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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으로 다룬 상업 영화 <카트>가 지난 13일 전태일 열사 44주기 날에 개봉했다. 온라인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 조사에 따르면 11월 셋째주 개봉작 중 가장 기대되는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실제 개봉 첫날 10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고, 14일 오전 12시 기준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 이어 박스오피스(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위에 올라섰다.

선희와 혜미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며 매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카트를 밀고 앞장선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당부한다.
 선희와 혜미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며 매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카트를 밀고 앞장선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장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당부한다.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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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로부터 출발한 영화이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홈에버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해고하였다. 500여 명의 노동자들은 6월 30일 상암동에 위치한 홈에버 월드컵 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무려 512일 동안 파업이 계속되었으며, 2008년 11월 13일에야 파업이 종결되었다. 협상결과는 해고자 28명 중에서 12명의 노조간부가 퇴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16명이 복직하는 것이었다. 노조간부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영화는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동료애와 삶의 애환을 담고 있다. 동시에 회사의 회유와 노조 탄압, 폭력 진압 등을 그렸다. 그런데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국가가 법과 제도로 이 회사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게 해준 사실을 다루고 있지 않은 점이다.

2007년 6월 30일과 7월 1일의 의미

2007년 7월 8일 오후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2007년 7월 8일 오후 이랜드 그룹 계열사인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장기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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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홈에버 투쟁 당시 홈에버 월드컵 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던 날은 2007년 6월 30일이었다. 다음 날인 7월 1일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는 날이었다(비정규직 보호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보호 관련 법률을 통틀어 이른다. 이 법은 2006년 11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되어 2007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었다. 2008년 7월에는 100인 이상 사업장, 2009년 7월 1일에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시행 범위가 확대되었다).

당시 노동자들이 이날을 역사적인 첫 파업투쟁의 날로 잡은 것은 다음 날부터 시행되는 이 법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것은 드러나지 않았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용이한 인력조정 등의 이유로 급속히 확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남용을 막고 그들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발효되었다.

이 법의 내용은 크게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금지 ▲기간제 근로자의 총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 ▲파견근로의 범위·기간과 관련된 보호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당시 기업들은 2년 이상 된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을 피하기 위해 법 시행 전 대량 해고를 진행했다.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들이 그 당사자가 된 것. 뿐만 아니라 이 법은 기업들이 다양한 편법으로 악용해 그 실효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우선 '기간제근로자보호법 제4조 제2항'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는 최대 2년까지만 고용 가능하고 2년을 초과할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용상 지위가 불안정해 고용불안과 차별이 두드러진 기간제 근로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2년 이내에는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임상훈 위원장(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은 "많은 기업들이 1년 9~10개월이 된 기간제 근로자들에게 해고조치를 내린다"고 말했다. 법 제정 당시 '이 조항들이 비정규직을 2년 시한부 목숨으로 만들어 고용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노동계 뿐만 아니라 경영계 일각에서도 우려한 바 있다.

지난 9월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살한 사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여성노동자는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상사의 말을 믿고 7차례에 걸쳐 2~6개월 씩 이른바 '쪼개기 계약'을 맺어왔다. 하지만 2년이 되기 이틀 전 해고되어,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기업이 노동자들을 마음껏 쓰다 버리는 데 합법성을 부여했다.

"24개월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는 유서

또 이 법에는 기업이 2년 이상 고용한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정규직이라 못 박는 것이 아니다)을 맺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는 임금이나 복지 수준과 관련해서는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빠져있다.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 때문에 기간제 근로자들은 결국 계약만 무기 계약직으로 할 뿐 비정규직 때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2010년 4월 고용노동부의 '기간제 근로자 현황조사'에 따르면 근속년수 2년 이상 비정규직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66.9%나 됐다. 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16.9%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법을 통해 또 하나의 계층이 늘어나 노동자들의 계급분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또,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여성과 노인의 비정규직 수가 늘어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7월에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이슈 7월호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비정규직의 고용비율은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정규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3월 53.8%로 2007년에 비해 5.2%포인트 늘었다.

연령별 비정규직 분포도를 보면 여성은 50세 이상에서, 남성은 60세 이상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아래 그림 참조). 또 여성 비정규직은 성희롱 피해, 노인은 저임금에서 오는 빈곤문제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해 왔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수준의 변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수준의 변화.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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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7년이 지난 올해에도 영화 <카트>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처지의 홈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2교대 근무자들의 잦은 연장근무에도 회사는 연장수당을 대부분 주지 않았다. 인원 부족으로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또 소위 10분 단위 근로계약, 특히 상당수 7.5시간 소정 근로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편법적 근로계약으로 주휴수당 등을 지급받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제정된 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비정규직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년 후에도 정규직이 아니다, 무기계약직이다

이에 정부는 또 다시 거꾸로 가는 비정규직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달 중으로 발표할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 중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실제 만나본 30세 이상의 기간제 근로자들은 기간 연장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노동자 입장에선 '2년 안에' 실직하는 것보다 비정규직일지언정 '3년 안에' 실직하는 것이 더 오래 근무해 낫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고,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란 이름으로 유료 직업소개소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고령자를 중심으로 파견직이란 불안정 일자리가 양산되고, 고용 불안 뿐만 아니라 민간업체를 통한 중간 착취 역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정부 정책을 두고 <카트>의 주인공들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7년 전 우리들이 일손을 멈추고 막아서려고 했던 '악법'이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더 치명적인 '악마의 법안'이 되어 나타났다"고 반발하고 있다.

2년 안에 실직보다 3년 안에 실직이 낫다?... 거꾸로 가는 정부

영화 <카트>는 한 회사의 무분별한 불법적 대량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싸움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보다는 돈이 우선이 되는 사회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이었고, 대기업의 이윤만을 보호해 주는 정부 책에 대한 저항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명확히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저항이었고, 그것은 자신의 처우 뿐 아니라 우리 사회 비정규직들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렇기에 그 투쟁은 더욱 의미 있지만 아쉽게도 영화에서는 그 부분은 다뤄지지 않았다.

2007년 이랜드 홈에버, 그리고 2014년에는 홈플러스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이 필요하다. 이는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방식을 중심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전이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의 정책 방향으로는 비정규직의 현실이 한 발짝도 나아질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진보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uppi.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 노동분야 담당 연구원 박철우입니다.



태그:#카트, #비정규직, #비정규직 보호법,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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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책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의 싱크탱크입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래 10년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며 진보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매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보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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