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영화 <카트>를 두고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의 주체가 있다. 바로 노동자, 특히 법과 제도의 보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흥미로운 건 작품이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이 노동자들의 아픔을 다루면서 상업 영화의 외투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들이다. 부지영 감독이 그간 한국 영화에서 찾기 힘들었던 여성 집단 이야기에 도전하게 된 건 여러 모로 우리에겐 행운이 아닐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도쿄국제여성영화제 등에 여성 소재 작품을 내놓으며 일관된 행보를 걸었던 그다. 제작사 명필름이 <카트>의 메가폰을 쥘 감독을 물색할 때 그간 상업영화 연출 경력이 전무했던 부지영 감독을 만난 것도 곧 여성 노동자 문제를 적절하게 풀어낼 수 있는 인물임을 알아본 터였다.

마트라는 공간에 담긴 여성의 연대, 그것이 <카트>의 힘

표면적으로는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기이기에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가장 먼저 연상하기 쉽지만, 부지영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보다 넓은 층위의 노동 문제를 담고자 했다. 각색과 취재를 병행했던 1년여의 시간 동안 부지영 감독은 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를 비롯해 다큐멘터리, 뉴스, 다양한 르포 기사를 접했다. 이 과정에서 그 역시 각성했다.

"저 역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일반 시민 수준이었죠. 취재 차제가 제겐 배움의 과정이었어요. 최저 임금 문제, 그리고 왜 예전처럼 파업이 힘을 갖지 못하나 의문을 가졌죠. 파업은 곧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들의 권리인데 이젠 권리가 아닌 것처럼 돼 가잖아요. 폭력을 가하는 주체들은 점점 세련돼져 가요. 이해관계가 아닌 사람들끼리 싸우게 하잖아요. 노동자들끼리, 정규직과 비정규직끼리 반목하게 되는 답답한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카트>가 남자들의 투쟁기였다면 굳이 제가 안했을 겁니다. 이 소재는 사실 누가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이 영화를 통해 여성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굳이 리더십이란 게 필요할까요. 함께 일하고 살기 위해서는 유대감과 동료애가 중요하지 짱 먹는 게 그리 중요할지 모르겠어요."

부지영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리더인 적도 없었고, 배우와 스태프들과 협업하고자했다"고 자신의 마음가짐을 전했다. 스스로도 누군가 무리에서 앞장 서는 사람을 볼 때 갸우뚱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을 대하는 그만의 자세가 느껴졌다.

노동은 시키면서 권리는 알려주지 않는 사회, 누가 책임져야 할까

 회사 측의 일방적인 부당해고 통보에 항의하는 더마트 직원들. 영화 <카트> 중에서.

회사 측의 일방적인 부당해고 통보에 항의하는 더마트 직원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명필름


그래서인지 <카트>는 약자와 강자를 묘사하며 단순한 대결구도에 빠지지 않았다. 회사로부터 부지 간에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연대해갔고,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며 위기를 함께 극복해갔는지에 주목했다. "함께 연대했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더 슬프지 않나요? 그게 결국 잘못된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일들이니까요" 부지영 감독은 그렇게 설명했다.

여기서 다른 결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도경수가 맡은 태영과 김강우가 연기한 동준이라는 인물이다. 태영은 마트 노동자로 가장 노릇까지 하느라 바쁜 엄마 선희(염정아 분)에게 반항하다 스스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느낀 '을'의 경험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동준은 대형마트 정규직으로 창창한 앞날이 보장됐지만, 연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앞장서 그들과 함께 한다.

"더 묘사하고 싶었던 인물들이 많은데 그중 동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해 아쉬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끌며 노조위원장이 됐지만 아픔을 겪잖아요. 그 이후 그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저 역시 궁금해요. 그 부분은 아마 웹툰 <송곳>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웃음).

태영이를 통해 모자 관계를 그렸는데 어쨌든 청소년도 결국 커서 노동자가 될 테니 알아야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노동자의 권리, 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구에게 배우고 있나요? 학교에서 알려주면 좋을 텐데, 우리 사회는 제대로 그걸 알리고 있는지요. 의문이에요." 

공감 능력이 부재한 사회 "들어주는 성숙함이 필요"

 영화 <카트>의 부지영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종종 우리는 형식적 객관주의에 빠지곤 한다. 갑과 을의 갈등에서 을이 문제를 제기한 만큼 갑의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사고 방식에 부지영 감독은 "을을 곧 힘  없고 약한 사람들이지 않나, 그들을 떼쟁이라고 부르는 용어 또한 심하게 불편하다"고 일갈했다. 시민으로서 또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으로서 그가 느낀 바가 <카트>에 상당 부분 녹아있었다.

"누군가의 갑이 또 누군가에겐 을이 될 수 있어요. 갑과 을이 늘 바뀐다는 얘기죠. 여성으로서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 안에서 포기할 건 포기하며 살게 돼요. <카트>에도 그런 포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등장하죠. 실존하는 여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개인의 희생과 일을 나눠서 봐야하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해요. 개인의 삶도 유지하면서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하죠. 

<카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생계를 위해 싸움을 시작하지만 결국 자기를 발견하는 기회를 얻는다는 거예요. 김영애 선생님이 맡은 청소원 순례가 '청소밥 20년 만에 처음 내 목소리를 낸다!'고 외치잖아요. 아이러니한 거죠. 억울한 해고에 들고 일어서면서 생전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게요."

공감과 소통을 뻔하다 생각해선 안 된다. 영화인이면서 동시에 엄마이기도 한 부지영 감독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공감능력 지수를 돌아보곤 한다"면서 "아이가 보호자의 공감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듯 사회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가 불행한데 우리만 행복한 건 별로잖아요. 문제는 그 괴리가 점점 커진다는 거죠. 비정규직 문제, 밀양 송전탑 문제, 4대강 문제 등이 벌어지는데도 각자의 삶이 바쁘고 여유가 없다면서 흘리고 말잖아요. 귀 기울이고 듣는 것부터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카트>의 개봉 직전까지 부지영 감독이 걱정했던 게 있었으니 바로 영화의 배급 상황이었다. 대기업 자본이 아닌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돈을 투자했고, 중소 제작자가 나선 작품이다. 극장 체인을 가진 대기업이 자사 투자 영화를 주로 트는 현실에서 기특하게 <카트>는 꽤 선전 중이다. 감독이 걱정했던 배급이라는 '마지막 산'을 넘어 <카트>는 관객들과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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