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임에는 의심할 바 없다. 침 튀기는 평단의 극찬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상영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여러 명 보았다. 나 또한 주인공 조셉 쿠퍼가 우주로 몸을 싣기까지는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잠시 정신이 나가기도 했다. <메멘토>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할리우드 문법에 딱 맞는 휴머니즘과 가족애 그리고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덧붙인 영화. 이 시대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은 영화의 구석구석에 포진해 있다. 참 궁금하다. 놀란 감독은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 그의 영화에는 분명 스필버그와 다른 부분이 어딘가 있을 텐데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중력과 시간의 차이점이 만들어내는 것

<인터스텔라> 포스터 가까운 미래, 지구는 기후변화로 농작물을 더 이상 재배할 수 없는 황페한 곳이 되고 각국의 정부도 그 극복을 포기했다. 비밀리에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은 NASA는 지구인들을 거주가능한 타행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들이 꿈을 찾아 우주로 향하는데….

▲ <인터스텔라> 포스터 가까운 미래, 지구는 기후변화로 농작물을 더 이상 재배할 수 없는 황페한 곳이 되고 각국의 정부도 그 극복을 포기했다. 비밀리에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은 NASA는 지구인들을 거주가능한 타행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들이 꿈을 찾아 우주로 향하는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나는 그 차이점을 중력과 시간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인터스텔라>의 가장 중요한 논지는 놀란 감독의 실험성을 할리우드 문법에 대입 시켜 진부한 휴머니즘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력과 시간이라는 두 명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만지작거린다. 거의 1세기 전 만해도 중력은 변치 않는 힘이었다. 땅바닥에 멍 때리고 누워 있는 내게 살포시 내려치는 사과 한 개는 당시 절대적인 힘이었다. 시간은 또 무엇이었나? 역사와 그 안에 내재한 인간과 문명의 척도를 삼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점이었다.

최소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세상에 빛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시간은 변한다. 물리적 힘이 가해질 때 시간은 본연의 힘을 빼앗기고 일그러지게 된다. 그것이 중력의 힘이다.

폐쇄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등장한 르네상스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그 부산물로 진일보한 과학의 발전을 얻었다. 그 결과, 니체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며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고 갈 엄청난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니체와 키에르케고르의 적자인 '실존'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인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나? '내'가 과연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있나?

웜홀과 블랙홀 그리고... 사랑

조셉과 머피, 머피와 톰 인류의 터전을 새로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야 하는 아빠와 자신을 떠나지 말 것을 간절히 요청하는 딸 머피. 모든 해답은 머피와 조셉의 대화에 있었다.

▲ 조셉과 머피, 머피와 톰 인류의 터전을 새로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나야 하는 아빠와 자신을 떠나지 말 것을 간절히 요청하는 딸 머피. 모든 해답은 머피와 조셉의 대화에 있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웜홀(wormhole)'은 우주 공간에서 블랙홀(black hole)과 화이트홀(white hole)을 연결하는 통로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난 구멍이다.

모든 항성은 생성된 이후 수천 도의 표면온도와 수만 도의 내부온도가 오르내리는 자체 폭발력을 반복하며 스스로 거대해진다. 현재 우리의 태양은 젊은 세대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이다. 적색 거성이라는 최대 크기의 별이 될 때까지 말이다.

태양은 이렇게 지구와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소행성, 혜성을 비롯해 명왕성 너머 태양계의 끝자락인 오르트구름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우리의 태양은 언젠가 최후를 맞게 된다. 수백억 년이 흘러 폭발의 흔적을 지닌 잔해로 남든지, 아님 우주 공간의 검은 점으로 축소되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하든지….

'킵 손'이라는 이론물리학자의 가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주된 과학적 상상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공간을 접어 순간이동을 가능케 하는 웜홀, 그 웜홀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블랙홀의 유무라든지 말이다. 블랙홀의 반대개념인 화이트홀은 충분한 이론적 바탕이 뒷받침되지 못해 그 존재의 의심을 받고 있지만, 블랙홀의 존재는 이미 증명됐다.

지구만한 엄청난 크기의 물체가 소금 한 조각만의 크기로 작아져서도 지구의 질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아니, 태양만한 크기의 천체가 스스로 폭발을 멈추고 야구공 크기의 조그만 천체로 변했음에도 본래의 질량과 중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주변을 돌고 있는 모든 물체는 물론 전파 신호, 심지어는 빛까지도 삼켜 버린다. 이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물리적 입자로 변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시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우주적 현상은 다중 우주론이나 평행 우주론, 시간여행을 꿈꾸는 상대성이론과 외계 생명체 등 우리 앎의 한계를 벗어난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 냈다. 영화 속에서 우주선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웜홀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지평선으로 튕겨져 나오는 장면은 그럴듯하다.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왜 이런 주제들을 차용해 가족 간의 화해와 인류의 구원을 그리려 했을까? 게다가 엔니오 모리꼬네와 더불어 현존 영화음악계의 쌍두마차인 한스 짐머의 영감까지 덧붙여가며 음악적 설득력을 더해야 했을까?

별과 별 사이의 거리만큼... 멀고 먼 아버지와 딸의 거리

밤하늘을 바라보는 조셉과 머피 영화의 해결책은 조셉과 머피의 대화에서 발견된다. 인류를 구한다는 목적 아래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피.

▲ 밤하늘을 바라보는 조셉과 머피 영화의 해결책은 조셉과 머피의 대화에서 발견된다. 인류를 구한다는 목적 아래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피.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이는 'Interstella'라는 영문 제목의 의미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이 제목은 행성 혹은 항성 간의 거리, 즉 별 사이의 거리를 뜻한다. 이 의미에 조셉 쿠퍼와 딸 머피의 관계를 대입시켜 보자. 매몰차게 딸을 버리고 지구를 떠난 조셉 쿠퍼는 착실하게 미션을 수행해 나가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발발로 귀중한 시간들을 소비하게 된다. 그 귀중한 시간은 그들에게 몇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지구에서는 수십 년의 시간에 해당한다.

잃어버린 시간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그들이 감당할 수가 없다. 오히려 부녀지간의 이해의 폭을 오히려 더 넓혀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조셉 쿠퍼와 머피를 통해 인류의 구원과 화해를 말하려던 놀란의 설득력은 여기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인터스텔라, 즉 지구의 과학기술과 시간으로는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공간의 만남을 중력과 그로 인한 시간의 일그러짐을 역이용함으로써 가능케 했다.

비록 공간과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역설적인 과학의 이면을 통해 둘은 서로에 대한 화해와 이해의 공간을 갖게 된다. 머피가 생각했던 아버지로서의 무책임감은 자신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아버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중력은 가족을 향한 애정, 시간은 가족을 이어주는 사랑. 놀란 감독은 할리우드의 진부한 문법을 일부 차용한다. '가족애'의 강조가 그렇다. 그러나 그대로 따르는 것만도 아니다.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이중적 결론'이 아니었나 싶다.

예컨대 할리우드 모든 장르를 초월한 애정 라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등장인물 간 멜로에 대해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저 영화 말미에 가서야 그 흔적을 조금이나마 건져볼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닌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할리우드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우주로 떠난 탐험가들 기후변화로 인해 전세계는 농작물의 재배가 불가능하며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다. 지독한 황사와 가뭄으로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린 지구...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NASA에서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실행한다.

▲ 인류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우주로 떠난 탐험가들 기후변화로 인해 전세계는 농작물의 재배가 불가능하며 심각한 식량난에 처한다. 지독한 황사와 가뭄으로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린 지구...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NASA에서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실행한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과학기술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가까운 미래에 기후를 통제하지 못하는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 묘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현재도 기후와 자연의 변화를 약간이나마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영화 속 배경은 멀지 않은 미래지만 오히려 일부 과학기술은 쇠퇴한 시대이다. 우주선이나 기계·로봇에 대한 묘사도 적나라하다. 웜홀을 통과하고, 다른 우주를 탐사해야 하는 최첨단 우주선이라고 보기에는 내부 디자인이 너무 거칠다. 재질에서 오는 투박한 색감과 이미지 등은 놀란 감독이 과학적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물리적 완성품에 집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우주선에서 중력을 만들어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인간은 무중력 상태로 오래 머물 수 없다. 중력에 적합한 상태로 태어난 인간은, 적당히 아래로부터 당겨지는 힘을 받아야 뼈의 구성물질인 칼슘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혈액순환 및 기타 생체리듬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장거리 우주여행이나 우주 정거장에서 중력은 필수적이다. 이 중력은 원형 우주선을 회전시킴으로 가능하다. 영화 <엘리시움>에서도 우주공간에 지구를 본뜬 거주지를 만들고 중력을 일으키기 위해 원형으로 된 제2의 지구를 회전 시킨다.

놀란 감독은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극복할 수 없는, 태초 자연의 원리에 무릎 꿇고 마는 인간을 보여준다. 또 잡다한 과학적 지식이 '과연 얼마나 인간의 인간다움을 가져올 수 있을까'를 비판한다. 영화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중력'과 '시간'이다.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설에서 가장 도드라진 개념은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내가 딛고 사는 이 땅에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알 수 없는 무지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종교적 언어로 설파한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른 이유, 이 영화가 '이중적'이라는 분석의 근거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구의 기후와 환경의 변화도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닥쳐올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으며 땅바닥에 발을 내 딛고 있는 한은 중력과 시간의 영향 아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지구를 조금만 떠나도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변해버리는 중력과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에 혹은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살고 있는 한 우리는 가정이라는 중력과 사랑이라는 시간 안에서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승한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office3000/22018424795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잇습니다.
인터스텔라 중력 시간 웜홀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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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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