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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에도 동네서점은 여전히 불안해보인다. 학창 시절을 함께 해 온 동네의 작은 서점이 최근 서가 한편을 휴대폰 대리점으로 개조하고, 또 다른 서점은 프랜차이즈 카페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대다수의 동네서점에 들어서면 반은 참고서, 나머지 반은 베스트셀러가 가득 차 있다. 팔릴 것 같은 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대형서점의 독과점에 운영 자체가 힘들어지다 보니 책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누군가는 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 동네서점의 소멸이 당연한 것 아니냐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네서점의 위기를 초래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독과점으로 인한 불공정 경쟁이다. 그리고 아직 완전하지는 않으나 이 불공정 경쟁으로부터 동네서점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도서정가제다.

서점 한편에 휴대폰 대리점이 들어서 있다
 서점 한편에 휴대폰 대리점이 들어서 있다
ⓒ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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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은 독자들이 가장 가까이서 책과 지역사회를 접할 수 있는 장소이다. 동네서점은 대형 체인서점과는 달리, 소비자와의 소통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서점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을 드러내는 곳이다. 지역민의 필요가 반영된 장소이기에 서점으로부터 마을의 분위기, 독서문화, 특성 등을 유추할 수도 있다. 고시촌의 서점과 테헤란로의 서점이 그 구성부터 다르듯 말이다. 동네서점은 이처럼 작은 지역사회와 같다.

그런데 이 작은 지역사회에서 서점도 책도 사람도 가격에 압도당해 버렸다. 승자독식 시장구조가 책을 상품으로, 서점을 이윤 창출의 장소로 고착시켰다. 물론 책 역시 상품이다. 그러나 상품인 동시에 문화적 공공재이기도 하다. 오늘날 냉혹한 시장논리 앞에 문화적 공공재로서 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들 가치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적자생존 외에도 지속 가능한 상생의 방식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공동선의 추구이다. 이는 함께 '연대'를 이루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역사회와 동네서점의 '연대' 그리고 선순환

첫째로 지역과 서점의 연대를 이야기하고 싶다. 동네서점은 경직된 기업형 서점과는 달리 운영과 구성면에서 유연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유연성을 '지역'의 삶을 반영하는 데 사용하면 어떨까? 동네서점은 지역민의 관심사와 동향을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장소이다. 소통이 부재하는 대형 체인서점과는 달리, 동네서점에는 소통이 존재한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일본의 '이하라 하트숍'은 서가와 군것질거리, 생필품이 공간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청년이 연애상담을 하러 오고 할머니가 잡지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등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동네 서점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00명 남짓의 인구와 전문 지식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특성을 반영해 마을 주민의 일상소통을 한 데 모은 것이다.

이 서점의 운영자 이하라 마미코는 지역과의 관계가 깊지 않으면 사람이 적은 곳에서는 동네서점이 버티기 어렵다고 한다. 예측 가능한 데이터로 잘 팔리는 책에 의미를 두기보다 한 명의 독자에게 한 권의 책을 전함으로써 서점과 지역의 색채를 버무려가는 것, 이는 동네서점만이 가능한 일이다.

허스파이어 북스(Hearthfire Books)의 북클럽 진행 모습이다.
 허스파이어 북스(Hearthfire Books)의 북클럽 진행 모습이다.
ⓒ 허스파이어 북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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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파이어 북스(Hearthfire Books)에서 어린이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허스파이어 북스(Hearthfire Books)에서 어린이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 허스파이어 북스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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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례가 미국의 '허스파이어 북스'다. '허스파이어 북스'는 성인과 아동 모두에게 비슷한 비중을 두고 운영되는 서점이다. 덕분에 이 서점에서는 쇼핑하는 동안 자녀들을 안심하고 서점에 보내는 부모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역 학교와의 돈독한 관계 또한 신뢰감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서점은 성인 북클럽과는 별개로 지역 학교와 함께 서점에서 책모임을 진행하는데, 이로부터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매월 학교 도서관에 책으로 반납하고 있다. 운영의 유연성을 활용해 서점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위의 사례처럼, 동네서점은 지역 유지를 위한 환경에 관심을 지닌다. 이는 다시 서로의 이해관계를 향한 재투자를 가능케 한다. 지역민은 다시 여기에 동참하며 지역적, 문화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선순환을 낳는다. 지역은 선순환에 참여하고 또 흡수할 수 있는 좋은 앞마당이다. 서점은 소비자가 윤리적 소비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며, 서점인이 지역사회에 맞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서점이 지역과 연대를 맺었을 때 '사람'과 '책'의 지평은 더욱 확장된다.

동네서점끼리의 연대, 지속 가능한 경제의 출발

둘째로 '서점과 서점의 연대'다. 동네 서점은 대형 서점에 비해 취급하는 도서의 종류, 베스트셀러 기여도, 발주 물량 등이 적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처진다. 주목할 점은 '연대'를 통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NET21'은 중소서점에 대한 차별적인 관습에 대항해 형성된 서점조합이다. 납품 우선순위가 대형 서점인 탓에 동네 서점에는 책이 입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NET21은 조합의 이름으로 주문을 모아 일괄 발주하는 방식을 취한다. 10곳의 가맹점이 따로따로 5권을 발주했다면 NET21의 이름으로는 50권을 주문하는 셈이다.

그 결과 NET21은 대형서점 못지않은 발언권을 손에 넣었다. 또한 NET21은 조합원들의 데이터를 출판사와 유료로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같은 책이라도 판매 추이가 다른 경우, 서점과 출판사가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로부터 발생한 이윤 및 출자금은 조합원들의 운영 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된다.

북센스의 로고
 북센스의 로고
ⓒ 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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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점협회(ABA)를 필두로 전국적 캠페인을 벌인 사례가 '북센스'다. 북센스는 동네서점 활성화 및 인식 개선을 위해 전개된 연대적 캠페인이다. 그들은 통일된 로고와 포스터를 사용하고 북센스 전용 온라인 매장을 개설했으며 북센스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상품권을 발권했다.

또한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책보다는 북센스 가맹점의 추천서를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만들어 지역 매체와 홍보 활동을 펼쳤다. 동네서점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가 꾸려지다 보니 출판사는 대형서점 한 곳이 아닌 여러 동네서점을 동시에 존중해야 했다. 미국 서점협회는 북센스 베스트셀러를 출판사와 함께 홍보할 수 있도록 추진했다. 미국 전역에 동네서점 활성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이다.

위의 사례들은 서점이 연대를 통해 부가가치 향상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북센스 마케팅 고문인 칼 레너츠는 이를 두고 "개개인의 노력을 모아 의도된 관중에게 렌즈를 통해 레이저 광선을 쏘는 것과 같이 빠르고 효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서점과 서점의 연대는 개개인에게 공동의 힘을 실어준다. 또한 지속 가능한 경제형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모든 연대가 지속 가능한 경제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연대로 지속 가능한 경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조합 자체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조합원의 상호 부조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동네서점, 의식전환과 방향모색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큰 일본과 미국에서도 '연대'를 하나의 대안으로 보는 사례들이 있다. 여기에는 물론 역사적 저변부터 서점과 연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초기 서점들이 인쇄·출판업자 및 우편국의 역할을 맡으며 마을의 거점 역할을 하였기에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막중했다.

일본의 경우는 책을 '本(근본 본)'이라고 쓰는 것에서부터 책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해 서점을 엄격히 단속하였고, 전후 폐허가 되었을 당시 서점 재건을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삼았다. '책'과 '서점'의 중요성을 꿰뚫고 있던 것이다.

적자생존의 논리가 당연시 여겨지는 세태에 이러한 역사적 저변은 큰 힘을 지닌다. 서점에 공공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이들을 토대로 연대를 이룰 수 있으며 문화 자체가 큰 조력자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산 마두동에 위치한 알모책방의 모습이다.
 일산 마두동에 위치한 알모책방의 모습이다.
ⓒ 알모책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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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책방에서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저자와의 만남이 열리고 있다.
 이음책방에서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저자와의 만남이 열리고 있다.
ⓒ 이음책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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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사회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서점들이 존재한다. 일산의 '알모책방'은 지역민과 협력해 서가를 구성하고 있으며, 종로의 '이음책방'은 시민단체와 협력해 공공성을 확장하여 여러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얼마 전 시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신촌의 '홍익문고'는 5층 창고를 세미나실로 개조해 독서모임 및 시민단체에게 개방해주고 있다.

이들이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지역과의 상생관계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점끼리 연대를 도모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협동조합 및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조차 저미한 우리 사회에 사회적 연대 구축은 여전히 낯선 단어다.

일상을 둘러보면 연대를 형성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SNS를 활용할 수도 있고 식사 한 끼를 서점인들과의 시간에 할애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서점대상(서점인의 투표로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는 이벤트)'은 서점인들의 회식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시작되었으나 현재 전국적으로 자리 잡으며 지방 소도시에서도 이와 유사한 각종 서점대상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서점인들도 지역에서부터 이와 같은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간다면 동네서점의 지평은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특히나 SNS를 활용한 지역특성화사업이 번지고 있는 지금, 서점인들의 활발한 연대 및 기획이 새로운 저자 발굴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지역 북 페스티벌까지 연결될 수 있다. 동네서점의 연대는 지역민과 신뢰를 주고받는 것이자 더 나은 출판환경을 제시하는 일이다.

소비자 신뢰 없이는 도서정가제 소용없다

이번 도서정가제 개정은 분명 우리 출판 생태계의 상생을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정치적 장치는 뒷받침 조건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채로 제도가 올바르게 작동할 리 없다. 도서정가제가 제2의 단통법이라는 오해가 불거졌지만 여전히 서점은 밥그릇 싸움에 심취해 있다. 이렇듯 적자생존은 동종업자에게 불신을 준다. 업계의 이러한 분위기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신뢰 관계를 허물어버린다.

반면 연대는 적자생존 외에도 다른 생존방식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뢰를 나누는, 소비자에게 윤리적 소비라는 생활 속의 정치를 실천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소비자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도서정가제는 소비자에게 얄미운 제도로만 인식될지 모른다.

서점은 소비자를 출판의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곳이다. 소비자와 함께하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일 또한 서점의 역할이다. 이를 동네서점이 함께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이 뿌리내린 거주지에 관심을 지니는 법이며 지역의 선순환을 원한다. 책은 상품이자 동시에 문화적 공공재이기에 지역사회의 선순환을 형성하기 적합한 매체다.

'사람의 필요'가 중심이 되는 곳,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동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졌을 때, 책이라는 상품을 내놓으면서도 여기에 담긴 사람과 지역과 지식과 문화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 나갈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외침은 그저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


태그:#동네서점, #출판, #도서정가제, #중소서점, #서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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