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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80년대 후반기 '전자오페라' 3부의 완성과 함께 정보 지식 시대에 걸맞은 하이테크(첨단기술)와 위성 아트를 결합해 '정보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꽃피우다. - 기자의 말

80년대 중반부터 '로봇 연작' 시작

백남준과 무어만이 같이 서 있는 이 사진 뒤로 '로봇가족(Family of Robot)' 중 하나인 '숙모(1986)'가 보인다. 이 사진은 지금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임영균 사진 근접촬영.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과 무어만이 같이 서 있는 이 사진 뒤로 '로봇가족(Family of Robot)' 중 하나인 '숙모(1986)'가 보인다. 이 사진은 지금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임영균 사진 근접촬영.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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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개한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최초의 획기적인 쌍방형 위성아트로 "난 이걸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랑할 수 있다"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백남준은 이 작품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 위성아트와 함께 또 하나의 연작을 선보였는데 그게 바로 '비디오 조각'으로도 불리는 '로봇 연작'이다.

1964년 처음 백남준은 로봇아트 'K-456'을 탄생시켰고. 이 작품은 1982년까지 살아 있었으나 휘트니전 홍보를 위한 해프닝 형식으로 해체했다. 그 후 1985년 후반부터 부모, 삼촌과 숙모, 조부모 등을 모델로 한 '로봇가족'을 시작, 2000년 이후까지 이어진다. 여기를 클릭하면 1986년 '로봇가족' 연작을 볼 수 있다. 백남준이 80년대 이후 고가의 전자제품을 쓰다 보니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 이렇게 예술성과 상업성이 반반씩 뒤섞인 '로봇 연작'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로봇에는 백남준의 멘토인 '케이지', 절친한 친구인 '보이스', 예술 파트너 '무어먼'뿐만 아니라 '단군'은 물론이고 고대 '기마 인간'에서 현대 '키치 인간'까지 다양하다. 그 뿐 아니라 동서의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등 예컨대 히포크라테스, 아인슈타인, 슈베르트, 데카르트, 쿠베르탱, 세종대왕, 채플린, 이태백, 정약용, 율곡 등도 등장한다.

그의 로봇을 본 관객들은 기계적인 전자 매체에 사람의 온기와 감정으로 옷을 입혀 놀라워했다. 그가 주장하는 '기계의 인간화'의 구현이라고 할까.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 탈춤에서 보는 생동감 넘치는 전통미와 서구 하이테크의 현대적 조형미를 융합했고, 익살스러운 유머 감각과 동심도 더해졌다.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해야 앞선다

"현대의 경쟁은 소프트웨어의 경쟁이다. 현대 회화가 룰이 있는 게임이라면 현대 무용은 룰이 없는 게임이다... 따라서 춤은 소프트웨어 속의 소프트웨어이다."
-1986년 월간지<춤(11월호)>중에서

여기서 보듯 백남준은 모든 예술과 하이테크에서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사례로 현재 소프트웨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은 '구글'이고, 이 회사는 세계를 통으로 지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망한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에 서툴러서였을까. '삼성'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언제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백남준은 인터뷰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반복한다. 9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관객과의 만남에서도 누군가 '예술의 미래 전망'을 묻자 백남준은 농담처럼 "전엔 냉장고, TV를 갖고 싶어 했고 이젠 집마다 자동차, 비디오도 있잖아. 이런 하드웨어가 다 있거든. 이젠 제대로 놀아야 하니까 그걸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해"라고 답했다.

소프트웨어의 정신은 무엇인가? 이에 관한 해석은 무궁무진하다. 정치적으로 투명한 민주 사회의 하이테크에는 유연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백남준은 우리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기에 국제적으로 팔 수 있는 예술은 무게 없는 음악, 무용, 무당 등 시간 예술뿐이라며 이를 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시간의 색채'라는 전시 글에서 "1915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비틀스'가 '슈톡하우젠(전자음악 창시자)'보다 더 존경을 받게 됐다며 앞으로 시대는 소프트한 비틀스 타입의 화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성오페라 '3부작'으로 지구가 하나임을 증명

'바이 바이 키플링'에서 '제국TV' 안에서 얼굴을 내민 백남준. 1985-1986. 차도르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건 동서 문화의 불통으로 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이슬람문화권을 말할 수도 있고, 이슬람문화권의 여성의 억압을 상징할 수도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중에 근접 촬영한 전시물
 '바이 바이 키플링'에서 '제국TV' 안에서 얼굴을 내민 백남준. 1985-1986. 차도르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건 동서 문화의 불통으로 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이슬람문화권을 말할 수도 있고, 이슬람문화권의 여성의 억압을 상징할 수도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중에 근접 촬영한 전시물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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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오페라 '3부작'을 만든 백남준의 의도는 '마르코 폴로 이후 동서가 동시에 볼 수 있고, 시공간 개념을 넘어 동서가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다. 1부 '굿모닝 미스터 오웰', 2부 '바이 바이 키플링', 3부 '손에 손잡고'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백남준은 '동양의 정보를 서양에 제대로 전달해 동서양이 한 가족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독일 록 연주, 페테르부르크 음악, 빈의 재즈 오케스트라, 브라질 삼바 춤, 예루살렘 콜테 마마 무용에 중국의 베이징무술과 한국의 사물놀이, 일본의 전통 음악 등이 소개된다.

백남준은 <예술과 통신> 전시 도록(현대화랑 1995)에 '별들의 랑데부'라는 글에서 '칠월칠석'에 황소를 끄는 총각별 '견우'와 베를 짜는 처녀별 '직녀'가 여름밤 꿈 같이 만났듯 동서가 그렇게 랑데부하는 이야기로 번안했다고 밝힌다. 이런 전설은 백남준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일으키는 동력이 됐다.

1986년 사건 중 백남준의 절친한 지기인 보이스가 1월 23일 타계한 일은 뺄 수 없다. 백남준은 그에 대한 오마주로 모자를 쓴 보이스를 '로봇'으로 만들고, 1985년 일본에서 공연할 때 같이 찍은 사진으로 병풍을 제작해 거기에 '보이수(普夷壽)'라는 이름도 써 넣었다. 1990년에는 보이스 '추모굿'도 벌였는데 이는 다음 기사에 소개한다.

백남준 I 요셉 보이스('보이스 복스' 중에서) 4폭 병풍 165×79cm 1988. 백남준이 1986년 타계한 보이스를 애도하며 만든 병풍과 뒤로 백남준의 첫 전시와 보이스와 관련된 사진이 보인다. 이 사진도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백남준 I 요셉 보이스('보이스 복스' 중에서) 4폭 병풍 165×79cm 1988. 백남준이 1986년 타계한 보이스를 애도하며 만든 병풍과 뒤로 백남준의 첫 전시와 보이스와 관련된 사진이 보인다. 이 사진도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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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반발

그럼 여기서 위성아트 2부 '바이 바이 키플링'과 3부 '손에 손잡고'를 더 알아보자. '바이 바이 키플링'은 영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시인 키플링이 "동은 동, 서는 서이니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ver the twain shall meet)"라고 한 노래에 반발하며 만든 작품이다.

백남준은 동은 동이고 서는 서가 아니라, "동이 서이고 서가 동이 될 수 있다"는 동양의 일원론적 철학에 근거해 서구인이 가지는 아시아·아프리카를 미개국으로 보는 문화 제국주의적 관점을 한방에 날려버리며 이에 대한 고별을 선언했다.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안 게임에 때를 맞춰 나온 '바이 바이 키플링'은 1986년 10월 3일 서울, 뉴욕, 동경을 연결해 위성으로 방영됐다. 한·미·일 3국이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위성 쇼 사회자는 86아시안게임의 의미와 88올림픽 게임 그리고 한국이라는 개최국의 의미를 같이 소개했다.

뉴욕에서는 미국의 팝 작가 '해링', 프랑스 조각가 '아르망'이,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건축가 '이소자키', 패션디자이너 '이세 미야케'가, 그리고 한국의 고싸움, 사물놀이, 정경화와 정명훈의 연주 장면, 황병기 가야금 연주와 한강 노들 강변이 소개됐고, 아시안게임 마라톤경기가 최초의 여성 마라톤주자의 해설로 중계됐다. 백남준도 이 프로그램에 등장해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와 지구본을 주고받는 게임을 보여주며 지구는 평화의 터전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을 맞아 백남준은 예술과 스포츠도 맛있게 칵테일 할 수 있다며 인류 공존의 정신이 담긴 '손에 손잡고'를 선보였다. 위성아트가 다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소통을 이루는 매체'임을 알린 것이다. 여기선 구소련의 작품도 소개해 이념을 넘어 지구를 하나로 감싸는 '참여TV'의 단면도 보여줬다.

다양성을 찬미한 백남준의 '다다익선'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과 그 주변 타원형벽면에 강익중이 소리와 영상을 결합해 산수화형식으로 만든 종합매체작품 '삼라만상(2009)'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과 그 주변 타원형벽면에 강익중이 소리와 영상을 결합해 산수화형식으로 만든 종합매체작품 '삼라만상(200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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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88년 10월 26일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높이 18.5m, 지름 7.5m의 거대한 철골에 1003대(10월 3일 개천절) TV 모니터를 설치한 총 7단 규모의 철골 구조로 만든 기념비적인 백남준 작품 중 하나인 '다다익선'을 선보였다.

부인 시게코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러시아혁명시절 구성주의 작가이자 건축가인 블라디미르 타틀린(1885~1953)이 디자인한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에서 착안해 제목을 '타틀린을 위한 헌정'으로 붙이려 했으나 이 제목이 한국에서 말썽의 소지가 있자, 보다 함축적인 뜻이 담긴 '다다익선'으로 작품명을 바꾼다.'다다익선'이라는 제목은 민주 사회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정보 사회에서 TV·신문·잡지·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해석도 가능해 잘 어울린다.

초대형 작품을 하다 보면 항상 돈과 사람이 문제가 된다. 백남준은 손수 삼성을 찾아가 1천 대 TV 지원을 약속 받고 나니 설계자 선정이 또 남았다. 마침 백남준 경기중학교 후배인 건축가 김원이 발 벗고 나서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백남준은 국내에 거주하지 않아 지구 반대편에서 2년간 손발을 맞춰가며 고생한 끝에 완성했다.

두 작가의 인연은 휘트니미술관 '2인전'에서

1994년에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강익중 2인전'이 열렸을 때 두 작가의 모습. 부자(夫子)처럼 많이 닮았다.
 1994년에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강익중 2인전'이 열렸을 때 두 작가의 모습. 부자(夫子)처럼 많이 닮았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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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태어났다. 2009년 2월 6일 강익중 작가는 백남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의 바깥 벽면에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까지 들리는 음향을 부착하고 3×3인치 패널로 만든 '삼라만상'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두 작가가 극적으로 만나면서 기운 생동하는 멀티 아트의 대장관을 연출했다.

두 작가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 그해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포함 2인전이 기획돼 그는 작가를 모색 중 30년 후배인 강익중을 추천했다. 백남준은 자신이 독일에 있으면서도 휘트니미술관 관계자에게 "난 괜찮으니 강익중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팩스를 보낼 정도로 그를 배려했다.

모 월간지 대담에서 강익중은 '2인전' 오프닝이 끝나고 백남준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백 선생이 "30세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며 그 때 "현대 미술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현재에 끌어들였다"라는 점을 이해했고, "그는 낮에도 별을 보는 무당, 서커스에서 외줄 타는 광대'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강익중은 백 선생을 한 손에는 비전과 미래를 쥐고 다른 손에는 과거와 전통을 든 광대라고 지칭하면서, 그가 말하는 미래는 몇 백 년 뒤가 아니라 1000년 뒤였고 그가 말하는 과거는 1000년 전 과거였다며 가만히 앉아서 그는 그렇게 2000년을 한순간에 오갔다고 전한다.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제작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석판화 1998. 8명의 혁명가 왼쪽부터 '장 폴 마라', '루소', '올랭프 드 구주', '당통', '디드로', '자크 루이 다비드', '로베스피에르', '볼테르' 이 사진도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 I '전자요정_진화·혁명·결의' 석판화 1998. 8명의 혁명가 왼쪽부터 '장 폴 마라', '루소', '올랭프 드 구주', '당통', '디드로', '자크 루이 다비드', '로베스피에르', '볼테르' 이 사진도 '강남문화재단 역삼1전시실(11월 23일까지)'에서 열리는 <백남준 에디션>에서 전시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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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명성이 날로 커지자 1989년 프랑스 정부는 혁명 200주년을 맞아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바로 '전자요정(La Fée Électronique)'이다. 이 연작은 '석판화(진화·혁명·결의)'와 'TV로봇'으로 나뉜다. 여기에 나오는 8명의 주인공은 '마라', '루소', '구주', '당통', '디드로', '다비드', '로베스피에르', '볼테르'다.

백남준은 프랑스혁명에 대해 자국인보다 더 깊게 이해했고, 이에 대한 역사 인식은 예리했다. 게다가 자국인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프랑스 여성 혁명가 '올랭프 드 구주(1748-1793)'를 발굴해 소개한다. 그녀는 혁명기에 여성 참정권이 주장했고, 흑인 노예를 반대했으며 여성의 이혼권 등을 옹호하는 소설과 희곡도 썼다.

그는 8명의 계몽가에게 부제를 붙여 혁명 정신을 재조명했다. '장-폴 마라'는 <암살>, '루소'는 <노자 자연>, '구주'는 <프랑스여성>, '당통'은 <웅변>, '디드로'는 <여씨춘추(백과사전)일자천금>, '다비드'는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 '볼테르'는 <이성과 자유>가 부제로 붙었다.

백남준 I '당통(Danton)' 구형TV 12대 290×234×70cm 1989. 아모레 퍼시픽미술관 소장.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자요정' 연작 중 하나로 이 작품은 당시 파리의 번화가 '샹제리제'에 유리커버를 씌어져 전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백남준 I '당통(Danton)' 구형TV 12대 290×234×70cm 1989. 아모레 퍼시픽미술관 소장.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자요정' 연작 중 하나로 이 작품은 당시 파리의 번화가 '샹제리제'에 유리커버를 씌어져 전시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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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혁명은 바로 '정보 아트'

1989년 작 백남준의 '자화상'을 보면 낡은 모니터 속에 TV 안경을 쓰고, 청동 마스크를 한 백남준이 출연한다. 또 동양사상을 연상시키는 '불상', 시간예술을 상징하는 '시계', 전자아트를 암시하는 '자석', 지구촌을 뜻하는 '지구본', 서구 음악을 뒤집은 '그랜드피아노', 비디오아트를 떠올리는 '비디오테이프' 등이 나온다.

더불어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게 무슨 혁명인가? 그것은 아마도 '정보 혁명'일 것이다. 백남준은 60-70년대엔 공간과 소리를 시간과 영상으로 전환하려 했다면, 80-90년대 이후는 "정보가 석유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정보 지식 시대가 왔음을 알렸고, 이는 현대 미술의 과제인 경제적 부도 창출할 것으로 봤다.

백남준 I '자화상(Self Portrait)' 혼합재료 비디오조각 61×69×40cm 1989. 소마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백남준 I '자화상(Self Portrait)' 혼합재료 비디오조각 61×69×40cm 1989. 소마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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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보아트는 74년 이미 언급한 문자·영상·소리가 언제 어디서나 장벽없이 전달되는 시대 '전자초고속도로' 개념에서 시작됐다. 90년대 클린턴 정권에서 이를 '정보초고속도로'라고 이름을 붙여 대선 공약에 내놓자 백남준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도용됐다고 크게 항의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오래 전부터 뉴욕 '타임스퀘어'와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거대한 TV스크린을 설치해 365일 내내 서로 대화의 장을 여는 탑을 세우고 싶어 했다. 위성 오페라 3부작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다문화·다인종 사이에서 관계망을 연결해 공생하며 사는 것이 그의 유토피아였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보의 공유'다.

그는 또 이런 정보 공유를 가능케 하는 '미디어(영매)'나 '네트워킹'의 뿌리를 노자의 '도(道)'사상이나 불교의 '연기론'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뛰어난 정보 유전인자를 가졌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기술과 금속활자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도 문제 없는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발명했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백남준이 요약한 비디오아트를 여기 소개한다, "하나의 원이 있다. 예술(art)이다. 또 하나의 원이 있다. 정보 통신(communication)이다. 이 두 원이 겹치는 대추씨 같은 모양이 비디오아트다. 비디오아트는 대추씨처럼 딱딱하다" 그렇다면 비디오아트란 TV, 비디오 등 하이테크와 첨단 정보 기술을 '예술화'했다는 뜻인데, 이것 또한 정보 아트의 핵심이 아닌가. 여기서 딱딱하다는 건 '오래 간다'는 은유다.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 에디션] 전 역삼1문화센터 전시실에서 2014년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강남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크게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 그리고 백남준과 로봇이란 측면에서 백남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인물과 사물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또한 백남준이 활동하던 시기의 여러 기록 사진을 전시해 196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 현장의 모습과 백남준의 퍼포먼스 그리고 1989년 프랑스 정부가 혁명 200주년을 맞아 백남준에게 의뢰한 '석판화(진화·혁명·결의)'도 볼 수 있다.

백남준의 뉴욕 소호스튜디오(22) 1983. 사진: 임영균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백남준의 뉴욕 소호스튜디오(22) 1983. 사진: 임영균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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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남준, #보이스, #강익중, #김원, #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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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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