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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기도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지난 세월호 사건 이후에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올 겨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 여행을 마무리 할 필요가 있어 다시 시작합니다. 2013년 12월 31일부터 1월 28일까지 중국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기자 주

밤기차를 이용해 호남성(湖南省)의 악양(岳陽)에서 귀주성(貴州省)이 성도인 귀양(貴阳)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국 경제 발전 속도와 비례해 기차 문화도 발전했습니다. 제 머릿속의 중국 기차는 혼잡하고 무질서한 객실, 발 디딜 곳이 없는 화장실, 끊임없이 호박씨를 까서 먹고 껍질을 통로에 뱉는 모습이었는데. 과거의 추억일 뿐입니다. 빠르고 시설 좋은 기차에는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끊임없이 객실을 돌며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악양에서 귀양가는 기차표
▲ 기차표 악양에서 귀양가는 기차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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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에 대한 관대함

쾌적한 환경에 만족해하며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담배 연기가 객실의 복도를 타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나가 보니 객실 사이의 공간에서 흡연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철인지라 담배 연기는 기차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객실로 여과 없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역무원에게 불편을 호소했지만 "对不起(미안하다)"란 말만 반복합니다. 아직 중국에서는 흡연에 대해 관대합니다. 여행이란 나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문화를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기에 참고 잠자리에 듭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에 따르는 것'이 순리겠지요.

귀양역 광장 모습
▲ 귀양역 귀양역 광장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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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성(貴州省)의 성도 귀양(貴阳)에 도착했습니다. 귀주성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입니다. 평지를 찾기 어려우며 변변한 지하자원이나 관광자원이 없어 내외국인의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귀주성에는 16개의 소수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도심에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때 묻지 않은 소수 민족의 삶과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성도인 귀양은 해발 800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햇볕이 귀한 곳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지 않아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싸면서 좋은 것은" 없다

귀양역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중국 여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입장료와 숙박입니다. 대부분 관광지의 입장료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입장료 때문에 여행 일정을 조율하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여행 기간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숙박은 '주숙등기(住宿登記)' 때문에 외국인은 3성급 이상 숙소에 투숙해야 합니다. 주숙등기란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24시간 이내에 공안에 거주지 등록을 하는 제도입니다. 위반 시 500위안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저렴한 가격에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은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싸면서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숙소가 마음에 들면 가격이, 가격이 저렴하면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나뉘어 귀양역 근처를 찾아 다녔지만 조건에 맞는 숙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침내 귀양역 근처 후미진 곳에서 좋은 숙소를 발견했습니다.

단체비자의 악몽

숙박을 결정하고 프런트에서 수속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니 프런트 복무원은 여권을 하나씩 넘겨보면서 난감한 표정입니다. '단체비자'가 문제였습니다. 다섯 사람 이상이면 단체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저렴한 비자비와 간편한 절차 때문에 단체 비자를 발급하였는데 문제는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기차역이나 호텔에 근무하는 분들이 '단체비자'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중국어로 단체비자를 제시하며 "这是签证(이것이 비자)"라고 중국어로 설명해도 복무원은 여권에 부착된 비자만 찾고 있습니다. 여권과 비자에 명시된 이름을 대조하며 설명해도 복무원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참을 여권을 뒤적이든 복무원이 마침내 웃으면서 여권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여권에는 작년에 중국을 여행한 분의 기간이 만료된 개인 비자가 있습니다. "不是 不是(아니오)"라고 설명하여도 요지부동입니다.

30여 분이 경과하자 뒤쪽에서 다른 고객과 우리 일행의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중국어, 영어, 우리말로 터져 나오는 소란함에 당황한 복무원이 울상을 하며 상급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온 상급자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권만 면밀히 살피며 비자를 찾고 있습니다. 끝내 찾지 못하자 상급자는 복무원에게 여권을 복사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간신히 수속이 끝나니 미안한 얼굴로 메모지에 무엇인가 적어 저에게 주며 웃습니다. 

"My english is very poor(저는 영어를 잘 못해요)"

수줍은 모습으로 건네는 복무원 아가씨의 메모를 보자 화가 나서 거칠게 항의한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던 것뿐인데.

저 역시 "没关系(괜찮아)"하며 웃습니다. 소박하게 쓴 쪽지와 복무원 아가씨의 미소가 여행자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은 거대한 관광지나 화려한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나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고 이해할 때 성공적인 여행일 것입니다. 복무원의 소박한 미소에 오히려 소심한 제 자신이 반성됩니다. 

귀양 관광

아침 7시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사위는 여전히 어둡습니다. 중국은 모든 지역이 북경 시간을 표준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내에서도 다섯 시간의 시차가 있음에도 정치적인 논리로 북경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경과 귀양의 거리가 2500km인데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숙소 앞에서 구걸하는 소녀. 학생일까 아니면...
▲ 구걸하는 소녀 숙소 앞에서 구걸하는 소녀. 학생일까 아니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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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에 어린 소녀가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있는 소녀의 앞에는"8원만 주면 밥값과 차비로 사용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어제 귀양역 앞에서 보았는데 오늘은 숙소 앞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체육복 차림에 가방을 멘 것으로 학생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알 수 없겠지요. 사진을 찍으려 하자 벌떡 일어나 돈을 요구합니다. 

숙소를 출발하여 도보 관광에 나섰습니다. 처음 간 곳은 인민광장입니다. 거대한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 동상이 내려다보는 광장에는 노인들만 가득합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분무기에 물을 담아 큰 붓으로 광장을 종이 삼아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한자 한자 혼신의 힘을 다해 쓰는 모습은 경이롭습니다. 

인민광장에서 물을 사용하여 서예하는 모습
▲ 작품 활동 인민광장에서 물을 사용하여 서예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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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양지에 노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탑골 공원 모습이 연상됩니다. 주위에는 음식물과 차를 파는 노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들여다 보니 박포 장기판을 놓고 작업 중입니다. 노인들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광장에서 모여 소일하는 귀양시 인민광장의 노인 모습
▲ 노인 모습 광장에서 모여 소일하는 귀양시 인민광장의 노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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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 틈 사이에 작은 사원이 보입니다. 도심사원인 검명사(黔明寺)입니다. 사원 주위에는 대나무 숲이 있으며 앞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운치가 느껴집니다. 거대한 고층 건물 사이에 있는 사원 모습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집니다. 한적한 사원에 아주머니 한 분이 향을 피우며 절을 하고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귀양 도심에 있는 검명사
▲ 검명사 귀양 도심에 있는 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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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수루(甲秀樓)는 귀양시의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남명하(南明河)강 중간 거북바위에 만들어진 누각은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수려한 경치에 감동되어 인재가 많이 나오라는 의미에서 갑수루(甲秀樓)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최근 복원된 누각은 소수 민족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 가미되었으며 특히 야경이 아름답습니다.  

갑수로 정경
▲ 갑수루 갑수로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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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안의 즐거운 여행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일행은 휴식을 취하고 저는 숙소를 나와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알 수 없지만 가다가 마음 닿는 곳에 내릴 생각입니다. 버스비는 2위안입니다. 중국에서 대중교통 요금은 무척 저렴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만이 가능한 일이겠지요. 

마을 빨래터에 모여 있는 아줌마와 아저씨 모습
▲ 빨래하는 아낙들 모습 마을 빨래터에 모여 있는 아줌마와 아저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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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 가게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
▲ 아이들 모습 마을 어귀 가게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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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도심을 지나니 한적한 시골 마을이 펼쳐집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마을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개울에는 동네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아저씨도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등장에 좋아하는 친구들은 아이들입니다. 낯선 사람의 출현은 아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겠지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줄곧 아이들은 제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你好(안녕)?"하고 말을 걸면 아이들은 웃으며 도망을 갑니다. 제 몸짓 하나 하나가 아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에게 무엇인가 설명하지만 저 역시 웃음으로 대꾸합니다. 동네 산책을 하고 아이들에게 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주니 아이들은 웃으면서 무엇이라고 하지만 저는 "감사합니다(谢谢)!"라는 말만 귀에서 맴돕니다. 단돈 4위안(약 우리 돈 760원)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태그:#귀주성, #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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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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