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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 국경선을 넘으니 보스니아의 편안한 시골풍경이 시작되었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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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이렇게 안 보내주는 거야?"
"쟤들은 급할 거 하나도 없어요."
"어머나, 저 자동차는 발 시트 아래까지 다 뒤지네. 혹시 마약범인가?"
"그럴 수도 있지요."
"젊은 애들인데 짐이 많긴 많다. 꼭 이삿짐 같아. 자동차 본 네트까지 열어보네. 와, 정말 심하다."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로 가는 길에는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로 넘어가는 국경선은 높고 높은 벽이었다.

보스니아로 넘어가는 국경선, 멀고도 멀었다

첫날 밤을 세르비아 반자코빌자카란 곳에서 자고 다음 날 일찍 보스니아를 향해 출발했다. 국경선을 넘기 전 가이드는 말했다.

"어제 우리가 잔 곳에서 잠을 잤다는 확인서를 이곳에 제출해야 해요. 이 국경선은 넘기 힘든 곳이에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1. 모두 내려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여권과 대조 확인한다. 2. 국경선 감시자가 버스에 타서 여권을 모두 걷어가 조사한 다음, 다시 버스에 타서 한 사람씩 대조확인하고 여권을 돌려준다. 3. 감시자가 버스에 타서 한번 훑어 보고 그냥 보내준다. 하지만 3번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런 예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깐."

가이드의 말대로 국경선 넘기란 정말 힘들었다. 우리 버스 앞에 있던 젊은 남자 둘이 탄 자동차를 검열하느라 우리가 탄 버스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모든 자동차를 그런 식으로 검열하지는 않고 무작위로 조사한다고 한다. 그런 곳이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엄두조차 못낸다.

세르비아 국경선에 있는 감시단은 완전무장에 총을 쏴도 괜찮을 만큼 실권이 있다고 한다. 20분,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우리 버스 기사는 슬로베니아사람이다. 그 기사는 버스 탑승자 명단을 들고 동분서주 하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가 계속되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은 물론 떠드는 소리도 끊긴 채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40분 정도 지나자 앞에서 검사를 받던 젊은 청년들이 내린 짐을 모두 싣고 국경선을 넘어갔다.

그제야 감시자가 우리 버스에 탔다. 여권을 걷으면서 일일이 얼굴과 대조를 한다. 32명의 여권을 가지고 내리더니 한참 후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다시 여권과 얼굴을 대조하면서 여권을 돌려준다. 50분이 지나서야 우린 국경선을 겨우 넘을 수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와 정말 대단하다"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라예보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의 전쟁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역시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였다. 전쟁 전의 사라예보는 아름다운 전경을 가진 동양적인 도시였다고 한다.

사라예보는 이슬람과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터키인과 유대인과 또 다른 이민족이 평화적으로 공존했지만, 관용의 전통은 세르비아인의 대포에 의해서 부서졌다고 한다. 최근의 전쟁 동안 일만 명 이상이 죽었고 오천 명 정도가 부상당했다고 한다.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는 현재 트램이 움직이고 많은 카페와 호텔들이 문을 열어 관광객들을 다시 맞이하고 있다.

국경선을 넘어 보스니아로 들어섰다. 낭만적인 시골 풍경이 피곤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시골 풍경은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다. 다만 그들은 산꼭대기까지 집을 지어 산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부자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잦은 전쟁의 위험에서 가족과 가정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보스니아 산야의 풍경을 즐기며 가고 있었다. 그때 강줄기가 나오면서 하얀 무엇이 나무에 걸쳐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백로 같은 하얀 새 종류인 줄 알고 "여긴 웬 새가 저렇게 많아?"하니 옆에 앉아있던 올케가 "새가 아니라 쓰레기 같은데요"라고 했다.

"어머나 그런가?"하고 자세히 보니 헌옷들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지난 6월에 사바강이 범람해서 홍수가 일어나 이곳까지 피해가 컸어요. 이상기온은 이상기온이에요. 처음 있는 일이래요."한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 폐가인 듯한 빈집들도 자주 보였다.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골에는 폐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의 반자코빌자카를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도착했다.

 세계1차대전의 발화점이 된 사라예보의 라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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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차 대전의 시작이 되었다는 라틴다리

사라예보에는 우리나라 교민이 딱 5명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한 가족이라고 한다. 그 가족 중 한 명의 여인이 가이드로 나왔다. 그는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은데요. 며칠 만에 나오는 햇볕이에요. 이곳도 여러분을 환영하는가 봅니다"라고 했다. 그동안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다면서 햇볕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가 간 그때(10월26일~11월2일), 발칸지역은 우기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춥기는 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가는 곳마다 햇볕이 있는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사라예보 하면 어쩐지 많이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1973년 이에리사가 이곳에서 탁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것 이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현지 가이드의 첫 안내가 시작된 곳은 1798년에 만들어진 라틴다리라는 곳이었다.

그 다리는 세르비아 청년 3명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시켜 세계1차 대전의 시발점이 된 곳이라고 한다. 세르비안 3명의 청년도 그것이 그렇게 큰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1차 대전은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요한바오르2세가 방문해서 기념동상을 세웠다는 로마가톨릭대성당
▲ 사라예보에서 가장 큰 로마가톨릭 대성당 요한바오르2세가 방문해서 기념동상을 세웠다는 로마가톨릭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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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도들의 안식처인 가즈 하스레브베이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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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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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는 가톨릭, 이슬람교, 세르비아정교회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고 보기 힘든 이슬람교에 많은 관심이 갔다. 가끔 길에서 히잡을 쓰고 있는 여성들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남, 녀가 각기 다른 기도실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3대 종교 시설을 둘러보고 나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다. 점심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즐겨 먹는다는 터키식 케밥으로 식사를 했다. 그 식당은 각 나라의 재상들이 많이 오는 유명 음식점이기도 하단다. 처음 먹어보는 이슬람식 식사, 후식으로는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왔지만 우리나라의 커피맛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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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예보의 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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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샐러드가 나온 뒤, 터키식케밥, 에스프레소커피가 나왔다
▲ 이슬람교들이 즐겨먹는다는 터키식 케밥 채소샐러드가 나온 뒤, 터키식케밥, 에스프레소커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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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 시간이 끝나고 터키인들의 거리 바슈카르지아 광장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바닥이 온통 대리석으로 되어있어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한 바퀴 둘러보다 장인의 골목이란 곳에서 발길이 멈추어졌다.

 터키인들의 거리 바슈카르지아의 장인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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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주석을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 진열되어 주인을 찾고 있었다. 금세라도 요술램프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사라예보 여인이 "안뇽하세요?"하며 서툰 한국말을 하며 우리를 반겼다. 그 멀고 작은 나라에서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고맙기까지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우린 되돌아 그 여인의 상점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라고 하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수작업을 하고 있었고, 딸이라고 하는 그 여인은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툰 영어로 딸아이에게 줄 터키풍의 시계가 달린 팔찌를 하나 샀다.

흥정을 하는 과정에서 그 여인은 '더 이상 싸게 주면 아버지에게 혼난다'는 표현을 보디랭귀지를 통해 하기도 했다. 해외 여행을 하면서 큰 쇼핑을 하지는 않지만 작은 선물 한두 가지는 사곤 한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현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은 선물들을 한두 가지씩 산 우리는 약속 장소에서 만나 다음 행선지인 모스타르로 향했다.


태그:#사라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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