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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전공노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2014년 11월 12월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충재 전공노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2014년 11월 12월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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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학벌보다 생계가 급했기에 공무원이 됐다. 9급 공무원, 그가 첫발을 디딘 26년 전엔 '말단 공무원'이라고 불렸다. 말단(末端) 공무원(公務員), 공무원 중에 맨 끄트머리란 뜻이다. 바늘구멍 취업난인 요즘은 9급 공무원 시험 경쟁이 치열하지만 그때는 시시껄렁했다. 고교 동창들이 서울을 비롯한 도회지로 대학물을 먹으러 갈 때 그는 산골짝 고로쇠 물로 청춘의 목마름을 달래야만 하는 시골 면서기였다.

공직생활 10년이 지나면서 말단에서 벗어났다. 공무원 아내를 만나 토끼 같은 자녀들도 두었다. 비록 박봉이지만 맞벌이로 알뜰살뜰 모으면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은 도야지가 아니다. 배부르고 등 따숩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그 또한 공직생활만큼이나 부당한 명령복종과 비민주적 상명하복의 비애를 삼켜야 했다. 그러다가 '공무원도 노동자다!'라는 사실을 깨닫으면서 굴종의 삶을 박찼다.

2001년 초,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회'(전공련)가 떴다. 공무원노조는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출발했지만 박정희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불법화가 됐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등장하면서 50년간 숨죽이던 공무원들이 공직사회개혁과 노동기본권 회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공무원들의 단체행동은 급물살을 탔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입법부와 사법기관 등의 6급 이하 공무원 7만 명이 전공련에 가입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된 지금은 14만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의 공무원노조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당시 정부는 평화적인 대화와 협상보다는 사법처리와 징계방침 운운하면서 공무원들의 단체행동을 묵살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도 전공노 합법화를 막았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전공노를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정권의 하수인 곧, 정권 유지의 도구였던 공무원들이 자주선언을 하자 당근 대신에 채찍을 든 것이다.

시골 면서기였던 그는 광양시공무원직장협의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전공노 전남본부 사무처장과 광양시지부장, 전공노 중앙 사무처장과 부위원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 3월 전공노 임원 재선거에서 위원장에 당선됐다. 9급 면서기에서 14만 조합원 전공노의 수장이 되기까지 그는 연가파업과 총파업, 시국선언과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4차례 징계를 받았고, 연가파업 등으로 8차례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님, 수백만 표가 날아갔습니다!"

2014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 대회' 현장.
 2014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 대회' 현장.
ⓒ 전국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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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전공노 사무실에서 이충재(46) 위원장을 만났다. 서울 생활에 대해 물었더니 "집행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어서 제대로 못 자고, 먹는 건 부실하고, 정부와 싸우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다"고 했다. 3고(苦)로 인해 체중이 5kg나 줄었다고 했다. 그래도 공무원들을 위해 싸울 수 있으니 보람 있다고 했다.

아내와 아들딸의 전폭적인 응원 덕분에 힘을 낸다는 그는 1~2주에 한 번은 가족을 만나러 시골을 다녀온다. 취재 중에 고3 수험생인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아들의 시험을 걱정하는 보통 아빠였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보통 공무원 가장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14만 조합원의 수장이 됐을까? 위원장 당선 배경이 궁금했다.

"정파에 속해야 노동운동과 노조선거에 유리하다. 하지만 나는 정파보다는 대중노선을 취해왔다. 정파가 없으니 조직도 없다. 무정파 공무원 노조운동과 정책노조를 꿋꿋하게 지향해왔다. 일관된 운동방향을 신뢰한 조합원들의 지지로 당선됐다. 공무원노조는 노동3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아스팔트 투쟁에도 한계가 있지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을 살려서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진 빚을 꼭 갚고 싶다."

다음은 공무원 연금법 개정에 대한 일문일답이다.

- 공무원에 대한 국민여론이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무원 불만여론'을 조성하면서 연금법 개정여론을 장악했고, 새누리당은 공무원 연금법개정 연내처리를 강행하고 있다. 그런데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자 국민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견제와 비판 의식을 가진 국민들을 간과한 것이다. 여론의 지형이 바뀌자 청와대의 불호령에 꼼짝 못하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이탈 여론이 더 늘어나면 의원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 연금법 개정안 반대를 철밥통 싸움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고 한다면 그건 밥그릇을 챙기는 게 아니라 밥통을 깨는 것이다. 전공노의 투쟁 목표는 국민과 함께 살길을 찾자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잘못 설계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제대로 설계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내년 11월 1일, 출산부터 노후까지 국민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선순환 복지국가 어젠다를 발표할 계획이다."

-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연금법 개정 강행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두 가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비난 화살을 공무원들에게 돌리고, 개헌론 이슈로 레임덕이 오는 것을 막으려는 포석으로 본다. 국민대통합을 내건 정권이 통합은커녕 국민과 공무원을 이간질 시키는 것을 보면서 아주 나쁜 정권이란 생각이 든다. 다른 하나는 재벌 보험사들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노골적으로 사적연금을 활성화 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 공무원 연금법 개정에 정권의 명운을 건 것 같다는 시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잃어 버린 권력을 되찾기 위해 공무원 연금법 개정에 명운을 건 것 같다. 그렇다면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연금법을 개악하려고 하자 고위직부터 하위직까지 공심(公心)이 확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박 대통령이 공무원들을 적으로 만들면 정권 유지가 힘들어질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표를 잃더라도 공무원 연금법 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하셨는데 "김무성 대표님, 최소한 수백만 표가 날아갔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연금법 개악에 대해서만큼은 공무원들이 지역과 세대, 퇴직과 현직, 성별을 가리지 않고 현 정권과 새누리당을 반대하고 있다."

"국민과 공무원 이간질... 박근혜 정부에 속지 말라"

2014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 대회'에 참석 중인 이충재 위원장.
 2014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 대회'에 참석 중인 이충재 위원장.
ⓒ 전국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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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신임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리모컨으로 조정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청와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새누리당 의원 158명 전원이 연금법 개정 법안에 서명 발의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로봇 병정으로 전락 시킨 독재적 발상이다. 헌법기관의 본분을 망각한 새누리당 의원들도 한심하다. 대한민국이 과연 3권이 분립된 국가인가. 박 대통령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요체를 권력으로 무너뜨렸다.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대통령 신임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의사 곧, 대통령과 국정운영을 함께할 수 없다는 행동 즉, 불신임으로 나타난다면 권력을 내놔야 한다. 공무원에게는 복종의 DNA가 있다. 정부 정책은 협력해야 한다는 잠재적 의식을 가진 공무원들을 정권이 세금 도둑놈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하위직 공무원들의 마지막 보루인 연금까지 뺏으려 하고  있다. 고위직 공무원과 달리 하위직 공무원들은 퇴직하면 재취업과 영리행위가 금지된다. 공무원들은 지금 노후가 붕괴되는 위기감 앞에서 상상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다."

- 현재대로라면 타협과 합의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예상된다.
"공적연금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사회적 합의에도 성공했다. 반면에 사회적 합의 없이 강행한 정권은 무너졌다. 사회적 합의는 국제적 상식이다. 나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명박 정권도 사회적 합의 형태를 취하면서 공무원 연금개정을 논의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더 나쁜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새누리당의 일방적 연내처리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국민 여론은 사회적 합의를 하라는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국민들과 함께 토론해 나간다면 여론은 더 돌아설 것이다."

- 총파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총파업을 해야만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2004년에 공무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총파업을 시도했다. 그때는 공무원들의 참여율도 높지 않았고, 사회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2004년엔 지도부가 파업을 요구했다면 지금은 조합원 공무원들이 지도부에게 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2014년 11월 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2004년 총파업 1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이충재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2014년 11월 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열린 '2004년 총파업 1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이충재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 전국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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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고통 분담 대책은 없는가.
"정권들은 위기 때마다 국민과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전가해왔다. 그렇게 했는데도 문제해결은커녕 빈부격차만 커졌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국민들의 삶이 더 악화되기 전에 국민복지와 재정 대책을 세워야 한다.

수백 조를 쌓아놓은 재벌과 지하경제에 숨긴 부자들의 돈에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대폭 인상하고 사회보장세와 연금세를 도입할 시점이 됐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다시 설계해서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은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퇴임하면 보수액의 95%를 연금으로 받는다. 대통령이 공무원 연금개정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자기 기득권부터 포기해야 한다. 자기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생존권이 절박한 하위직 공무원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어떤 공무원이 수긍하겠는가."

-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무원과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박근혜 정부에 속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국민들은 국가와 집권세력에게 노후의 삶을 보장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청와대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의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권은 바꿔야 한다. 국민의 삶을 하향평준화하려는 무책임한 정권은 심판해야 한다."


태그:#공무원연금법, #전국공무원노조, #이충재위원장, #박근혜대통령, #김무성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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