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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공간이 작다고 늘 얘기하지만 그래도 요런 재미가 있어 작은도서관이 좋아요
▲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요 꼬맹이들이 도서관 문을 두드립니다 공간이 작다고 늘 얘기하지만 그래도 요런 재미가 있어 작은도서관이 좋아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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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쌀쌀한 날씨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울산이지만 다른 구와 달리 동구는 바다를 옆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바람 부는 날이면 더 쌀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침마다 바다를 보면서 출근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잠시 바다로 점심을 먹으러 나갈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만한 지역이 없는데, 그동안 참으로 몰랐던 것 같습니다.

"샘~ 오늘 날씨도 그런데 우리 일산 바닷가 가서 점심 먹을까요?"
"아이구, 좋~죠. 밥은 누가 사는가요?"
"샘이 저번에 원고료 받으면 한 턱 쏜다고 했잖아요. 샘이 쏴요."
"그런 건 또 언제 기억하고 있었대. 알서요, 한 턱은 안 되고, 그냥 간단한 걸로."
"대신 샘, 오늘 도서관 봉사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할게요."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보는 얼굴이지만 이 자원봉사자 '샘'들이야말로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저에게는, 그것도 도서관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들입니다. 도서관 자원봉사자 샘들이 저에겐 친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문을 닫아도 소리가 나지 않아요. 정말 좋아요.
▲ 저희 도서관 출입문입니다 이제는 문을 닫아도 소리가 나지 않아요. 정말 좋아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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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중에 자원봉사자 외에, '노인일자리사업'이라고 해서 해마다 일정 기간 어르신들이 하루 몇 시간씩 일하시는 사업이 있는데, 저희 도서관에서는 거의 2년 가까이 계속 하신 분이 계십니다. 지난 달, 북페스티벌에 오셔서 자원봉사자 샘들한테 고생한다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가신 분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어르신이 처음 도서관에 오셨을 때, 저는 딱히 어떤 일을 부탁해야 할지 고민에 쌓였습니다. 아침에 오셔서 2시간 정도 일을 도와주고 가시는데, 저는 사실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침에 함께 도서관 청소하고, 책 표지 싸고, 때론 책 정리도 하시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르신이 알아서 일을 찾아 하시게 되었지요.

어르신이 도서관에 계시면서 달라진 것이 많습니다. 도서관 입구 문의 손잡이가 헐거워지면 나사를 조여주고, 바닥이나 모서리가 틀어지거나 갈라지게 되면 일일이 테이프를 붙여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또 못질 할 일이 있으면 표 안 나게 못을 박아주시고, 삐걱거리는 의자는 직접 집에 들고 가셔서 다시 고쳐 오시고, 무거운 그림책 때문에 휘어진 책꽂이도 다시 반듯하게 책을 꽂을 수 있게 해주십니다.

아무 곳에서나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는 재미. 이게 독서삼매경의 지름길.
▲ 작은도서관의 매력? 아무 곳에서나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는 재미. 이게 독서삼매경의 지름길.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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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원봉사자 샘이 도서관에 두고 간 것이 있어 다시 도서관에 들러야 하는데, 저는 일이 있어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전자 보안장치는 하지 않고 옆 문화관 사무실에 부탁을 해놓고 퇴근을 하였습니다. 퇴근을 하고 한참이 지난 뒤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샘~ 큰일 났어요!"
"네? 무슨 일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문 잠그고 보안장치 할라고 하는데 계속 소리 나고 문이 안 닫겨요."
"네? 그게 무슨 말임니꺼? 제가 할 땐 문은 잠겼는데요."
"문은 일단 잠기긴 하는데 보안장치 할라믄 자꾸만 소리만 나고, 안 되네요."

난감했습니다. 문은 잠기는데 전자 보안장치가 안 되다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몇 년 동안 늘 문을 열고 닫을 때 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요 며칠 더 심해졌는데, 그걸 아침부터 어르신이 종이를 덧대고 오리고 만들어 문 닫을 때 나는 소리를 좀 줄여보려고 애쓰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샘~ 문 소리 난다고 받쳐놓은 거 땜에 안 잠긴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아마 그것 때문일 거라 저도 생각했어요."
"일단 받쳐놓은 거 뜯어내고, 문 잠그고 보안장치 해서 열쇠는 사무실 직원 분께 맡기고 왔어요."
"네~ 알겠어요. 얼릉 들어가이소."

일단 도서관 문을 잘 잠그고 돌아갔다니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어르신이 생각해서 그렇게 해놓은 것을 뜯었으니 내일 출근하면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그냥 좀 소리 나더라도 나두자고 하려니, 괜히 섭섭해하실 어르신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늘 도서관의 작은 일부터 신경을 써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도서관이 빛이 납니다
▲ 매일 아침 가지런히 신문과 잡지를 정리해주시는 어르신 늘 도서관의 작은 일부터 신경을 써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도서관이 빛이 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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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어르신이 출근을 했습니다. 어쨌든 출입구 문에 대한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 사실대로 말씀을 드리니,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뜯어져 있는 받침대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애써 만들어 놓은 걸 하루도 사용 못하고 그렇게 된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 문을 닫을 때마다 나는 시끄러운 소리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소리 안 나게 테이프로 오리고 붙여 며칠을 보낸 어느 날, 어르신은 출근하자마자 저를 불렀습니다. 문제의 소리에 대한 원인을 알아냈다며 직접 나사를 풀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어르신의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간단한 것이 원인이었고, 어르신은 앞으로 어르신이 도서관에 나오지 않더라도 저에게 직접 해보라고 당부를 하셨지요.

어르신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직접 아는 분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다고 합니다. 어르신은 문 고치겠다고 해둔 것이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닌가, 어르신의 잘못인 것처럼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손수 아는 분을 찾아가 원인을 알아오신 어르신의 마음이 저 역시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날의 일이 아마 저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샘들에게도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항상 문 닫는 소리에 놀라곤 했는데, 소음이 그렇게 해결이 되고 나니 새삼 어르신에 대한 고마움이 더했습니다. 어르신은 조만간 노인일자리사업 기간이 끝나 도서관에 안 오십니다.

자원봉사자 샘들과 함께, 일이 끝나더라도 책 보러 도서관에 놀러 오시면 어르신이 좋아하는 '다방커피'를 드리겠다고 하니, 그저 웃으시기만 합니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는 게 부담이었던 어르신은 그동안 일하시면서도 가끔 커피 한 통을 사 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르신, 죄송하고 고맙심더. 저는 이렇게까지 하실 줄 몰랐네요."
"아이고, 뭘요. 만날 소리 나서 듣기 싫었는데 이제 좀 나아져서 다행이요."
"그러게요. 이제 어르신 안 계시면 저희 도서관은 우째요."
"그럴 땐 어려워 말고 전화하이소. 요런 건 제가 해드릴게요."

묵묵히 알아서 도서관 이곳저곳을 신경써주시는 덕분에 그동안 제가 너무 편했네요. 어르신, 감사합니다.
▲ 저희 도서관 일을 꼼꼼하게 해주고 계신 어르신입니다 묵묵히 알아서 도서관 이곳저곳을 신경써주시는 덕분에 그동안 제가 너무 편했네요. 어르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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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만 들어도 고마웠습니다. 도서관은 사서만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야 도서관이 문을 열 수 있고, 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도서관은 사람 냄새가 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곳, 바로 우리들의 내일을 말해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 냄새 나는 도서관이 좋습니다. 언제나 책 읽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언제나 삶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곳, 시끌북(Book)적한 우리 도서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도서관이 되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요즘 같은 계절,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 참으로 든든합니다.


태그:#꽃바위작은도서관, #어르신, #사람 사는 이야기, #책읽기, #작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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