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죄수의 딜레마'나 '게임이론'을 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쉬 균형'이라는 개념을 만나게 된다. 게임이론을 그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죽은 이론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 실제 적용 가능한 생생한 논리로 만든 것이 바로 '내쉬 균형' 이론이다. 또 '죄수의 딜레마'야말로 내쉬 균형의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죄수의 딜레마는 이제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관련기사 : '죄수의 딜레마'와 세월호사건의 공동정범) 널리 알려진 개념이므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내쉬 균형'에 대해서도 한 번 접근해 보기로 한다.

<비협력 게임>에 등장한 '내쉬 이론'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포스터.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내쉬 균형 이론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미국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가 1950년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발표했던 <비협력 게임>이라는 겨우 27페이지의 짧은 박사 학위 논문을 통해서였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원 입학 시절부터, '역사상 가장 짧은 대학원 추천서'라는 일화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내막은 이렇다.

그의 지도 교수가 내쉬의 입학을 위해 프린스턴 대학원에 추천서를 한 장 보냈는데, 그 추천서에 담겼던 내용은 '이 사람은 천재다( This man is a genius )'라는 단 한 줄짜리 문장뿐이었다.

올해는 그가 내쉬 균형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지 20년째 되는 해다. 불행히도 젊은 시절 정신 질환을 앓는 바람에, 그는 논문이 발표된 지 44년 후인 1994년이 돼서야 논문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당시 노벨상 위원회는 매우 이례적으로, 수학자인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했다. 수학의 영역으로만 한정하기엔 그 이론의 무게가 너무도 컸던 것이다.

2002년 개봉작 <뷰티풀 마인드>는 바로 이 존 내쉬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그는 내쉬 균형 이론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는데, 그가 논문을 발표했을 때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했다.

영화는 내쉬가 이론적인 영감을 받았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들렀던 한 술집에서 존 내쉬는 친구들과 재기발랄한 토론을 벌인다. 때마침 그곳에 나타난 어떤 금발 미녀를 사이에 두고 친구끼리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친구 A : 그녀가 나타났다 제군들~
존 내쉬 : 금발이 매력 있다고 느끼는 사람?
친구 B : 결투로 결판낼까?
친구 C : 니들 다 잊어버렸어?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생각해봐.
친구 A, B, C, D ( 동시에 ) : 경쟁에서 개개인의 야망은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한다.
친구 C : 맞았어! 지당하신 말씀!
친구 D : 실패한 사람은 군침 흘리기 없기~
존 내쉬 : 난 실패 안 해. ( 친구들이 잡담하는 동안, 금발 아가씨를 쳐다본다. 한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갑자기 희열에 찬 표정을 지으며 ) 애덤 스미스는 틀렸어!
친구 C : 대체 뭔 소리야?

애덤 스미스에서 도전한 22세의 존 내쉬

존 내쉬 : 우리가 저 금발 아가씨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피 흘리며 싸우면, 아무도 여자를 잡지 못해. 꿩 대신 닭이라고 그녀의 친구들한테 접근하면, 그녀들은 아마도 우릴 무시할 거야. 대타라면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아무도 금발을 넘보지 않는다면? 싸움도 없고, 그녀 친구들도 기분 상할 일이 없겠지. 그게 다 같이 이기는 길이야.

애덤 스미스가 말하기를, "최고의 이익은 개개인이 그룹 안에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생긴다"고 했어. 맞지? 근데, 완전한 답이 아니야. 불완전해. 불완전하다고... 왜냐하면 최선의 결과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소속된 그룹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오기 때문이지. 애덤 스미스가 틀린 거야.

미녀를 놓고 벌이는 친구들의 논쟁 속에서 내쉬의 머릿속에 갑자기 '내쉬 균형'에 대한 이론적 영감이 마치 섬광처럼 떠올랐고, 그는 바로 그 순간,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경제학의 핵심 주제에 뭔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음을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는 그 영감을 토대로 작성된 박사 학위 논문을 통해, '여러 경제 주체들이 각자 자신들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은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 "경쟁에서 개개인의 야망은 집단의 이익에 이바지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겨우 22세의 존 내쉬라는 청년이 200년 만에 박살낸 것이다.

'내쉬 균형'이란, 경쟁자의 대응에 따라 각자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더 이상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내쉬 균형' 이론이 주는 시사점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의 존 내쉬.
 프린스턴 대학원 시절의 존 내쉬.
ⓒ EBS 지식채널e 화면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즉, '내쉬 균형'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에 관한 이론이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부터 기업 간의 경쟁, 그리고 경제학 및 심리학 혹은 국제 정치학 등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친구들과 모여 주문한 음식값을 N분의1로 내기로 한 저녁식사 상황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여럿이 식사하는 상황에서 값을 똑같이 나누어 치르기로 했다면, 옆의 친구는 비싼 스테이크를 주문하는데 나는 값싼 샐러드를 주문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상대적으로 값비싼 메뉴를 주문하게 되고, 그 결과 혼자서 밥을 먹을 때보다 더 비싼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글랜스와 허버만은 '저녁식사의 딜레마'라고 불렀다. 옆집, 뒷집, 앞집 아이들 모두 학원을 다니거나 사교육을 받을 때 우리 집 아이만 안 받을 수 없어 너도나도 다 사교육을 시키니, 사교육 시장은 과열 현상을 빚고 각 가정은 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게 된다.

여러 주유소가 모여 있는 상권의 경우, 인접한 주유소 가운데 어느 한 주유소에서 가격을 내리는 할인 전략을 사용하면, 덩달아 모든 주유소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저마다 할인 전략을 택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주유소가 할인 전략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이익이 결국 줄어든다. 휴대폰 보조금 정책을 둘러싼 이동통신사 사이의 갈등 또한 이와 똑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협력 문제 역시 마찬가지. 글로벌 경기 회복을 위해 두 나라가 서로 협조하느냐, 아니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 환율 전쟁 및 무역 마찰(배신)을 벌이느냐에 따라 내쉬 균형이 작용한다. 서로 '배신'에 해당하는 경쟁 구도로만 가면, 두 나라 모두 경제 부진의 늪에 빠진다. 그 여파로 글로벌 경기 역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1994년 이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북한 핵 문제도 같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가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이 최선임을 서로 알면서도, 좀처럼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갈수록 긴장만 고조되고 있다.

모든 갈등 속에 숨은 내쉬 균형
  죄수의 딜레마 상황 사례
 죄수의 딜레마 상황 사례
ⓒ 정소앙

관련사진보기


이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바로 죄수의 딜레마, 즉 내쉬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딜레마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든 딜레마의 원인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서 생기는 '배신' 때문이다. '신뢰'를 회복하면 문제는 곧바로 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세상사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로 수십 조 원의 국민 혈세가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반성은커녕, 이제 와서 무상급식이 문제란다. 그 돈이면 무상급식뿐 아니라, 지금 논란이 되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 역시 해결하고도 남는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혼 부부들에게 임대 주택을 한 채씩 제공하자는 야당의 제안에 대해서도 예산 문제로 시비를 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신혼 부부 임대주택 제안에 대해서는,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고 물어뜯기 바쁘다. '임대'라고 씌어 있는 글자를, '공짜', 혹은 '무상'이라고 해석하는 문맹 수준의 난독증에 대해서는 차라리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이 시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대선 과정에 '복지 문제'를 가장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복지 딜레마 벗어나려면, 신뢰부터 회복해야

지금 복지 문제와 관련하여, 포퓰리즘이라 주장하며 공격하는 게 타당한 시각이라면, 그 비난과 공격의 1차적 대상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연금제와 어르신 공약 파기에 이어, 지금 누리 과정 예산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했던 약속들을 하나하나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결국, 뒷받침 할 예산이 없는 공약들을 그저 사탕발림으로 나열해 국민을 속였다는 이야기다. 그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새누리당은 야당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부터 비판해야 한다. 그게 옳은 순서다.

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배신(背信)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이라는 뜻이고, 무치(無恥)는 '무치하다(부끄러움이 없다)의 어근'이라고 정의돼 있다. 지금 복지 문제에 관한한 '요람에서 무덤까지', 혹은 '유아에서 노인까지', 즉 국민 전체가 배신과 무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게 배신과 무치는 이제 아예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아마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당과 국민은 이를 믿을 수 없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각자 자신들에게 최선이라고 판단한 바대로 서로 부딪치며 달려가고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정치권 때문에 나라 전체와 국민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으로 불행해질 뿐이다.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신뢰의 회복이 우선이다. 내쉬 균형 이론이 주는 교훈은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수십 조 원을 허공에 날리고 나서, 이제 와서 애들 밥 먹일 돈은 없다는 게 대체 말이나 되는가?


태그:#내쉬 균형, #복지예산 포퓰리즘, #대선공약 파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경기도의회 의원 (전) 제19대 대선 문재인 후보 국토균형발전 특별보좌관 (전) 제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호남신성장동력 특별위원회 위원장 (현)호남신성장 포럼 상임대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