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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성씨가 3년 전에 차린 플라스틱 전문업체.
 오복성씨가 3년 전에 차린 플라스틱 전문업체.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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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동네, 그곳은 군산의 끝인 듯했다. 내 차에 딸린 내비게이션으로는 검색이 되지 않았다. 오복성씨는 "그러면 '성산공원' 치고 오세요. 그 옆이에요"라고 했다. 볕이 잘 드는 산을 깎아서 납골묘지를 만든, 성산공원 조금 못 미친 곳에 오복성씨의 회사가 있다. 1000평쯤 된다는 땅에는 갖가지 플라스틱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플라스틱 한두 개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근데 이게 모이면 냄새가 지독해요. 석유로 만든 거라서 그래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물 냄새가 나요. 그래서 외진 곳에 있는 거예요.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까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못해요. 제가 산북동에서부터 찾다 찾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2011년, 복성씨 나이 스물일곱 살. 또래 친구들이 제대하고 복학해서 대학에 다니거나 취업 준비를 할 때에 그는 사장님이 되었다. 그가 플라스틱 전문업체를 차렸을 때에 "어린 게 부모 '빽' 믿고 그러냐?"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성인 남자와 똑같이 일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부터 일을 한 오복성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청년.
 열일곱 살부터 일을 한 오복성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청년.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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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복성은 키가 크고 덩치도 크다.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었다.

"학기가 새로 시작하면, 선생님들한테 많이 맞았어요. 시간이 좀 지나야 '괜찮은 애구나' 인정을 받았어요."

고교를 포기하고 선택한 길

복성은 맞으면서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간다고 한들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님과 2년간 의논했다. 뜻이 확고한 그는 부모님을 설득했다.

"고등학교 안 가서 서러울 때도 있었죠. 아침에 아파트 거실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애들이 학교 가는 게 보여요. 가끔 후회했죠. 고등학교 친구도 없고요. 사회 친구가 있긴 있죠. 잘 지내요. 함께 커피 마시고, 차 몰고 놀러도 다녀요. 서로 깊은 얘기는 안 해요. 근데 제가 원하는 걸 하려면,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죠."

학교에 다녔다면 고등학교 1학년, 복성은 부모님이 일하는 '군산고물상'으로 출근했다. 고물상 일은 까다롭고 힘들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복성은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다. 철을 규정에 맞게 절단했다. 종이나 플라스틱을 분류했다. 모터나 엔진 종류는 분해했다. 그 안에 있는 철과 구리, 양은과 스테인레스를 따로따로 나누었다.

"자영업자들에게 퇴근 시간은 따로 없어요."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때에 복성은 부모님이 일하는 '군산고물상'으로 갔다. 일은 고됐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 길에서 자기만의 일을 찾아 독립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 다닐 때에 복성은 부모님이 일하는 '군산고물상'으로 갔다. 일은 고됐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 길에서 자기만의 일을 찾아 독립했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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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 일은 밤늦게까지 이어질 때가 많았다. 하루하루 긴 일과, 복성은 그만둔 공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많았다. 부모님한테 "대학은 남부럽지 않게 갈 테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했다. 학교에 안 다닌 지도 2년, 복성은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친구들이 고3 수험생일 때, 그는 수능 점수만으로 원광대학교 공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다닐 때 자동차를 타고 통학했어요. 저는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니까 가능했죠. 기본적으로 차에 관심은 있었지만 큰 관심은 아니었어요. 근데 경기도에서 차 딜러 하는 아는 형이 '마세라티' 차를 타고 왔어요. 저보고 '타 볼래?' 하더라고요. 조수석에 탔거든요. 일산 자유로에서 탔는데 야!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죠."

복성은 '내 차보다 조그만데 왜 이렇게 잘 나갈까?' 궁금했다. 엔진의 차이, 그는 폐차장을 돌았다. 3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의 엔진을 닥치는 대로 샀다. 손에 익을 때까지 거의 1년간 분해만 했다. 복성의 아버지는 한 곳의 폐차장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폐차장에서 사온 엔진을 복성이 분해했다. 취미로 하는 엔진 분해는 밥벌이로 연결되었다.

그의 손에 엔진이 완전히 익었다. 죽은 엔진을 살리기도 했다. 복성은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고 싶었다. 청주에 사는 한 선생님을 찾아갔다. 부속품만 가지고서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복성은 주 4회씩 3년간, 군산에서 청주를 오갔다.

"그때는 잠 안 자도 힘든 줄 몰랐어요."

고물상 일을 하면서 대학에도 다녔다.

"선생님이 밥 먹을 때 숟가락을 안 줘요.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오일을 먹어 봐야, 냉각수를 먹어 봐야만 각각 향을 안다고요. 기름때 묻은 손으로 그냥 먹죠. 냉각수는 맛이 달달해요. 근데 내장이 뒤틀리죠. 아무 것도 못 먹어요. 오일은 속이 미끌미끌하고 시궁창 냄새가 나요. 브레이크 오일은 손에 닿으면, 손이 후끈후끈 올라오고요. 산성이 강해서요."

복성은 원광대학교를 2학년까지만 다녔다.

"대학 공부가요, 가르쳐 주는 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수업료가 세요. 왔다갔다 기름 값도 만만치 않고요."

그는 자동차를 더 깊이 알고 싶었다. 2010년에 군장대학 자동차과에 입학했다. 2년간 수리와 교체를 실습으로 배웠다. 차가 이상하면, "여기 고장 났으니까 이거하고 저거를 같이 봐야 해"정도의 실력이 됐다.

관심은 자동차로 향하고...

복성씨는 한 달에 40-50톤의 플라스틱을 분류해서 분쇄한다.
 복성씨는 한 달에 40-50톤의 플라스틱을 분류해서 분쇄한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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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성씨는 분류한 플라스틱을 사진 속의 조각들처럼 파쇄한다. 그렇게해서 다른 곳으로 납품한다.
 복성씨는 분류한 플라스틱을 사진 속의 조각들처럼 파쇄한다. 그렇게해서 다른 곳으로 납품한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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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그에게는 삶의 활력, 그러나 먹고 사는 일과는 별개. "고물상 하다 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건 재활용밖에 없더라고요." 그는 철보다는 가볍고, 철만큼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에 시선이 갔다. 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압축하고, 파쇄해서 업체에 보내는 일을 하는 회사를 차렸다. 처음 2년 동안은 직원을 두고 일했지만 1년 전부터는 혼자서 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수금이에요. 진짜 안 돼요. 해주긴 해주는데 3~4개월씩 걸려요."

그는 일 하면서 앞날까지 내다본다. 현재 복성씨는 날마다 들어오는 플라스틱을 파쇄해서 조각내는 일을 한다. 플라스틱 조각을 원료(플라스틱을 녹여서 알갱이로 만드는 것)로 내리는 일까지 하면, 복성씨의 회사는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는 직접 플라스틱 원료를 내서 건축자재나 몰딩(창틀이나 가구 따위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것)까지 만들고 싶다.

"몰딩까지만 생산해도, 제 자식(그는 아직 미혼)까지 살 수 있다고 봐요. 지금은 회사에 파쇄 기계만 있고, 원료 내리는 건 없어요. 플라스틱을 녹여서 원료를 내려면 온도 800~900도 이상이어야 해요. 하루 24시간 전기를 틀고 있어야 하니까 한 달 전기세가 1000만 원은 있어야죠. 그러려면 한 달에 플라스틱 100톤을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저 혼자서 40~50톤을 분쇄해요. 여기서 두 배 더 성장해야 가능하죠."

복성씨의 꿈은 자신의 회사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내리는 것이다. 원료를 내리기 위해서는 24시간 내내 전기를 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한 달에 약 100톤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10년 뒤에는 가능하리라 본다.
▲ 플라스틱 원료 복성씨의 꿈은 자신의 회사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내리는 것이다. 원료를 내리기 위해서는 24시간 내내 전기를 돌려야 한다. 그러려면 한 달에 약 100톤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10년 뒤에는 가능하리라 본다.
ⓒ 매거진군산 진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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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재질과 강도만큼 색깔도 중요하다. 파이프 배관은 원료를 검은색으로 내도 상관없다. 그러나 파란색인 건축 몰딩은 플라스틱 분쇄품을 보면서 최소 하늘색 정도까지 원료 색깔을 내야 한다. 제품의 용도에 맞게 각각의 색깔을 입혀서 원료를 내야 하는 것. 그는 "그렇게 되기까지 한 10년 걸릴 거예요"라고 했다. 

그는 좋아하는 자동차에 대해서도 "아직 멀었죠"라고 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타는 롤스로이스 리무진을 갖고 싶단다. 일생을 두고 도전하면서 만들어보고 싶은 차는 마세라티. "타는 맛이 달라요. 제 심장이 울려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를 타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 그러나 그 차만이 가진 확실한 느낌들이 좋단다.

그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벤츠 CL55AMG. 몇 년 동안 자동차를 배우고 난 뒤에야 '나도 차를 만들 수 있겠구나'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는 폐차 직전의 벤츠를 한 대 샀다. 계속 차를 들여다보며 고쳤다. 못 쓰게 된 부속품들을 새로 정비했다. 꼬박 3년이 걸렸다. 그에게 자동차를 가르쳐 준 선생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복성씨는 제도교육이라는 트랙에서 스스로 내려섰다. 부모님의 고물상에서 오랜 세월 일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았다. 독립했다. 외따로 떨어진, 드넓은 일터에서 일한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그는 미래를 낙관하며 몸을 쓴다. 때로 고독을 느끼지만 그것은 인간의 숙명. 복성씨는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일하는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때로 고독을 느끼지만 그것은 인간의 숙명. 복성씨는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 서른 살 청년 오복성씨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일하는 그는 미래를 낙관한다. 때로 고독을 느끼지만 그것은 인간의 숙명. 복성씨는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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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복성씨, #플라스틱 재활용 회사, #플라스틱 분쇄, 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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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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