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골든 시티, 자이살메르

라자스탄 주 맨 서쪽에 있는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는 골든 시티라고 불린다.
▲ 골든 시티, 자이살메르 라자스탄 주 맨 서쪽에 있는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는 골든 시티라고 불린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오후 11시 45분 조드푸르 역에서 출발한 야간열차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오전 7시 20분에야 자이살메르 역에 도착하였다. 올드델리 역에서 조드푸르까지는 3시간 30분 연착,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는 2시간 20분 연착. 여긴 인도였다.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의 기차는 3AC보다 낮은 등급인 SL(Sleeper)칸을 이용하였다. 어제의 행운은 오늘 또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3AC와 SL칸 모두 3층 침대가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에어컨의 유무, 이불의 제공 유무, 사생활 보호 및 수면을 위한 커튼 설치 여부 등의 차이가 있었다.

SL칸은 보통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인도인들과 지갑이 얇은 외국인 배낭족들이 가장 많이 탑승하는 객실이다. 어제와는 달리 인도 현지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어 좋았다. 나는 3층 좌석 중 맨 꼭대기석인 어퍼(Upper)에 자릴 잡았다.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가까스로 침낭을 펴고, 꾸부정한 자세로 옷을 갈아입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다. 이럴 때 우린 이런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게 뭐 하러 인도 가서 돈 버리고 생고생을 해?"

아래 층(middle, lower)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발 냄새,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 코골이소리까지 불협화음의 인도 자장가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인도 기차는 예전 우리네 기차처럼 탑승문을 열고 밖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칙칙폭폭, 기차의 우렁찬 기지개 소리가 휑한 사막의 새벽을 열었다.

사막 도시인 자이살메르에 도착하자, 플랫폼까지 나온 각 숙소의 직원들의 호객 행위가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겼다. 기차에서 내린 두 명의 여대생이 우리에게 어디에서 묵을 거냐고 물어봤다. 사막 도시에 오면 대부분의 여행객은 1박 2일 정도의 사막 사파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많은 인도였기에, 많은 가이드북과 여행자들은 여자끼리의 여행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묵을 숙소를 묻는 여성들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숙소를 잡고 같은 낙타 사파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리는 D게스트 하우스를 숙소로 정하고 함께 지프차에 올랐다. 조드푸르 시내를 파랗게 물들인 푸른색 집들과 달리 자이살메르의 집들은 아무 색도 칠하지 않은 천연의 황토색들이었다. 블루 시티 조드푸르와 골든 시티 자이살메르.

온통 황색 천지의 도시에 자이살메르 성이 우뚝 서 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본 자이살메르 성 전경 온통 황색 천지의 도시에 자이살메르 성이 우뚝 서 있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동트기 직전 자이살메르의 모습은 황량함과 평온함 그 자체였다. 집도 골든, 땅도 골든, 자이살메르 성도 골든! 이른 아침 개 짖는 소리만이 존재함의 신호를 보냈다. 숙소에서 대략 짐 정리를 마치고 도시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자이살메르 성으로 향했다.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 성이 옛 왕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박물관으로 활용되는 것과 달리, 자이살메르 성은 세상과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성안에 여행자를 위한 숙소, 식당, 상가 등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메헤랑가르 성에서 느낀 왕의 위엄과 권위, 세속과 분리된 성스러움보다 자이살메르 성은 성과 속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민의 손을 잡아주는 친근함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었다.

자이살메르 성은 성과 속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에 개방되어 있었다.
▲ 자이살메르 성으로 가는 길 자이살메르 성은 성과 속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상에 개방되어 있었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도시를 조망하기 위해 성벽에 오르자 인분과 가축의 똥들이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었다. 인도 어디서나 보게 되는 편안한 광경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자이살메르의 동서남북을 둘러보았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본 자이살메르는 생각보다 그 규모가 컸다. 건물도, 언덕도 어떤 막힘도 없이 사방이 터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茫茫大海)가 아닌 망망대사(茫茫大沙)였다.

하늘은 더 없이 맑았지만 먼 곳은 사막 먼지로 뿌옇게 흐려 있었다. 좋지 않은 시야와 달리 가슴만은 뻥 뚫려 호연지기의 기운이 솟구쳤다. 거침없는 무한이었다. 역시 이곳은 사막 위로 느리적 느리적 모래를 굴리는 바람의 여유가 느껴지는 골든 시티였다. 나른한 기분에 빠져 있는데, 황색 성벽 아래 개 한 마리가 곤한 낮잠에 취해 있었다. 개 옆에 나란히 누워 사진을 찍으려는데, 요 녀석이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아이고'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도시와 성, 한 마리 개는 죽은 듯 고요했지만 그 뒤에는 생명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성을 둘러본 후 내려오는데, 정문 바로 안쪽의 성벽 아래에서 외줄 타기하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아빠가 치는 북소리에 맞추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신기한 모습에 발길을 옮겨 온 관광객들에게 성의껏 관람료를 받았다. 사막 한 가운데 고즈넉하게 홀로 솟은 옛 성의 성벽을 배경으로 외줄 타는 아이의 모습은 이국적이면서도 매력적이었다. 해가 이동하며 성벽의 그림자가 아래로 길게 드리웠다. 그림자까지 춤추게 하는 아빠의 북소리. 손님이 없는 오늘, 북소리의 그림자가 길고 처량하다.

스머프 같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자이살메르 성에서 내려다 본 골든 시티 스머프 같은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며칠 동안의 쉼 없는 여행에 지친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 잠깐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나는 병오형과 장호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하고 옥상에 올라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두어 시간 동안 나는 인도의 거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진짜 인도를 보고 있었다.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소와 그로 인해 밀려 있는 차들, 연줄이 끊겨 연이 하늘로 날아가자 이를 잡으려 몰려드는 라자스탄 아이들, 일을 마치고 머리에 뭔가를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붉은 옷의 세 여인과 라자스탄의 춤꾼 마이클 잭슨을 보았다.

여행에서 기다려지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 자이살메르 게스트하우스에 본 거리 풍경 여행에서 기다려지는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여행의 백미는 거리에 있다

자이살메르의 거리는 사람사는 냄새와 생기로 진동하였다. 소가 도로를 막아도 자동차 운전자는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기만 했다. 기다림에 지치면 그제야 '빵'하며 시끄러운 클랙슨을 눌렀다. 소는 귀찮다며 어슬렁어슬렁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거리에 나다니는 소들은 누군가의 소유물이라고 했다. 시내를 제멋대로 유유히 자적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자기 집으로 찾아간단다. 인도 풍습에 따라 소고기를 먹지는 못하지만 소는 우유를 공급하는 중요한 동물이라고 했다.

연줄이 끊겨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위로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건물 1층으로 몰려와 손가락으로 나무에 걸린 연줄을 가리키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연을 떼달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연은 벌써 숙소의 나이 어린 직원의 몫이 되어 있었다.

내가 "돌려주어야 하지 않나?"라고 묻자, 태연하게 "괜찮다."라고 대답하였다. 직원 아이가 제비 새끼마냥 건물 아래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인도 말로 뭐라 뭐라 하니, 아이들은 각자 제 갈 길로 사라졌다. 도대체 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연을 만든 저 아이의 소유인가, 아니면 내 건물로 날아온 연이니 건물주의 소유가 되는 것인가? 그 둘을 법정에 올려 시비를 가려야 하지 않을까?

아무 잘못도 없는 나에게 연을 달라며 아우성치는 아이들!
▲ 연을 쫓는 아이들 아무 잘못도 없는 나에게 연을 달라며 아우성치는 아이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가는 저 세 여인은 누구의 부인일까, 딸일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터에 다녀오는 길일까, 저녁 먹거리를 시장에서 사오는 것일까? 그녀 셋은 한 가족일까, 친구일까, 동네 이웃 아낙들일까? 처녀라면 남자 친구는 있을까? 여기에서 청춘 남녀는 데이트를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할까? 결혼은 남녀의 자유연애를 통해서 할까? 결혼을 했다면 집에서 기다리는 애는 몇일까? 그 애는 엄마 없는 빈 집에서 하루 종일 무얼 하며 보냈을까?

시답잖은 별의별 질문들이 머리에서 싹을 틔웠다. 혼자 웃고 혼자 답하며 웃고 또 웃었다. 자이살메르를 무대로 하는 일일 드라마를 찍으면 어떨까? 우리 한국처럼 갈등과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드라마가 짜여질까? 아니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밋밋한 드라마가 연출될까? 아마 이곳 또한 정중동의 스토리가 진하게 펼쳐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욕망도 없고, 갈등도 없고, 실패와 좌절도 없는, 잡다한 사건이 없는 삶은 '지루한 드라마'처럼 재미없는 삶일 것이다. 우린 사사로운 일들에 고민하고 아파하며, '죽고 싶다', '못 살겠다' 징징거리며 살고 있다. 그런 삶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것이 역동적인 우리네 삶의 스토리가 아닌가?

잔잔한 바다의 삶을 지향하지만 내 마음에는 끝도 없이 격랑이 일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의연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나무를 흔들어 댄다. 파도 없는 바다가 바다이겠는가? 바람 없는 나무가 나무이겠는가? 정적(靜的)인 삶은 이상이자 미래요, 동적(動的)인 삶은 현실이자 현재이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불타오르고 요동친다. 풍랑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어온다.   

한 아이가 나만을 위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 자이살메르의 마이클 잭슨 한 아이가 나만을 위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가상 드라마에 한껏 심취해 있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헤이, 헤이(Hey, Hey)…"

이곳에서 나를 부르는 일은 없을 터, 마냥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또다시 "Hey, Hey…"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나를 부르는 것인가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숙소 건너편 집 안에서 한 아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9살 안팎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포토, 포토(Photo, Photo)"를 외쳤다.

급하게 카메라를 찾아들고 앵글을 비추니, 소년은 마이클 잭슨이 환생한 듯 멋진 관절 꺾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이살메르 전당에서 펼쳐지는 무료 특별 공연. 나는 아이의 춤에 완전히 몰입되어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순간 나는 한국에서 온 파파라치가 되어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연은 그의 엄마가 무자비하게 끌고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 아이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의 미소는 밝고 경쾌했으며, 하얗고 건강했다. 어쩜 인도 여행의 진수는 아이의 눈빛과 미소에 있지 않을까?    

도시의 야경을 보기 위해 자이살메르 성에 올랐다. 누군가 우리를 보더니 정말 좋은 뷰포인트가 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를 따라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자 자이살메르의 눈부신 야경이 나타났다. 하지만 '눈부시다'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눈부심'은 아니었다. 황색 사암으로 지어진 건물마다 작은 촛불 하나씩 켜 놓은 듯한 수줍은 눈부심? 높은 언덕 하나 없는 평지에 만들어진 도시가 거친 숨을 몰아낸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젊은이가 누군가를 데리고 올라왔다. 그는 이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이었다.

"한국인들입니까? 온 김에 차 한 잔 하고 가시죠?"

거래의 정석

도시의 야경을 본 후, 성 밖으로 나와 시장을 구경하였다. 델리나 조드푸르의 시장과 별 차이가 없었다. 릭샤 한 대와 오토바이 한 대가 딱 교차할 크기의 길과 그 양쪽에 길게 늘어서 있는 상가의 모습. 시장의 규모와 찾는 사람의 많고 적음의 차이뿐이었다. 이 도시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낙타 가죽 제품과 고운 실크 소재의 옷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자이살메르의 하이라이트인 '낙타 사파리'를 위해 사막으로 떠난다. 우리가 동물원에서만 보던 그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닌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며 내일 낙타 사파리를 위해 오렌지, 토마토 등의 과일을 사고 사막 바베큐에 넣을 감자를 넉넉하게 준비하였다.

오늘 낮 자아살메르 성 정문 근처에 있는 과일 가게에 들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델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부르는 과일 가격에서 적정 수준의 디스카운트를 요구하는 흥정을 벌였다. 예를 들어 과일 파는 상인이 오렌지 값으로 60루피를 부르면, 우린 40루피에 달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그 과일 가격은 50루피에 낙찰되는 식이었다.

운이 좋을 때는 우리가 부르는 40루피에 낙찰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린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 과일 가게 주인과 밀당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밀당을 두어 번 나누자마자 주인장은 우리를 한심한 눈초리로 보면서 "너희들 한국인이지?"라고 비아냥댔다. 그의 비아냥거림은 한국인 여행객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모두 담고 있었다. 그의 말에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은 수치심이 들었다.

우리는 여행을 오기 전에도, 인도에 와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도 정석의 '흥정법'을 전수받았다. 어리숙하게 흥정하다가는 엄청난 바가지를 쓰게 된다고 하였다. 분명 똑같은 사과라도 현지인과 외국인에게 파는 가격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차이라고 해 봐야 기껏 10~20루피의 작은 액수였다. 고액의 기념품은 아니더라도 과일 정도의 가격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들의 요구에 따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너무 경직되고 규격화된 여행 자세를 가지는 것 또한 여행자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들린다.

"너희들 한국인이지?"

어찌 보면 이런 거래는 모두에게 손해일 것이다. 한국인은 더 깎으려고 할 것이고, 인도 상인은 최초 가격을 더 높이 부르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르는 대로 무작정 돈을 주는 것도 정상적인 시장 가격을 파괴하는 공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평생의 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푸르, 조드푸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인도배낭, #라자스탄, #자아살메르, #여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