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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은 어떻게 생산될까? 지난 11월 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선 한 방송프로그램 제작진과 함께 농장 동행취재를 하게 됐다. 닭들을 풀어 키워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의 촬영은 주인의 적극적인 협조로 수월했다. 반면 닭을 배터리 케이지에 넣어 키우는 일반 농장 촬영은 쉽지 않았다.

"배터리 케이지에서 닭을 키우는 게 약점이란 걸 알아요. 방역도 방역이지만, 아무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섭외 중에 만난 배터리 케이지 농장 주인의 말이다. 방송국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역장비를 갖추고 농장을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방역 문제로 촬영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니 이해는 갔다. 그러나 그 이유가 정말 방역 때문만이었을까?

농장 주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배터리 케이지에 갇혀 사는 닭이 낳은 달걀보다 자유롭게 땅을 밟고 사는 닭이 낳은 달걀을 원한다는 걸. 이것이 사육 현장 공개를 꺼리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물론 배터리 케이지 사육은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점점 건강한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을 먹길 원하는 소비자들은 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건강한 달걀 원하는 소비자들, 양계농장 현실은?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목초란 제품들  닭에게 목초를 먹여 생산했다는 달걀들. 제품 이름과 이미지만으로는 케이지 사육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목초란 제품들 닭에게 목초를 먹여 생산했다는 달걀들. 제품 이름과 이미지만으로는 케이지 사육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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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닭의 사육방법에 대한 축산물 표시 기준은 없다. 식용란수집판매업의 영업자가 계란을 포장할 때 최소 포장 단위에 유통기한, 생산자명, 판매자명 및 소재지, 제품명, 내용량, 기타 표시 사항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대부분 제품의 이름 혹은 브랜드 이미지에 의존하기 쉽다. 문제는 목초를 먹인 건강한 닭이 낳았다는 제품이나 착한 달걀, 건강한 달걀 등 알을 낳는 닭의 사육 방법에 대해 오해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럴듯한 이름과 이미지에 속아 제품을 구매할 위험이 높다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는 '목초를 먹인 건강한 닭이 낳은 달걀', 일명 목초란을 보자. 목초를 먹인 '건강한 닭'이란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제품에서 초원에 닭을 풀어놓고 키우는 장면을 연상하기 쉽다. 심지어 제품 겉면에는 풀 이미지까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제품명의 목초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목초(牧草), 즉 풀이 아니다. 지난 며칠 '목초란'을 판매한다는 업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육방법에 대해 물었다. 상담자들 모두 해당 제품들이 케이지 사육으로 생산한 달걀이며, 목초액을 사료에 첨가해 먹이는 것이라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목초액은 나무를 숯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액체를 말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날개를 펴기도 힘든 철장에 닭을 가둬놓고 특정 물질이 첨가된 사료를 먹이는 게 닭 혹은 소비자에게 과연 좋은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대형마트 달걀 코너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을 비교해보면 케이지 사육으로 생산한 '목초란' 제품과 동물복지 인증 제품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다.

라벨 하나 붙였을 뿐인데, 대우가 달라졌다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들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 알만 낳고 살아가는 암탉. 관리를 편리하게 하고 많은 닭들을 수용해 생산성을 높이려 도입된 시스템이다.
▲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들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 알만 낳고 살아가는 암탉. 관리를 편리하게 하고 많은 닭들을 수용해 생산성을 높이려 도입된 시스템이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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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이 내세우는 '건강한 닭'이란 것도 과연 사실일까? 배터리 케이지에 평생 갇혀 사는 닭이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이곳의 닭들은 지루함과 본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서로의 깃털을 쪼거나 공격하는 현상인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발생한다. 오랜 기간 한 자리에서 알만 낳는 결과, 뼈와 근육이 약해져 골다공증에 시달리다 죽는 닭들도 있다. 발톱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닭들은 철망 위에 서있기도 고통스럽다.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아니다. 유럽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의해 지난 2012년 A4 반 장 크기 공간에서 계속 알만 낳게 하는 '암탉의 배터리케이지(Battery Cage)' 사육을 금지했다. 현재는 케이지라 하더라도 닭의 습성을 충족할 산란둥지나 횃대 시설을 설치해야 하고, 최소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유럽과 호주에서는 소비자들이 달걀을 구매할 때 의무적으로 닭의 사육방법을 알 수 있는 라벨링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단지 케이지 사육 여부만이 아니라 닭들이 야외 방목장을 이용할 수 있는지도 구분해 표기해야 한다.

영국 방사 사육(Free range) 달걀 제품 유럽은 케이지 사육으로 생산된 달걀은eggs from caged hens, 실내 평사 사육으로 생산된 달걀은 Barn eggs, 닭이 야외 방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달걀에는 Free range라고 표기해야 한다.
▲ 영국 방사 사육(Free range) 달걀 제품 유럽은 케이지 사육으로 생산된 달걀은eggs from caged hens, 실내 평사 사육으로 생산된 달걀은 Barn eggs, 닭이 야외 방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달걀에는 Free range라고 표기해야 한다.
ⓒ The lakes free range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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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달걀 표시사항 설명  영국은 이력관리를 위해 제품 겉면뿐 아니라 달걀 껍질에도 사육방법을 표시한다.
▲ 영국의 달걀 표시사항 설명 영국은 이력관리를 위해 제품 겉면뿐 아니라 달걀 껍질에도 사육방법을 표시한다.
ⓒ British 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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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소비자들은 심지어 마요네즈, 빵, 과자처럼 달걀이 재료로 사용되는 식품의 표시사항에도 사육방법을 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케이지 달걀을 이용해 식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아예 케이지-프리 달걀(Cage-Free Eggs, 닭을 케이지에 가두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한 달걀)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사육방법 표시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단계적으로 동물복지 증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 농장동물보호단체인 CIWF에 따르면, 영국은 2004년부터 사육방법을 표기하는 라벨링 제도가 실시되면서 판매되는 케이지-프리 달걀이 2003년 31%에서 2011년에는 51%로 증가했다.

라벨 하나 붙였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케이지에서 벗어나 땅을 밟고 사는 암탉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효과 때문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달걀뿐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다른 축산물에도 사육방법을 표기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AI로 살처분 된 양계장에 다시 닭 사육... 이런 거 아나?

달걀 제품에 붙은 각종 마크들 소비자들이 인증마크만으로 닭의 사육방법을 알기란 쉽지 않다.
▲ 달걀 제품에 붙은 각종 마크들 소비자들이 인증마크만으로 닭의 사육방법을 알기란 쉽지 않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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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소비자들이 포장이나 문구에 속지 않고 건강한 달걀을 구매하려면 '동물복지' 인증마크가 붙은 제품을 구매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정부의 홍보 부족으로 동물복지인증제를 아는 소비자도 드물지만, 동물복지 제품과 다른 인증 즉, 무항생제 마크나 HACCP 인증 마크의 차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게 붙어있는 달걀을 낳은 닭들도 배터리 케이지 사육인 경우가 대다수다. 인증마크만으로는 사육 방법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것. 유럽이나 호주처럼 사육방법을 표시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사육방법 표시는 건강하고 안전한 축산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늘리며, 평생 땅 한 번 밟지 못하고 좁은 철장에 갇혀 알만 낳고 살아가는 암탉의 복지도 개선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축산업으로 발전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좀 더 싼 값에 많은 양을 먹기 위해 발전된 공장식 축산시스템은 가축 전염병의 발생과 바이러스의 빠른 확산을 부추겼다. 그리고 수천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동물의 고통뿐 아니라 방역과 살처분으로 소요된 경제적 피해도 수천억 원에 달한다. 모든 것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지금 변한 게 무엇일까. 올해 1월 발생했던 AI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사라질 거라던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연중 발생하고 있다. 철새가 떠난 후에도 정부는 여전히 철새가 AI의 원인이라 말한다. 살처분으로 텅 비었던 케이지 안에는 다시 닭들이 채워지고, 그 닭들이 낳은 달걀이 여전히 우리 밥상 위에 올라오고 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먹는 축산물이 어떤 방법으로 식탁에 오르는지 투명하게 알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동물자유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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