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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근혜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한 것을 놓고, 군사주권 포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전작권을 둘러싼 한반도 안보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군사전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의 '군사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비극' 연재 글을 게재합니다. 이 연재 글은 김종대 편집장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편집자말]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은 2007년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은 2007년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당시.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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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동맹국은 한국안보의 자산이라기보다 짐이라고 해야 한다. 머리가 거의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지 부시 곁에는 두 명의 근본주의자가 포진하여 인류를 고생길로 인도했다.

한 명은 전직 골드만삭스 회장인 헨리 폴슨 재무장관으로, 시장 근본주의가 발명한 금융이라는 흉기를 잘못 휘둘러 미국과 세계를 공항으로 내몰았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자본주의 4.0>의 아나톨 칼레츠키는 폴슨을 가리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저뚱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협적으로 자본주의를 파괴할 뻔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험한 근본주의자는 로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으로, 미국병사 5000명과 이라크인 2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1조2000억 달러의 전비 부담을 미국에 남기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며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이런 '스투피드'들이 흔드는 한미동맹이 무사할 리 있으랴.

2003년에 럼스펠드는 리언 라포트 연합사령관에게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인 "개념계획 5029-99를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라"고 지시했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저서 <김정일, 최후의 도박>에서는 럼스펠드가 "왜 미군은 북한에 들어갈 수 없나?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 아닌가? 조속한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작전계획으로 전환하라"며 "2005년까지 그 임무를 완수하라"고 라포트에게 지시하였다.

작전사령부 수준에서만 관리되는 개념계획(CONPLAN)과 달리 작전계획(OPLAN)이 수립되면 야전부대까지 전부 계획을 공유하고 자체 부대계획을 발전시키게 된다. 문제는 이런 방침을 연합사령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한국 정부에는 그 사실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계획은 미국이 주도가 되어 북한에서 핵과 미사일을 통제하면서 북한을 통제하는 일종의 영구분단 계획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더군다나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전면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에 한미연합군이 진출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게 된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청와대는 2004년 말이 되어서야 이 계획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연합사의 작전계획 작성을 중지하도록 하라"고 우리 국방부에 지시하였다.

"이러면 동맹 깨자는 거다"... 연합사령관의 반발과 국방부의 혼란

우리 입장을 전달받은 라포트 사령관은 벌컥 화를 내며 "이러면 동맹 깨자는 거다"라며 작전계획 작성을 강행할 뜻을 명확히 했다. 라포트의 반발에 놀란 국방부와 합참 장교들은 중간에 끼어 어쩔 줄 모르다가 청와대에 "작전계획 작성은 대통령 위임을 받은 국방장관의 업무"라며 "청와대가 무슨 작전계획까지 관여하냐?"며 아예 항명할 기미조차 보였다.

이어 2005년 4월에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석 NSC 사무차장에게 리처드 롤리스 차관보는 "북한에 대해 주권이 없는 한국정부에 대해 우리가 무슨 주권을 침해했다는 거냐"며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을 청와대가 간섭하는 걸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이 문제는 노 대통령이 부시를 만나 "우리 의지와 관계없이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위험한 계획을 동의도 없이 작성하느냐"고 항의하고서야 부시가 "잘 알았다"며 럼스펠드에게 계획을 중지시키면서 가까스로 해결되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게 전면전을 불사해야 할 위험한 상황을 가정으로 한 작전계획이 작성되는 동안 한미연합사는 마치 스스로 주권을 가진 국가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강력한 개입에 직면한 한미연합사는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성역이 된 한미연합사의 권위가 한국 정부에 의해 꺾인 최초의 사례였다. 연합사령관 통역을 18년 동안 역임한 김장욱씨에 의하면 "한국 장교들이 미국에 당당히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된 시기는 바로 2005년경부터였다"며 "그 이전까지 오직 미군에 의해 주도당하던 분위기가 이 때부터 달라졌다"고 필자에게 증언한다.

럼스펠드의 기세는 이후로도 수그러들지 않았으나,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이 실패하고 미국의 군사력의 위신이 처참하게 붕괴되고 나서야 우리는 그의 근본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도박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실낱같은 평화의 생명줄이 간신히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동안 미국은 스스로 알아서 위험한 도박을 거두어들였다.

보수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난 지금도 5029는 개념계획으로 존재한다. 2009년에 한미연합사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에 지극히 예민함을 알고 5029 부록문서에 "한국 정부를 빼버리고 미국이 중국과 협조하여 무너진 북한을 통치한다"는 것으로 새로운 계획을 추가하였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전부 이를 용인했다. 바야흐로 강대국 정치에 한반도 운명을 가져다 바친 것이다.

(다음 번에 계속, 이 글은 김종대 편집장의 페이스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주한미군, #한미연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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