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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미얀마의 하늘
▲ 10월의 미얀마 하늘 높고 푸른 미얀마의 하늘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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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미얀마 하늘은 보석같이 깊고 푸르다. 나는 깊고 푸른 하늘이 참 좋다. 우주의 기운이 지구로 들어오는 통로 같기 때문이다. 짙고 푸른 우주의 기운은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감싸준다. 시계추처럼 살아가던 마지막 30대의 늦가을, 지친 심신을 안고 무작정 숨어 들었던 속초 바다가 떠오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한 파란 수평선은 말없이 나를 안아 주었다. 가끔 힘들 때 푸른 하늘을 보는 습관은 그때 생겼다. 그래, 힘들 땐 가끔 하늘을 보자.

미얀마의 숨은 보석 와끌래타잉

'와끌래타잉', 미얀마 사람들 집집마다 한두 개쯤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미얀마 말로 '와'는 대나무이고 '끌래타잉'은 의자라는 뜻이니 대나무 의자를 말한다. 와끌래타잉은 그저 투박한 의자지만 처음 보는 이방인의 눈에는 미얀마의 숨겨진 보석으로 보였다. 재료가 고급이거나 디자인이 세련되어서가 아니다. 그저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투박한 생활 용품일 뿐이다.

그럼에도 보석이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평범한 의자에 수천 년 이어온 미얀마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단하고 퍽퍽한 일상이지만 안달복달하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미얀마인들의 여유가 들어 있었다. 그리 풍족하지 않지만 그만큼만 즐기며 하루하루를 관조하듯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들어 있었다. 누구나 감싸 안아주는 깊고 푸른 하늘이 여기 앉아 있었다.

미얀마에 가면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 와끌래타잉(대나무의자) 미얀마에 가면 어디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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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뜯어 보자면 일반적인 의자보다 전체적으로 낮게 보인다. 특히 엉덩이 부분은 푹 내려가 있어 거의 땅에 닿을까 말까 하게 되어 있다. 의자 가운데가 푹 꺼진 모양새다. 등받이는 뒤로 45도 정도로 젖혀져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앉아 있다기 보다는 누워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등받이 끝에는 두툼한 대나무 반쪽으로 마무리 해놨는데, 누우면 목에 딱 들어 맞아 안마하듯 목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목으로 전해지는 대나무의 시원한 감촉이 아주 좋다. 이렇게 누우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보는 자세가 된다.

의자 앞부분은 등받이 끝부분보다는 약간 낮지만 엉덩이보다는 높게 설계되어 있다. 몸에 힘을 빼고 와끌래타잉에 누우면, 엉덩이는 아래로 쑥 빠지고 발을 올리게 되는 구조다. 이때 올린 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의자 끝에도 반쪽의 대나무로 볼록하게 마무리 해놨다. 힘을 빼고 의자에 앉아보면 몸에 딱 맞는 느낌이 마치 어머니 자궁 속 같다.

와끌래타잉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미얀마 사람들
▲ 미얀마의 여유1 와끌래타잉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미얀마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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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거리를 걷다 보면 와끌래타잉에 누워 신문을 읽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휴가지의 비치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풍경이다. 바간(바강)의 게스트하우스 젊은 보스도 거의 하루 종일 문앞 와끌래타잉에 누워 있었다. 문 옆에 기다란 의자가 있는데도 거기보다는 와끌래타잉에 누워 꽁야(씹는 1회용 각성제)를 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신문을 읽기도 하고, 지나가는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가끔은 등받이에 목을 기댄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도 보였다. 무료해 보인다기보다는 여유로워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 운영이 그리 만만치 않을 텐데 여행자인 나보다 더 여행자 같아 보였다. 앉아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눈뜨면 빨리빨리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일상에서는 감히 생각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넉넉하지 않은 퍽퍽한 삶일지라도 와끌래타잉에 기대 하늘을 볼 줄 아는 미얀마 사람들의 여유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와끌래타잉에 누워 신문 보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 미얀마의 여유2 거리를 걷다 보면 와끌래타잉에 누워 신문 보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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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한가

지금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물질적 풍요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몇 년째 세계 꼴찌 수준이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 자료에 의하면 연간 1만4427명이 스스로 삶을 등졌다고 한다. 하루 평균 39.5명꼴이다. 지금 우리는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바간을 떠나기 전날 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싸웅씨와 맥주 한 잔으로 조촐한 이별파티를 했다. 얘기 중에 자살이 한국 사회의 큰 문제라는 것에 대해 말해줬다. 한국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는 미얀마 청년에게는 숨기고 싶은 얘기였지만 싸웅씨 생각을 듣고 싶어 얘기해 줬다.

그 때 어둠 속에서 잘 사는 나라 '코리아'와(한국 드라마 영향으로 미얀마 사람 대부분은 엄청난 부자 나라로 알고 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던 싸웅씨 얼굴이 떠오른다. 제대로 하늘 한번 쳐다볼 틈도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 삶이 와끌래타잉과 겹쳐 보였다. 행복은 꼭 물질적 풍요 속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진정 우리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간 파고다 숲을 돌다 들른 어느 식당 겸 가내수공업 하는 가족-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가.
▲ 미얀마의 여유3 바간 파고다 숲을 돌다 들른 어느 식당 겸 가내수공업 하는 가족-누가 손님이고 누가 주인인가.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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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파티 후 온몸에 힘을 빼고 와끌래타잉에 몸을 맡긴 채 바간의 밤하늘을 즐겼다. 잔잔한 바간의 밤하늘은 온통 별밭이다. 보석같이 반짝이던 바간 하늘의 별빛을 잊을 수가 없다. 버스표를 못 구해 일정이 미뤄진 문제와 여행 막바지 피로감이 와끌래타잉에 묻혀졌다.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 싸웅씨가 어깨를 툭 치더니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한마디 던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Hey! Mr. Jun! No problem! Don't Worry, Be Happy(헤이, 미스터 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역시 다시 보고 싶은 멋진 친구다.

휴식이란 세상을 잊는 일이다. 늘 휴식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와끌래타잉을 보며 미얀마 인들의 삶의 지혜에 박수를 보낸다. 미얀마에 방문하거든 꼭 와끌래타잉에 한 번 앉아 보라. 잠시나마 세상을 잊을 수 있다.

평범한 대나무 의자 하나 가지고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앉아 보지 않고 그 맛을 알까 싶다. 광고 카피 하나가 떠오른다.

"니들이 게 맛을 알어?"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의 표기는 되도록 현지발음에 따랐으며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음을 알립니다.



태그:#미얀마, #미얀마의 여유, #미얀마의 숨은 보석, #땅예친 미얀마, #와끌래타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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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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