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측의 일방적인 부당해고 통보에 항의하는 더마트 직원들. 영화 <카트> 중에서.

회사 측의 일방적인 부당해고 통보에 항의하는 더마트 직원들. 영화 <카트> 중에서. ⓒ 명필름


사랑하는 아들.

엄마는 지난 주말에 영화 <카트>를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데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사이에서는 울먹이느라 훌쩍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들과 함께 다시 보러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저는 이제 좀 팝콘 먹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요."

내가 <카트>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니까 네 반응이 그랬지. 그동안 심각한 영화들을 주로 보았으니,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액션 영화 같은 것이 당긴다는 말이었지. 옆에서 네 아빠도 맞장구를 치더구나. 또한 영화만이 아니라 올해는 심각하고 우울한 사회 이슈들이 많아서 너조차도 힘들어했기 때문인 거 안다.

특히 세월호가 그랬지. 너는 대통령이 왜 6, 7월 선거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특별법을 해서라도 꼭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해놓고 선거가 끝나고 나서는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말을 바꾸냐고… 그런 정치가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 하지만 아들, 이 영화가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고 너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영화만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매일 아침 코오롱 해고자 천막농성장을 보며...

코오롱 정리해고자 농성 천막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농성 천막.

▲ 코오롱 정리해고자 농성 천막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의 농성 천막. ⓒ 조은미


전에 네가 엄마에게 자주 그랬잖아.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보라고 말이야. 웹툰이라고는 전혀 본 적도 없는 엄마에게 <송곳>을 얼마나 보았는지, 보고 나서 내 생각은 어떤지 몇 차례나 물어보곤 했지. 네가 하도 보라고 해서 절반쯤 보았는데, 그게 김경욱 전 이랜드 노조위원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만화라지.

엄마는 4대강, 원전 문제와 같은 환경 문제, 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나 FTA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일상과 직결되어 있어서 집회에도 종종 참여하고 관심이 많았어. 하지만 노동문제나 노조들의 집회를 바라보면 그들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여겨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곤 했단다.

우리 동네 과천에는 정리해고로 십 년 동안 싸우고 있는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도 있지. 엄마는 출퇴근 길에 그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이 시민들에게 불매 운동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불매운동을 해서 회사가 나빠지면 더더욱 돌아가기 힘들 텐데 왜 그런 방식으로 하지?'라며 못마땅하다는 생각도 했다.

한편, 요번에 대법원 판결로 정리해고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2009년이던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 지붕 위에서 곤봉으로 매를 맞으며 토끼몰이식으로 진압되는  장면이 엄마에겐 아주 충격이었단다. 그 생생한 이미지…

그리고 회계조작이며 여러 가지 변칙적인 방법으로 정리해고를 한 쌍용차의 상황을 보며, 또 해고 이후 25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살하는 사태를 보며 그 해고가 얼마나 부당한지, 쌍용차 노동자들이 왜 꼭 복귀해야 하는지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고 마음으로 깊이 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코오롱 노동자들에게는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내가 그들의 부당하게 쫓겨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영화 <카트>를 보면서 엄마는 주로 주인공인 선희(염정아 분)와 아들 태영(도경수 분)에게 눈길이 많이 갔다. 그건 태영이 우리 아들과 나이가 비슷해서 그럴거야. 태영이 편의점 알바를 하는 걸 보니까 고등학생일 것 같긴 한데 네가 중3이니까, 비슷한 십대인 거지.

영화 속 아들이 먹는 것에 눈길이 많이 가더라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명필름


엄마는 영화 속 아들이 먹는 것에 특히 눈길이 많이 갔다. 일하는 엄마가 늦게 들어오면 주로 라면을 지겹도록 끓여서 먹고, 편의점 알바를 할 때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교 점심시간에는 급식비 미납으로 급식을 먹지 못해 굶기도 하고… (무상급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정치인들은 부디 벌 받기를! 아이들 먹는 거 가지고 정쟁으로 이용하는 건 정말 나쁘다).

엄마도 직장을 다니면서 항상 네가 먹는 것에 가장 신경을 쓴다. 다행히 너는 라면을 거의 먹지 않아도 되지. 엄마가 돈을 벌면서 가장 좋은 건, 아들이 먹고 싶은 것 실컷 사줄 수 있는 거다. 네가 프라이드 치킨 먹고 싶으면 고민 안하고 시켜주기도 하고 (최근에 버스를 탔는데 고등학생들이 치킨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집에서 가끔 소고기도 구워 주기도 하고 과일도 넉넉히 먹이고…. 그런데 영화 속 아이들은 집에서 늘 라면이나 김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운다. 그 식탁엔 많은 경우 엄마가 같이 앉아 있지도 못한다.

또 영화를 보면서 왜 저 엄마는 저렇게 속이 깊은 아들에게 사랑한단 말을 해주지 않을까, 왜 좀 더 안아주지 않을까 안타까웠다. 우린 서로 사랑한단 말도 자주 하잖아. 그런데 저렇게 일상이 버거우면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우울한 일이 있거나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너에게 퉁명스럽게 대하잖아. 그래도 영화를 통해 남의 상황을 보니까 십대의 아들에게 사랑한단 말을 해준다면 그게 얼마나 아들에게 힘이 될까 하는 생각은 자주 들더라.

우리나라는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황금 만능의 사회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 직업에도 귀천을 따지고, 계산원 같은 사람들은 무시하곤 하지. 그들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당당한 사람들인데, 왜 조금 더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할까.

나는 슈퍼에 갈 때 이제는 계산원 아주머니들에게 더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한다. 또 우리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넨다. 엄마가 그들의 월급을 더 올려주거나 근무여건을 좋게 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힘든 노동을 하는 그들에게 '고객' 노릇을 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면서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의 천막을 오래 바라보았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집회를 열던데, 다음엔 그 옆에 가서 앉아줄 수 있을까.

하여간, 아들 ! 다행히 <카트>는 절찬리 상영 중이고 관객들이 많은 것 같아 오래 극장에 걸려 있지 않을까 싶다. 우선 <인터스텔라> 먼저 보고 (팝콘도 먹고) 그 다음 <카트> 같이 보러 가자. 아들과 꼭 다시 보고 싶구나.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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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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