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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사과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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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골마을 사과밭이 환하다. 다 익은 사과가 붉은 등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11월, 입동이 지났다. 고랭지 사과농사를 짓는 40여 가구의 손이 너나없이 바빠졌다. 올해 사과 막바지 수확 때다.

햇빛으로 비타민 D도 충전할 겸, 운동 삼아 나선 산책길에 이 집 저 집에서 사과를 싸 안겨준다. 썩었거나 깨졌거나 새가 쪼았거나…. 상품가치 떨어지는 파과라 볼품은 없지만, 맛은 1등품과 차이 없다.  

어젠 걷다 말고, 김족간 할머니를 따라 사과밭으로 들어갔다. 사과 따는 걸 거들겠다고. 7년생 부사 밭이었다. 나뭇가지에 탱글탱글 달려 있는 붉은 과육덩어리들, 꽃 같고 심장 같고 욕망 같다. 한눈에 혹 홀리고 마는.

나는 먼저 크고 반짝거리는 사과 한 알을 골라 똑, 땄다. 그 붉고 부드러운 기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잠시 넋 놓고 보았다. 누가 보면, 마치 시상에 젖은 시인처럼. 

 동네 사과밭
 동네 사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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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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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은커녕 심상이 복잡했다. 나는 '과수원집 딸'이었다. 부모님은 40여 년 전, 서해에 인접한 한 시골마을에 과수원을 만드셨다. 야산 만여 평을 개간하여. 그때는 내가 열 살 때쯤이었다. 배나무 묘목 30여 그루와 사과나무 1000여 그루를 심었다. 배 품종은 신고였고 사과는 부사, 아오리, 스타킹, 홍옥, 유고, 세계일 등이었다.

사과나무는, 거들떠보는 사람 없어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들판의 들꽃이나 산속의 도토리나무 같은 식물이 아니었다. 논밭의 농작물이 다 그렇지만, 사과나무만큼 사람 손을 호되게 타는 것도 드물었다. 보통 공들여 짓지 않으면 안 되는 농사였다. 

풀 베랴, 가지 치랴, 거름 주랴, 비료 주랴, 꽃 솎아주랴, 태풍에 쓰러진 나무 세우랴, 농약 치랴, 서리꾼들 쫒아내랴, 땅벌에 쏘이랴, 살생하랴. 엄마는 해마다 사과밭에서 뱀을 수십 마리씩 잡았고, 나중엔 엽총을 들고 다니며 까치를 쏴 죽였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그걸 찜찜해 하신다. 꽃을 솎아주거나 사과를 딸 때는 70여 명 일꾼들의 점심과 참을 준비해야 했다.

또 사과농사는 농약 살포가 중요한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살충제, 살균제…. 엄마는 마스크와 방제복을 입고 농약분무기를 등에 메고 다녔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새벽마다 트랙터처럼 생긴 농약살포기를 몰았다. 그 일을 게을리 하면 대번에 사과나무는 병충해의 제물이 되었다.

1980년대 초였나. 가수 이용이 텔레비전에서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엄마가 혀를 차며 혼잣소리를 하셨다.

"서울시내 길에서 농약을 막 뿌려대도 괜찮나?"

사과 서리하다 잡힌 아이들, 사과 창고에 가두고

 사과 분류작업 하시는 아랫집 아줌마
 사과 분류작업 하시는 아랫집 아줌마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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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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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소녀처럼 곱상하신 김족간 할머니는 바지런히 사과를 따고 계셨다. 김 할머니는 까치발을 들고 손을 높이 뻗쳐 윗가지에 매달린 사과를 땄다. 그나마 최근의 신품종 사과나무는 키가 작은 편이라 작업하기가 좀 수월할 것 같았다.  

그 옛날 우리 집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은 가지를 무성하게 뻗으며, 키가 3, 4미터나 됐다. 사다리를 들고 다니며 작업을 해야 했다.

사과나무의 품종 계량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알고 보니, 사과재배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 사람들이 '접붙이기' 기술을 알아낸 후로 시작됐다. 야생사과가 접목이라는 인공진화를 수없이 거쳐, 지금의 새콤달콤한 사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접목으로 개량된 사과나무는 자연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해충에 대한 저항력의 유전자를 스스로 진화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과는 그렇게 자생능력을 잃고 인간에게 완전히 속박됐다. 인간이 농약이라는 현대무기로 보호해주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 '사과는 농약에 의존하는 현대농업의 상징적 존재'라는 말을 듣게 됐다. 지나치게 진보된 문명,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상징한다는 말도.

다행히 야생사과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야생사과의 에덴동산'으로 알려진 곳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 숲. '키가 15미터나 되고 둘레가 참나무만큼 굵은, 수령이 300년 넘은' 사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단다. 그 숲을 상상하면, 왠지 가슴이 뛴다.

무농약, 무비료 재배로 '기적의 사과'가 열리는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밭 풍경을 상상할 때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상은 야생성에서 보존된다'라는 소로의 말이 떠오르며.  
   
 떨어진 사과
 떨어진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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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 따는 김족간 할머니
 사과 따는 김족간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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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딴 사과를 수레로 실어 날랐다. 나는 똑, 똑, 똑… 꾀 안 부리고 바지런히 사과를 땄다. 어쩌다가 잘못 건드려 멀쩡한 사과가 '쿵!' 바닥에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내 심장도 '쿵!' 내려앉는 것 마냥 놀라, 김 할머니의 눈치를 봤다. 1년여 공들여 키운 과실인데, 막판에 생채기가 나버렸으니…. 김 할머니는 본체만체, 나무람 없으셨다.

얼마나 땄다고, 등짝이 땀으로 젖었다. 목도 팔도 욱신거렸다. 목이 탔다. 깨진 사과 한 알을 골라 쓱쓱 점퍼자락에 문질렀다. 아삭아삭, 베어 물었다. 꿀처럼 달콤한 사과즙이 목덜미를 적시며 넘어갔다. 그런데 껍질째 먹어도 괜찮나? 차재화 작목반장님이 며칠 전에, 사과를 한 봉지 싸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농산물 품질검사원이 잔류농약 검사를 했는데, 0.1%도 안 나왔어요. 수확 한참 전에 농약 뿌리는 걸 끊거든요. 우리 마을이 사과농사 짓기가 좋은 곳이죠. 기후도 땅도…. 이 마을에 처음 사과밭이 들어선 게 30년 쯤 됐지요. 물론 농약을 완전히 안 칠 수는 없고…. 고독성은 쓰지 않아요."

사과 한 알을 씨만 남기고 속까지 다 먹었다. 역시 사과는 통째로 껍질째 먹어야 제 맛이다. 그게 아마 야생의 맛 같은 건지. 갈증이 가셨다. 배까지 부를 판이다. 문득, 그 옛날 사과밭의 서리꾼들이 생각났다. 서리꾼은 대개 폭풍 같은 성장기의 까까머리 초중등생들이었다. 먼 곳에서도 원정을 왔다. 먹을 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한 번은 두 사내아이가 서리를 하다가 엄마에게 잡혔다. 엄마는 그 애들을 사과창고에 가뒀다. 홍옥 한 상자랑 같이. '실컷 먹고, 서리는 그만 해라!' 하시며. 두 시간쯤 지나 창고 문을 열고 보니, 애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더란다. 사과를 배터지게 먹고.

사과를 싣고 간 김 할머니는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혼자 계속 사과를 땄다. 사과밭에 석양이 내려앉을 때까지.

"과수원집 딸이라 예쁘다"는 말, 수천수만 번도 더 들었는데

김족간 할머니 수확의 기쁨
▲ 김족간 할머니 수확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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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사과밭에서 나왔다. 김 할머니가 한 아름 안겨준 사과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여기저기서 유명세를 떨치는 사과들을 떠올리며.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빌헬름 텔의 사과, 세잔 폴의 사과, 아프로디테의 황금사과, 백설공주의 독사과, 애플 사의 사과…. 그리고 시와 노래에 등장하는 사과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다가 히죽, 웃음이 났다.

"과수원집 딸이라 사과 많이 먹었겠네. 그러니까, 이렇게 예쁘지…."

살면서 내가 수천수만 번도 더 들은 말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턴가, 그 말이 딱 끊겼다.

"젊었을 때 정말 예뻤겠어요!"

대신, 이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 나는 일부러 삐친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인다.

"그 말이 욕이에요, 칭찬이에요? 늙었다는 말이잖아요?"        

상대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이라며 설명을 붙이는데, 그때마다 웃음이 나는 거였다.

부모님은 몇 해 전 사과농사를 그만두셨다. 연로해지셔서 더는 그 고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이제 황폐해진 그 사과밭에 엄마랑 같이 야생사과나무를 심고 싶다.

 동네 아래 도로가의 사과매점들
 동네 아래 도로가의 사과매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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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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