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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 표지
 '적군파' 표지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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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는 뭔가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태양계 행성들이 일렬로 선다든지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하다못해 지구 자전축이 만 분의 일도 정도 틀어지기라도 했던 것이 확실하다. 하나하나 따로 보아도 '어마무시'한 사건들이 1972년 한 해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충 훑어봐도 오키나와 반환, 미군의 베트남 철수, 닉슨의 중국 방문, 미소 간 전략무기제한협정 체결, 7·4 남북공동성명, 10월 유신 등 하나같이 각국 정치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질서를 흔들만한 사건들뿐이다.

정치적 사건들만이 아니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오디세이'가 1972년에 처음 나왔고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인 <퐁>도 1972년에 나왔다. 그러니까 전 세계의 아이와 엄마가 게임을 둘러싸고 벌이는 지난한 투쟁 역시 1972년에 시작된 셈이다. 헝가리 출신의 라슬로 토트라는 지질학자가 "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며 바티칸의 피에타상을 망치로 깨먹은 것도 1972년인 걸 보면 그 해엔 '똘끼'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1972년에 태어난 아이들도 하나 같이 대단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유재석, 장동건, 서태지, 심은하, 배용준이 태어났고 바다 건너에서도 빌리 조 암스트롱, 노토리어스 B.I.G., 리암 갤러거, 에미넴이 태어났다. 그러니까 1972년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좋은 개그와 그 좋은 음악을 듣지 못하고 살 팔자였던 것이다. <무한도전>과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가 없는 세상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1972년의 기운은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형 사건이 그 해 정초에 터졌기 때문이다. 늦겨울이라지만 아직 봄을 바라기에는 너무 이른 날이었던 1972년 2월 19일, 나가노현에 위치한 아사마 산장에 5명의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피골상접의 괴한들은 관리인의 아내를 위협, 그녀를 인질로 잡고 농성을 시작했다.

자신들을 '연합적군파'라고 밝힌 그들은 1천여 명에 달하는 경찰들과 대치한 채 10일간 인질극을 벌였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2월 28일 진압 작전이 개시되었고, 1명의 민간인과 2명의 경찰이 사망하는 희생 끝에 진압 작전은 종료되었다. TV로 생중계된 진압 작전의 최고 시청률은 89.7%라는 경이적인 수치에 육박하기도 했다고 하니 전 일본의 관심이 이 작은 산장에 집중되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체포된 5명의 괴한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원래는 5명이 아니라 31명이었으며, 이 중 12명을 나머지 19명이 죽였다는 충격적인 진술이 나온 것이다. 총기로 무장한 채 공권력에 맞서 농성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놀랄 일인데, 산장에 틀어박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살인극까지 벌였다니.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나 봤을 법한 산장 집단살인극의 전모는 대충 이러하다. 급진적인 사회혁명을 꿈꾸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약간의 무기와 자금을 가지고 한 산장에 집결한다. '연합적군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의 목적은 내부적인 사상 통일을 이루는 한편 혁명을 위한 역량을 쌓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오류를 범한 인물이나 철저한 혁명의식을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쟁과 '약간의 고행'을 통해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고 투철한 혁명사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동료들은 오류를 범하거나 '공산주의화가 덜 된' 동지에게 육체적인 고행을 가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좀 단련하도록 했다. 따라서 그 고행의 과정에서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그것은 동료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 스스로의 오류와 불철저함을 극복하지 못한 때문에 일어난 '패배사'로 규정되었다.

다만 문제는 무척 사소한 것들도 오류나 불철저함의 증거로 간주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산장에 들어오면서 이름과 머리 모양을 바꾸지 않은 것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증거로 간주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시선일 뿐, 혁명에 헌신하고자 했던 그들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들조차 혁명에의 헌신성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12명의 젊은이가 죽은 것이다.

혈기 왕성한 20대 젊은이들이 산장에서 벌인 집단살인극이라고 하니 황색 저널리즘의 먹잇감으로는 최적이다. 연합적군파 이야기는 곧바로 사건의 본질과는 무관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연합적군파 사건이 세인의 조롱거리가 되고, 끝내는 일본 진보운동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만 것이 단지 황색 저널리즘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여남은 명이나 되는 젊은이가 단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사마 산장 농성 당시만 해도 학원가를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지지 움직임이 있었지만 집단살인 이야기가 터지자 이런 움직임조차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그 때문이다. 연합적군파 사건은 일본 진보운동의 몰락을 극적으로 알린 사건인 동시에, 몰락하는 진보운동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린 사건이기도 했다.

지금은 지나친 우경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일본 사회가 보수적으로 변해버렸지만 사실 일본 진보운동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22년 창당한 일본 공산당은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산당 집권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당원 숫자를 자랑할 정도로 적지 않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

특히 1960년대는 '정치의 계절'로도 불린 일본 진보운동의 전성기로, 특히 1960년에 있었던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의 시민운동인 '안보 투쟁'은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에 저항하고 자민당의 비민주주의적 행태에 일침을 가하는 대규모 평화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60년대에 시작된 '산리즈카 투쟁'(나리타공항 반대운동) 역시 일방적인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일본의 진보적인 시민운동이었다.

일본 진보운동의 이러한 역량은 1945년 패전 후 치안유지법이 폐지되고 좌파정당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었고, 노조 조직률도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학생운동 역시 대단한 수준이었다. 대학의 수업료 인상 반대, 학원 민주화 등의 문제를 통해 꾸준히 누적된 학생운동의 흐름은 1968년 (우리로 치면 '전대협'이나 '한총련'쯤 되는) 전학공투회의(전공투) 결성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전공투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세력은 도쿄대의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였는데('야스다 강당 사건'), 이는 1년 가까이 수천 명에 달하는 전국 대학생이 참여하는 거대한 투쟁으로 성장했다.(이 사건으로 도쿄대는 69학번 신입생을 모집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쿄대에는 69학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해에는 교토대로 신입생이 대거 몰렸고, 이 때문에 교토대 69학번은 학교 설립 이래 최고의 인재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혹자는 그게 반드시 농담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안보 투쟁과 산리즈카 투쟁, 야스다 강당 사건의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일본 진보세력의 역량을 과시하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패배했기에 진보운동이 내리막길을 걷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학생운동의 1980~199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 건물을 점거하고 공권력에 대항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치기어린 젊은 이상주의자의 과격함 정도로만 치부되었을 뿐, 사회의 변화까지 끌어내지는 못했다.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 진보운동은, 자연스럽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아사마 산장 사건은 몰락하는 일본 급진좌파가 내지른 최후의 단말마였는지도 모른다.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며 소수로 전락한 이들은 급기야 산 속에 틀어박혀 자신들만의 굳건한 성채를 짓고자 했지만, 그들이 걸어간 궤적은 결코 <태백산맥>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국가의 탄압에 따른 피해의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이 결합된 결과는 자기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과 맹신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을 강조하는 '근본주의'는, 위기의 시기에 훨씬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썩 좋은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엄청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수령에 대한 우상화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북한과, 혁명을 달성한 인민이기에 32층짜리 건물에도 엘리베이터 따위 필요 없다며 일갈했다는 체 게바라의 모습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과 헌신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신념을 넘어서 맹목과 집착의 수준에까지 치닫게 될 때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된다.

여기까지 생각을 진전시키면, '적군파' 이야기는 단지 40여 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집단살인극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지금 우리의 문제가 된다. 이 책의 부제인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이라는 표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혹자가 '극단의 세기'라고 불렀을 정도로 지난 세기는 폭력이 빈발했던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해 나치즘과 파시즘의 대량학살, 수단·세르비아 등지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인 폭력이야 그 이전에도 많았지만 20세기의 폭력은 그 이전의 폭력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전 시기의 폭력이 군인이나 국가처럼 물리력을 보유한 특정 집단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 20세기의 폭력은 보통의 필부들까지 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자기 동네에 사는 유태인과 집시를 당국에 신고한 것도 보통의 독일인들이었고 한국전쟁기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고 죽였던 것도 대부분은 평범한 농군들이었다.

폭력과는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까지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흔히 '광기'나 '극단' 같은 용어를 사용하곤 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 그것들은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행위로 이해되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들과 집시가 얼마나 인류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인지를 우생학과 골상학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했고, 좌익과 우익은 서로가 인류의 자유와 해방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 존재인지를 '합리적'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증명했다.

스스로를 '합리'나 '과학', '진리', '상식', '보편' 등의 수사로 과도하게 치장하는 신념이란, 확신이 아니라 그냥 폭력일 뿐이다. 산장에 모인 연합적군파는 자신들이 인류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라고 생각했겠지만,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시선 속에는 그 어떤 이견도 허용될 수 없었다. '불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동료를 죽이고도, 그것을 '패배사'라고 말할 수 있는 태연함도 그런 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불합리'나 '거짓'에게 가해지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다소 폭력적이어도 상관없다는 그런 확신 말이다.

얼핏 봐도 부당해 보이는 이런 폭력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언제나 소수자를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연합적군파 내에서도 사상적으로 불철저한 사람은 언제나 한 사람씩 지목당했던 것처럼, 유대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등, 집단에서 배제되는 사람이란 언제나 소수자이기 마련이다. 특정한 소수집단에게 집단의 모순과 폭력을 집중시키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저항력도 작기 때문에,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다양한 정체성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식의 소수자 만들기는 한층 더 빛을 발한다. 하지만 단지 그 사회의 다수가 공유하는 정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탄압받고 백안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저 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 집단을 배타시하는 경우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역사 속의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자기의 문제가 되었을 때도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책에서 읽는 역사 이야기,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적군파 이야기를 단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으로만 보면 안 될 것 같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말들과 별 생각 없이 취하는 태도들이란,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서 별 문제 안 되는 것 같지만, 그것 역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생각에 대해서 매순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성찰들이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가 바로 적군파의 참극 아니었을까.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둥,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둥, 역사를 두고 하는 그 많은 말들이 그저 멋있어 보이라고 하는 말들에 불과한 건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씀, 임정은 옮김, 교양인 펴냄, 2013년 2월, 388쪽, 1만6000원
* '독서공방'은 역사를 전공하는 정대훈과, 지역학을 공부하고 회사에 다니는 지상현이 함께 쓰는 역사책 서평입니다. 둘은 대학원 다니다 만난 사이입니다. 박사과정생으로, 회사원으로 진로가 갈라졌지만 어쩌다보니 책 읽고 술 마시고 노는 모임을 계속 갖게 됐습니다. <역사책 읽는 집>이라는 팟캐스트도 2년째 하고 있고요(bookcross.iblug.com). 말로만 떠들지 말고 책 소개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도 이야기해보는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차원에서 서평도 써보자 의기투합했습니다.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2013)


태그:#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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