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복숭아나무>의 감독 구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영화 <다우더>로 세 번째 장편영화 연출에 도전한 배우이자 감독 구혜선.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감독' 구혜선이 영화 <다우더>로 세 번째 장편 영화를 내놓았다. 2010년부터 2년마다 한 편씩이다. <요술>(2010) <복숭아나무>(2012) 모두 흥행 면에서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구혜선은 무던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 앞에 내놓았다. 그에게 "배우 활동에 집중하라"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딸에 대한 기대감에 그릇된 욕망을 투영하는 엄마(심혜진 분)는 산(현승민, 구혜선 분)이에게 공포를 넘어 분노의 대상이기도 하다. 잔혹하다 싶을 만큼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옥죄는 엄마, 그 엄마라면 자신의 딸을 '도터'(Daughter)라 부르지 않고, 잘못된 발음 '다우더'로 부르지 않았을까. 이 희한한 발음은 곧 딸에 대한 엄마의 왜곡된 시선을 고스란히 상징한다.

"난 좋은 본보기의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다우더>의 포스터.

영화 <다우더>의 포스터. ⓒ 구혜선


"극 중 엄마라면 '도터'를 그렇게 발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제목을 짓긴 했어요. 작년 겨울에 한창 아동 학대 기사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 그리고 동시에 자녀의 인권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었죠. 단순히 모녀 관계만 바라보지 않고, 주입식 교육과 일방적인 강요를 하는 기성세대에 대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제 고민도 담았어요. 제가 혹시 엄마가 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우리 엄마가 하던 대로 하면 될지, 누구에게 배워서 해야 하는 건지 등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사랑을 주는 존재지만 종종 그 사랑이 옳지 않다 느낄 때가 있잖아요. 그릇된 기대나, 내가 원치 않는 부모의 보수적 성격을 난 대물림 안 할 자신이 있을지 그런 생각도 담았죠."

전작 <복숭아나무>가 삶과 죽음에 대한 구혜선만의 개성적 시각을 담았다면, <다우더>에선 삶과 죽음을 인지하기 직전까지 우리가 맺는 관계에 천착한 듯 했다. 구혜선은 "사람들은 저마다 개성도 다르고, 처한 환경도 다르다는 걸 종종 까먹는 것 같다"며 "많은 분들이 적금을 붓고, 노후를 준비한다곤 하는데 당장 오늘이 즐겁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읊조렸다.

"전 당장 오늘이 즐겁고 싶어요. 계획을 세운다면 한 달에서 일 년 정도의 기간만 세우고자 해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10년, 20년 뒤에 행복할 거라고 우린 학습당하고 있죠.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젊었을 때 적금 열심히 부어서 50대에 여행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말이죠. 저도 지금은 젊지만 당장 건강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운명의 덫에 걸릴 수도 있어요.

다들 안 좋은 생각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해야 하는 생각 같아요. 저도 그렇고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안쓰러워요. 이건 진짜 기성세대가 잘못한 겁니다. 젊은 친구들이 좀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성세대가 안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본보기로 (영화를 연출하는 등) 무모하게 보이는 일을 벌이나 봐요(웃음)."

구혜선이 완숙했다고? "과거로부터 배워나가는 것 뿐"

  영화<복숭아나무>의 감독 구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구혜선 "저 역시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제가 가진 짐들을 최소화했어요.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이요. 근래에 인터넷을 보니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나 지방에 정착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자유를 원하는 거죠. 저도 언젠가 훌쩍 가버릴 수도 있어요(웃음)." ⓒ 이정민


같은 맥락으로 구혜선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가 크게 흥행하는 것보다는 그 의미와 내용이 사람들에게 공감받길 바라고 있었다. 한두 번도 아닌 세 번째기에 보다 세련됨을 갖추고 완성도를 기대할 법도 했지만 구혜선은 "첫 영화에서 한 실수를 두 번째 작품에서 하지 않고, 두 번째 때 벌인 잘못을 세 번째에선 다르게 접근해갈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저 영화를 하면서 남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 정도면 좋겠어요. 제작비 회수 정도는 생각하죠! (웃음). <다우더>에 출연해주신 심혜진 선배를 비롯해서 (배우들에게) 적지만 출연금을 드리긴 했어요. 공짜로 일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그건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최대한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는 게 최선입니다. 이번 영화의 공간 배경이 된 산이의 집도, 전세로 나왔지만 매매되지 않은 집을 빌려서 찍은 거예요. 도배만 새로 했죠."

연기든 연출이든 혹은 그림이든, 구혜선은 끊임없이 자기를 표현해왔다. 어쩌면 이렇게 꾸준할 수 있을까. 구혜선은 "결국 실패와 좌절에서 배운다"며 "영화로 돈 벌 생각하지 않게 됐고, 실패를 해보니 또 다른 실패도 두렵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최근에 느끼기 시작한 자신의 행복론에 대해 설명했다.

"저 역시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제가 가진 짐들을 최소화했어요.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이요. 근래에 인터넷을 보니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나 지방에 정착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자유를 원하는 거죠. 저도 언젠가 훌쩍 가버릴 수도 있어요(웃음). 우리나라는 '평균치'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TV에 흔하게 나오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도 평균적인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인상이 있죠. 그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면 못 사는 거라고 괴로워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한 달에 30만원을 벌더라도 자기 사는 것에 문제 없으면 좋은 거잖아요. 남을 따라가려고 하니 비참해지는 거 같아요. 저도 어릴 때 단칸방에서 살았고, 연탄불을 피워서 겨울을 났어요. 근데 그게 가난한 건지 인식하진 못했죠. 부끄럽지도 않았고요." 

 영화<복숭아나무>의 감독 구혜선이 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 구혜선 "지금 저도 무언가로 규정되는 게 두려워요. 다음 작품은 뭐할 거냐고 묻는 분도 계신데, 당장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내년에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엄마가 돼서 육아 프로그램에 나올 수도 있고요(웃음).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 이정민


그만큼 구혜선은 충분히 삶의 가치와 자신이 지향하는 지점을 알고 있었다. 배우와 감독, 혹은 엔터테이너 등 사람들이 뭐라 표현하든 자신의 길을 진정성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렸을 때야 막연하게 무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곤 했어요. 요즘 저도 자꾸 만나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고 있더라고요. 근데 사실 반드시 뭐가 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일을 한다는 건 좋은 거지만 과하게 일하니 괴로운 거라고 봐요. 아이들이야 어른들이 물으니 인위적으로 대답하는 거고요.

지금 저도 무언가로 규정되는 게 두려워요. 다음 작품은 뭐할 거냐고 묻는 분도 계신데, 당장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내년에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엄마가 돼서 육아 프로그램에 나올 수도 있고요(웃음).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이야 연기를 하고 있으니 마음이 식지 않는 한 계속 업으로 삼겠죠. 누군가의 인생을 강요하거나, 강요받고 싶지 않아요."

구혜선 다우더 심혜진 복숭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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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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