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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몸이 찌뿌둥하다. 어제 저녁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을 알게 되어 우리 '자기'와 같이 갔다. 오랜만에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늦게까지 꽃을 피우며 한 잔했다. 막걸리집에서 건배를 한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대학교 후문 근처에 자주 다니던 그곳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막걸리 냄새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즐거웠던 기억을 옮겨다 주었다. 잠이 오는 아이를 따뜻한 바닥에 눕히고, 입고있던 웃옷으로 덮어주고도 한참이나 '자기'와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요새 우리 '자기'는 회사 업무 이후 배구 연습에 빠져 있다. 팔에 시퍼렇게 멍까지 들었다. "오늘 리시브 다 받았다! 근데 서브가 잘 안 되더라" 하면서 두 팔을 모아서 리시브 자세까지 취해본다. 배구가 재미있단다.

이번 주말에도 다른 팀과 배구대회가 잡혀 있고 다음주는 좀 더 큰 대회가 있다고 했다. 주말에도 도통 같이 있지를 못한다. 팀원들과 연습 후 술 한 잔 하고 오후 11시를 넘겨 들어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거실에서 간접등을 켜고 TV를 보며 기다리던 나는 눈을 흘기며 한마디씩 쏘아주곤 했다.

"국가대표 선수로나 뛰세요~."

그래도 간만에 운동을 하며 재미있어 하는 '자기' 모습이 좋아보인다. 무릎 높이의 장식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디지털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35분이다. 얼른 안방에 들어가 술이 덜깬 채 자고 있는 '자기'를 깨우고 거실로 나왔다. 커튼을 열어제치니 아침 햇살이 한꺼번에 갑자기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셨다. 얼른 활짝 열었던 커튼을 다시 양 팔 정도의 거리만큼 남겨두었다.

부엌으로 와보니 전날 밤 '자기'가 가져온 시루떡이 비닐랩으로 두세 겹 감겨 있었다. 연습 후 내 생각이 나서 하나 가져왔다고 했다. 풀어서 그릇 하나가 놓여있는 쟁반 빈 자리에 놓고 칼로 여섯 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한 줄 더 잘랐다. 이제 아이가 먹기 적당한 크기가 된것 같다. 나는 얼른 하나를 집어 먹고 접시 위에 포크 두 개를 올려 놓았다.

7시 55분이다.

방문 사이로 드라이기 모터 소리가 "윙~윙~" 하며 힘차게 공기를 진동시킨다. '자기'가 머리를 말리는 소리다. 드라이기 소리에 잠이 깬 귀여운 아들녀석은 '안고 자는 베게'를 꼭 껴안은 채 반쯤 뜬 눈으로 누워 멍하니 벽 쪽을 보고 있었다.

"일어나, 어린이집 가야지~ 벌써 8시야~."

한 마디에 뱀 허물 벗어버리듯 부스스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습관적으로 제 방으로 간다. 제 나름대로의 아침 의식이다. 조금 후 완전히 잠이 깨면 제 방에서 여기저기 흩트러진 장난감으로 신나게 파워레인저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얏~ 펑, 쿵... 덤벼랏... 쉬잇~ 얏! 으악... 만만치 않은 걸?"

8시 10분이다.

어제 차 안에 서리가 껴서 10분 지각했다고 투정하더니, 오늘은 '자기'가 서두르고 있었다. 준비를 다 마친 후 아들을 꼭 안아주고는, 서둘러 옷가지를 챙겨입고, 떡 한 입 물고 문을 나선다.

오후에 일을 하는 나는 상대적으로 오전에 여유가 있는 편. 이제 아들녀석만 보내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라고 한다. 떡만 먹지, 바쁜데 꼭 일 하나를 더해준다. 얼른 부엌으로 가 큰별을 중심으로 360도 온통 작은 별들이 에워싸고 있는, 저번 주에 새로 산 프라이팬에 유채씨로 만들었다는 식용유를 뿌렸다. 조심스레 불을 줄이고 반숙을 했다. 전에 몇 번 완숙을 했더니 아들녀석이 노른자는 쏙 빼고 먹곤해서 버리기가 아까워서다.

이제 아들 유치원가방을 챙기려 하니 어제 싱크대에 담가둔 도시락통이 그대로 있었다. 그나마 물을 적셔놔서 금방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물기를 닦고 도시락통을 챙겨 넣고, 아들 녀석 공책을 살펴보았다. 가끔 받아쓰기나 산수 덧셈, 뺄셈 숙제가 있었다. 받아쓰기 노트를 살펴보니 숙제는 없었는데, 점수가 35점이었다.

문장으로 된 20문제가 출제되었다. 성인인 내가 봐도 좀  헷갈리는 난이도 있는 문제였다. 단어로 테스트하면 95점 받아서 자랑하곤 했는데…. 문장시험 본 날은 자기보다 못한 친구가 한 명 있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린이집에 여러 번 단어 위주로 난이도를 평이하게 해달라고 세 번 정도 말했는데 달라지지가 않는다. 어차피 문장도 미리 연습하는 게 낫다 싶어서 그 뒤로 아무말 하지 않았다. 문장시험도 점수가 좋은 친구들은 집에서 다들 한글공부를 열심히 시킨다고 들은 적 있다.

여러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으로 봐서는 아이의 성향이 모두 같지는 않았다. 그에 따라 문제해결능력도 아이에 따라 모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녀석을 지켜본 결과 적어도 한글은 자연스럽게 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지적 호기심, 다양한 체험 활동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이의 생각을 풍부하게 살찌우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확신이 있다.

점수를 의식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아, 처음 배우는 것들은 틀릴 수 있어, 하지만 예전에 한 번 틀렸던 건 다시 틀리면 안돼! 그렇게만 공부하면 돼~~"라고 진심으로 얘기한다. 한 번은 "받아쓰기 싫으면, 안 하는 데로 옮겨 줄까?" 했더니, 싫단다. 시험보는 게 재미있단다. "참, 별난놈...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근데 힘들면 언제든 안해도 돼"라고 말해줬다.

산수는 암산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영어도 듣고 따라하는 것을 관심있어 해서, 우리 부부는 굳이 공부에 관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까짓거, 스카이 안 가면 어떠하리! 자기가 좋아하는 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단, 아들이 공부한다고 하면야, 말릴 필요는 없겠지만.

8시 25분이다.

어린이집 차량이 45분 정도에 오니 40분에는 나가야 한다. 어제 태권도 갔다와서 안 씻기고 잤으니, 오늘 샤워를 시켜야 한다. 얼른 옷을 벗고 들어가서 내 허리를 안게 하고 고개를 젖혀 샤워기로 머리를 촉촉이 적셨다. 아들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게 빠져나갔다. 하루하루 몰라보게 부쩍 자라는 것 같다.

샴푸로 몇 번 머리를 감겨주고,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막은 뒤 여러 번 씻겨 주었다. 녀석은 눈을 감고 샤워를 즐기고 있었다. 아들과 벗고 있으니 교감이 팍팍 되는 것 같다.

35분이다.

드라이기로 녀석 머리를 빠르게 말려주고 크림을 듬뿍 발라주었다. 눈을 꾹 감은 채로 얼굴을 자꾸 돌리려 하는 것을 한 손으로 품에 고정시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태권도 체육관에서 보상받은 쿠폰으로 구입한 어린이 '경찰양말'을 신겨 주고, 새 바지를 입혔다. 아침저녁으로 약간 서늘하니 내복을 다시 입히고, 두툼한 겉옷을 입혔다. 녀석은 약간 불편해하는 눈치였는데, 어제 말 안 듣고 얇게 입었다가 약간 추위를 탔던 것 같다.

40분이다.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데 빨간줄무늬에 파란선이 들어가 있는 밝은 색의 신발인데, 좌우구분이 아직 안 되는가 보다. 바꿔 신고 있었다. 번개 브랜드가 바깥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주는데도 그냥 듣는둥 마는둥 한다.

다행히 아직 어린이집 차량은 오지 않았다. 아들녀석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화초밭에서 작은 수박씨 크기의 씨앗을 가져와서는 어제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콩과 함께 두라고 건네주었다.

어제 질문하길 "콩 심으면 뭐가 나와?" 하길래 "콩이 수십 개 나오지~" 했더니 신기한 표정을 지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실의 씨앗이 녀석의 머릿속에서 움트고 있는 모습이다.

어린이집 차량이 왔다. 바로 앞 405동을 돌아 너댓살 되어 보이는 자매를 태우고 아들 앞에 정차한다.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마주한다. 녀석도 달려간다. 가끔 내가 태워다 주려고 할 때 어린이집 차 탄다고 거절하곤 했는데 젊은 선생님이 좋은가 보다. 차창 안으로 이미 탑승해 있는 애들 중에 한 여자애 하고 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녀석, 다 컸네!"

집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휑하니 빈 집에는, 아침 햇살만이 거실 바닥을 자리잡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하면서 인터넷도 하고, 좀 쉬었다가 싱크대 가득찬 설거지를 해야겠다. 그때 "띠링" 하며 문자가 하나 왔다.

"빨래 돌려놨어~, 제발~ 탈탈 털어서 널어줘, 사랑해 ~^^"

사랑스런 '아내'의 문자메시지다.


태그:#새내기주부, #아침일기, #파워레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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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정감과 강인함을 좋아하며, 인간 '종'이 세운 모든 것을 반성하고, 동물과의 교감, 그리고 자연과의 일체를 실현하고자 하며, 지구어머니의 한 생명체으로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지구온난화 및 핵탈피에 관심있는, 깨어있는 시민이되고자 합니다~(나주혁신도시 16개기관의 지역사회에 대한 적극적 사회적기여를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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