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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4일 정도의 일정을 잡고, 그 중 1박 2일 사막사파리를 떠났다.
▲ 자이살메르 낙타사파리 자이살메르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는 4일 정도의 일정을 잡고, 그 중 1박 2일 사막사파리를 떠났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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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낙타사파리 출발지로 떠나기로 한 지프차는 30분 늦게 출발하였다. 우리 셋의 준비가 늦었기 때문이었다. 기차역에서 함께 동행한 경상도 아가씨 둘과 안산에서 온 남자 둘, 그리고 우리 셋 이렇게 7명이 팀을 이루어 낙타사파리에 참여하였다.

낙타사파리는 사막 지역인 자이살메르 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어떤 이는 '경이로웠다', 어떤 이는 '지루하고 낙타 위에 앉은 엉덩이만의 고통만 남았다'라고 하며 여행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다. 이는 낙타사파리뿐만 아니라 인도배낭여행에 대한 평가이기도 했다. 작은 지프차에 5명은 좌석, 젊은이 2명은 뒤 트렁크에 올라 타서 사막으로 향했다.

운전수는 사막 초입에 들어서자 아무 설명 없이 도로가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는 손을 눈앞에 가져다대며 사진 찍는 시늉을 하였다. 그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우린 사막 초입의 황무지에서 아이마냥 들뜬 포토 타임을 가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황무지 사이로 곧게 뻗은 도로가 이곳 또한 인간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곳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차로 돌아갈 즈음, 그곳에 사는 어린 남매가 우리를 찾아왔다. 주위 풍경을 닮은 황색 피부에 군데군데 찢어진 낡은 옷과 신발! 호기심 빛나는 관광객인 우리는 아이들과 오랜 이웃인 것처럼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돌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하는 자문이 일어났다.

지금 나에게 그 아이들은 관광 상품이자, 기념품이었다. 아차! 나는 그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사진기를 놓았다. 그순간 나는 사진 안에 '기념'을 수집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 아리를 온전히 경험하는 한 인간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난 차로 돌아가 오렌지 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건네 주었다. 오렌지를 선물로 받고 오렌지 빛깔로 변하는 누나의 미소! 행복은 아주 강력하게 전염되어 있었다. 그 아이의 표정만 보고 있어도 기쁨이 넘쳐났다.

사막 초입에서 살아가는 말라깽이 세상을 보았다.
▲ 사막의 말라깽이 집과 말라깽이 집! 사막 초입에서 살아가는 말라깽이 세상을 보았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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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을 뒤따라 집으로 가니,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내가 준 오렌지는 우리와 사진을 찍은 아이들이 아니라 서너 살로 보이는 동생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누나와 형은 오렌지를 맛나게 먹는 동생의 모습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환히 웃을 뿐이었다.

방금 전 내가 전염된 것처럼 남매도 동생의 행복에 전염되고 있었다. 허름한 옷을 입은 채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얼룩덜룩한 때와 먼지로 뒤범벅이 된 얼굴의 세 아이도 똑같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말라깽이 개만이 우리의 방문에 태연한 척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뛰어든 무단침입자!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알아 듣지 못하는 말로 속삭이고 히죽거리는 우리들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곧바로 작별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병오형이 왔던 길을 헐레 벌떡 돌아가더니, 한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고 왔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나 보다. 연민인지 동정심인지 인간애인지, 혹은 그 돈이 그들의 삶을 더욱 빈곤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할 고리의 역할을 할 지 모르겠지만, 난 형의 모습에서 사람을 보았다. 구태여 사람이 사람을 느끼는 것에 어떤 해석이 필요하겠는가?

넌 그것(it)이 아니라 너(you)야

낙타를 보았다. 동물원에서 보던 그 낙타가 아니었다.
▲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낙타를 보았다. 동물원에서 보던 그 낙타가 아니었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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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프에 올라 30여분을 달리자 사막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낙타와 낙타몰이꾼이 보였다. 이미 사파리를 마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있었는데, 한 젊은 친구에게 "낙타사파리,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작은 간극도 없이 냉소적인 태도로 즉답을 했다.

"별로에요.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만나는 젊은이 중에 간혹 너무 쉽게 말을 내뱉는 경우를 본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잠깐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고 공감하는 배려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는가? 어떤 말을 하고 행동하기 전에 잠시 쉼표를 찍는 것을 어떨까? 너ㅘ 나의 어색한 만남에 작은 행간을 두는 것이다. 그와의 대답이 끊어졌다. 억지로 대답을 잇자니, 알맹이 없는 외피의 대화가 될 것만 같았다. 가까이에 있지만 너무 먼 곳에 있다는 느낌! '나'만이 있고 '너'는 없는 느낌! '그것'은 있고 '당신'은 없는 느낌!

마틴 부버는 '나-그것(It)'의 관계와 '나-너(You)'의 관계를 구분하며 진실한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사람들과 온전히 만나는 진실한 관계가 성립되지 못했을 경우, 나에게 그들은 단지 '그', '그녀', '그것'인 3인칭 타자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혹은 '그녀'가 나와 인간적 신뢰 를 통해 소중한 관계를 맺을 때 '그'는 더 이상 3인칭 타자가 아니라 '너', '당신'이라는 2인칭 관계로 변화된다.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그'는 고독한 세상 가운데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나의 소중한 너'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들을 보내고 사파리에 참여한 7명의 여행자가 낙타 등에 올랐다. 나를 태울 낙타는 아주 청순하고 어여쁜, 새침때기처럼 통통 튕기는 매력의 암컷이었다. 나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낙타몰이꾼은 낙타를 일으켜 세우기 전 우리들에게 상체를 뒤로 눕히라고 했다. 그 순간 낙타가 뒷발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섰다. 몸이 앞으로 튕겨나갈 듯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렸다가, 낙타가 앞발까지 들자 몸이 뒤로 벌러덩 밀려났다.

"오~ 으악~ 이야호!"

5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공포에서 희열까지 만감이 교차되었다. 낙타가 일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 높이가 상당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자 이번에는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함께 있어도 외롭다

우리를 태운 낙타 세 마리를 끈으로 연결한 후, 맨 앞에서 낙타몰이꾼이 낙타를 사막으로 이끌었다. 바람과 모래바람이 소리 없이 날리고 우리의 침묵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낙타의 되새김질 소리,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 소리와 '따닥따닥' 모래로 떨어지는 배설물 소리! 사막에서 유목하는 낙타, 염소, 양들이 보였고 야생 멧돼지와 수십 개의 풍차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낙타의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장단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반복하였다. 낙타 엉덩이의 리듬과 내 엉덩이의 리듬이 일치할 때 가장 편안한 낙타사파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낙타 엉덩이 따로, 내 엉덩이 따로'가 되면 바로 몇 시간도 안 되어 우리의 엉덩이는 벌겋게 부어오르고 멍까지 질 것이다. 나와 낙타의 조화처럼 세상과 나의 장단 또한 맞춰야 하는 것이 삶 아니던가? 장단이 맞지 않으면 누군가 추임새를 넣어주고, 괜찮다며 흥을 돋아주겠지? 그때 난 입꼬리가 아닌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릴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 배고픈 낙타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라고 했다. 사막 한 가운데 둘러앉아 낙타몰이꾼 리더인 '앨리'가 주는 오렌지와 바나나로 허기를 달랬다. 앨리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였다. 나이가 궁금해 몇 살이냐고 물으니 30살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에이, 거짓말!" 절규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단다. 사막의 척박한 바람과 공기가 30살 청년의 얼굴을 50살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거울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일까?

사막의 건물들은 기후를 고려하여 만든 1~2층의 단층들이었다. 소변을 보러 빈 건물을 찾았는데, 그곳은 지나가는 낙타가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였다. 그 옥상에 올라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지대를 조망하였다. 그 때 바로 옆에서 아이들의 시끌벅적거리는 말소리를 들렸다. 옥상에서 내려와 앨리에게 물어보니 근처의 유목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하였다. 교사라는 직업이 어디 가겠는가? 눈과 귀가 솔깃~ 예전과 달리 이제 인도도 시골 곳곳까지 교육, 전기 등 국가의 제반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었다.

그것이, 곧 문명화가 그들의 삶의 질과 비례할까?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그들은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가난한,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도리어 우리가 위로받아야 할 존재일지도 모르리라. 뒤에 맹수 한 마리를 떨어뜨려놓고 '죽기 싫으면 달려라'라고 협박하는 자본주의의 사회! 우린 정글 한복판에 놓인 스프링벅처럼 맹목적으로 달린다.

여기에서 달리기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지에 남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만이 가치의 척도일 뿐이다. 달리는 중에도,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불안하다. 홀로 있어도 외롭고 같이 있어도 외롭다. 그게 우리들 아닌가 고개를 숙여본다.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낙타는 자유였다.
▲ 낙타의 소요유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낙타는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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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른 낙타들이 도착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풍광이 똑같은 무료한 길을 계속 지나가다 적당한 자리를 발견하고 모두 낙타에서 내렸다. 낙타몰이꾼이 해주는 점심 식사 시간인 것이다. 여행자들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깔아 쉬었고, 낙타몰이꾼은 사막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폈다.

점심 메뉴는 커리와 짜파띠였다. 짜파띠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만두피 모양으로 얇게 구워 먹는 것으로, 감자, 당근 등으로 만들어진 커리와 함께 먹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날리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 미세한 모래 가루들이 날아와 짜파띠를 만드는 밀가루 반죽에 섞이고 화덕에 함께 구워졌다. 사각사각 밀가루와 모래가루를 함께 씹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모래가루를 가지고 설거지를 하였다. 적자생존! 척박한 사막에서 유목민은 그렇게 모래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사막의 별은 저 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점심 식사 후 두어 시간이 지나 숙영지인 듄(모래 언덕)에 도착하였다. 우린 누구나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다. 이는 끝없이, 오점 하나 없이 펼쳐진 바다를 향한 동경을 머리에 지고 사는 것과 똑같은 것이리라. 사막은 민낯이다. 어떤 인위적인 가면도 없는 순수의 공간인 것이다.

중국에는 가면극인 '변검'이 있다. 가면을 벗겨도, 벗겨도 그 안에는 또다른 가면이 있다. 어찌보면 변검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페르소나를 쓰고 배우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말이다. 언젠인가부터 '나'는 없어지고 '페르소나'가 '내'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가 아닌 '나의 페르소나'로 날 판단하고, 나에게 호감을 갖었다. 이제 더이상 나는 페르소나를 벗을 수 없다.

페르소나를 벗으면 나의 페르소나를 사랑했던 사람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 그리고 바다와 사막과 같은 '순수의 공간'을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민낯'의 동경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속에서는 절대 벗을 용기가 없는 페르소나를 우린 이곳에서 잠시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숙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사막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았던 깨끗한 사막, 오점 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은 아니었다.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 여기저기 사막 식물들이 돋아나 있는 그저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숙영지 바로 뒤의 듄(모래언덕)에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던 '진짜(?) 사막'이 있었다.

진짜 사막을 보았다. 사막은 이물질이 없다. 오직 모래 하나 뿐디ㅏ.
▲ 진짜 사막! 진짜 사막을 보았다. 사막은 이물질이 없다. 오직 모래 하나 뿐디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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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숙영지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집어 던지고 모래 언덕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신발을 모래에 푹푹 파묻으며 모래 언덕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눈앞으로 길게 펼쳐진 모래가 보였다. 

'아~ 그래, 바로 이곳이 내가 알던 사막이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마냥 뛰고 구르고 눕고, 평상시면 체면 때문에 취하지 않는 유치한 포즈까지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는 모래 가루들이 침투해 있었다. 모래 언덕에서 내려오자 아까부터 예감이 좋지 않던 구름 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사막에서 비라니…….

그럼 오늘 밤 사막의 별을 볼 수 없는 건가? 앨리가 어디선가 매트리스 깔개 같은 비닐을 가지고 오더니 이 속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라고 했다. 그 속에 일곱 명이 들어앉아 비닐을 올리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 비닐 속에 어둠이 덮였고, 낡은 비닐에 듬성듬성 뚫린 작은 구멍들에서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았다. The star of desert! 사막의 별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키득키득 이 불편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겼다.

여행자 7명 가운데 안산에서 온 젊은 친구 1명은 물갈이로 인한 심한 설사와 구토 등으로 탈수 상태에 빠져 듄에 도착하자마자 자이살메르로 돌아가야 했다. 델리에서 라면을 먹고 탈이 났다는데, 이후 며칠 동안 내내 설사만 했다고 했다. 몸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막 위를 낙타를 타고 출렁출렁했으니 얼마가 고통스러울까? 급하게 부른 지프를 타고 그는 병원으로 향했다.

해가 지고 비는 그쳤다. 대신 모닥불이 올랐다. 우리는 모닥불 주위의 사막 모래에 철푸덕 앉은 채로 바베큐 파티를 벌였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주를 비우고, 사막에서 구입한 맥주를 마시고, 올 한해 소원을 돌아가며 말했다. 힘들고 외롭지만 아직 소망을 품고 있는 나를 말하고, 부모의 보호막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은 청춘을 말하고, 소처럼 일만했던 아버지의 늙음에 대해서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고, 사막의 무음 오케스트라 속에 우리의 그리움과 사랑은 더 커져만 갔다. 그렇게 사막의 밤은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앨리가 마련한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자리라는 말이 어울릴까? 모래 위에 담요 같은 것을 펴놓으면 그곳이 여행자의 안락한 침대가 되었다. 그 위에 각자 가져온 침낭을 펴고 하늘을 천장으로 이고 잤다. 우린 사막의 노숙자였다.

그날 나는 술에 취해 인도에 온 이후 가장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잠자리에 누웠을 때에는 하늘에서 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직 비를 품은 습한 공기만이 있었다. 이른 새벽 장호가 나를 흔들며 잠을 깨웠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잠을 선택했다. 다음날 장호는 새벽에 사막의 별이 바로 눈앞에서 쏟아지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난 괜찮아. 어제 비닐 구멍으로 사막의 별을 보았거든. 별은 사막 위가 아니라 여기 내 안에 있는 거잖아."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자이살메르, #라자스탄, #사막사파리, #인도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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