각종 국산 야채와 양념채소까지 팔리지 않는다. 산지에서 폐기되는 농산물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한중FTA 협상결과는 농민들에게 폐업 선고를 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도시민들은 더 이상 국산 농산물을 사먹는 것이 불가능한 날이 멀지 않았다. 한중FTA협상이 이대로 국회에서 비준된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중FTA, #중국 농산물, #수입 개방, #중국산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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