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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도 여자야!"
" 귀찮은데 뭘 이런 것을 자꾸 주니? 난 동안이래서 이런 것 필요없어."
"엄마! 사람을 만날때 그 사람에게 항상 나의 좋은 모습으로 보여주면 좋잖아. 그리고 엄마도 이런 것 안 하면 언제고 한 방에 훅 간다니깐!"

아이가 요즘따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항상 건네주는 것이 있다. 자기 전에 항상 꼭 하고 자라는 팩이다. 처음에는 붙이는 것을 박스로 사다 주었는데 한 번도 하지 않고 그냥 두다가 서울의 작은 아이가 죄다 썼다. 그 뒤 부터는 붙이는 것이 아닌 그냥 크림처럼 바르고 그냥 자는 수면팩이라는 것을 사주었다.

그리고 이런 화장품만이 아니라 내가 평소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 스카프라든가 또는 파스텔톤의 색상이 있는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 월급 받을때 마다 사준다. 그리고 생일이나 어버이 날 같은때도 작은아이와 의논해서 샤프하고 맵시나는 여성적인 것을 골라준다.

곰곰 생각해보니 아이가 이렇게 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겨울에 내가 인사동에 전시회를 한 이후이다. 작년에 인사동에서 2주간 전시했을 때 10여년 전부터 알았다가 소식이 끊겼던 팬을 만났다. 전시장을 찾아오고 내 작품의 고객이 되었다가 전시장을 철거할 때 온갖 허드레일을 마다 않고 도와줘 절친이 된 그 친구 이야기를 해 줬는데 그 뒤부터인 것 같다. 

내 작품을 좋아해주고 자기의 친구들에게도 소개해주어 그저 고맙게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칠순때부터 치매기가 있는 폐암의 팔순이 넘은 모친을 12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간병하는 참 보기 드문 효성을 지녔다. 그 뒤부터 보이지 않는 귀한 심성이 느껴지고 은근히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간간이 늙은 노모를 어디론가 현대판 고려장처럼 하는 언론보도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노모를 우리나라 최고의 폐암권위자에게 치료를 받게 하고 12년동안 간병하느라 집 한채가 날라가 버렸다. 그럼에도 그의 삶의 일 순위와 중심은 오직 '아픈 엄마' 위주로 돌아간다.

언젠가 붓을 잡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기 어머니와 남처럼 지낸다고 했을때 왜 그러냐고 물었다. 노모가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고 자기가 어릴때 부터 편협하게 차별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고 현실적으로 어머니가 어떤 잘못을 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낳아준 것 만으로 그 모든 것은 덮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말했는데 상대방이 언짢아 하길래 그 다음부터는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게 됐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노모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인 그 팬을 만나고 해가 여러번 바뀌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좋아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작가선배뻘 되는 어떤 왕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미레 짐작하고 앞서나가며 말한다.

"넌  몇 년 있으면 환갑이야! 남자라는 것은 거의 대접받기만을 원하는 사람들이고 더구나 치매엄마라니...어휴!  괜히 이제 살만하고 자리잡았는데 사서  고생하지 말고 여태처럼 곱게 곱게 살아!"
"내가 뭐 어쩄다고...만약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면 안되남?"
"뭐야? 장난하지마! 모두 다 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고 좋아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는 헬렌켈러를 좋아해서 그녀처럼 책을 많이 보았으며 베토벤처럼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가가 아니지만 음악기획을 하고 음악을 취미로 한다. 그리고 운보 김기창을 좋아하여 그처럼 붓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수해지구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가톨릭신부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사회복지사가 되어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흘러 갈증난 사람들의 목을 적셔주는 그러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내게 글씨를 배우러 온 순박한 사슴눈의 어떤 아가씨를 좋아해서 그녀를 비롯한 여성장애인을 위해 운동도 십년 넘게 했다. 

그처럼 치매와 폐암을 비롯해 최근에는 췌장염과 담석 수술을 받기도 한 온갖 병이 든 팔순 엄마를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따스하게 모시는 사람을 좋아하면 나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깊은 병이 들었을때 그 친구처럼 진정한 마음으로 돌보지 않을까?

이왕에 사는 세상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싶다. 그래서 그 사람의 좋은 것 하나를 찾아서 본 받고 닮게 되는 것 같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씩은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선생인 것 같다. 왜 한 가지 뿐겠는가...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좋은 세상이다' 라는 시귀처럼.

나는 아직 사무실에서 한 해사엄의 마무리를 위한 평가서류와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내년 사업의 확보를 위해 어느 국비지원 전자운영시스템에 등록을 해놓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아마도 딸아이가 준 수면팩을 잔뜩 바를 것이다. 그러면 종일 김장하느라 빛과 바람에 약간은 푸석하고 피곤한 피부는 생기를 되찾을 것이고, 딸이 엄마에게 전해 준 따스한 사랑에 가슴은 더 촉촉해질 것이다.

그리고 환갑이 다 되어가는 중년이 훨씬 넘은 여인이 아닌,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 만년 새내기 같은 소녀 하나가 웃으면서 거울 속에 있을 것이다. 혼자 일어나고 잠드는 하루가 무수히 반복되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충만한 느낌이다. 이 느낌이 내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동력인 것 같다.


태그:#양성평등인식개선, #가족친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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