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서실장님 말이 맞습니다. 그 진실이 밝혀진다고 경제가 나아지지도, 생활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옳은 거잖아요."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 이동휘(손현주 분)가 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개월이 다 되었다. 그 사이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고, 청와대 앞에서 농성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했다. 이들은 진실보다 경제가 더 급하다고 했다. 몰론 경제도 중요하다. 극 중 이동휘 대통령의 말대로 진실을 밝힌다고 경제가 나아지지도, 생활이 더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지난 5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동 농성을 접었다. 국회는 지난 7일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은 웃었지만, 유가족들은 울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에 대해 '미흡하지만 반대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세월호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씨를 만나 특별법과 청운동 농성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월호 특별법 많이 미흡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
 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
ⓒ 이영광

관련사진보기


- 유가족들은 특별법에 대해 '미흡하지만 반대하진 않겠다'고 했는데요. 
"10월 31일 여야 합의안이 골자여서 이미 통과될 줄 알았어요. 그걸 반대하면 본격적으로 싸움에 돌입해야 하는데, 저희를 지지하는 국민이 다칠 우려도 있었어요.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원했어요. 이런 목적에 어긋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똑같이 거부하면 안 되겠다. 어차피 통과될 것이고 그렇다면 눈물을 머금고라도 이 상황에서 좀 더 내실을 기할 것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받아들인 거죠. 기자들은 '수용이냐, 거부냐'고 묻는데 그걸 어떻게 단정해 말해요?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너희가 수용했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돼죠."

- 이승현군의 아버지인 이호진씨는 "이 특별법은 이 정권에선 진상규명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하셨는데.
"그렇죠. 진상규명이 아닌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생각하시는 국민이 있어요. '진상규명을 하지 말자는 뜻과 같구나'라고 느끼실 겁니다. 하지만 일단 첫 단추는 채워졌고, 수사나 기소가 진행되겠지요. 물론 저희가 바라는만큼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희가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진상 규명은) 채워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희가 할 일이 많죠."

- 지난 5일 청운동 농성을 76일 만에 접으셨지요. 어떻게 청운동 농성을 시작하셨어요?
"청운동 농성은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했어요. 대통령께서 한 번이라도 저희를 만나 눈물을 닦아주길 원했죠. (대통령이) '언제든 찾아오면 만나겠다'고 했기 때문에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민원실까지 가는 것도 제재했어요. 이 땅엔 세월호 유가족만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아요. 가까운 곳에 있다면 만나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항상 먼 곳으로만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죠."

- 76일이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요.
"농성 시작할 때 두려움도 있었어요. 아이들을 잃은 아픔과 몸으로 느껴야하는 고통까지... 말도 아니었죠. 추워질 때 쯤 농성이 시작돼 부모님들이 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힘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모포도 많이 갖다 주고, 추석 전에는 음식이 넘쳐날 정도로 주변 주민 분이 집에서 만든 음식 가져왔어요. 너무 많이 가져다 주시니까 부모님들이 다 드시질 못했죠. 그걸 안산에 가져 가긴 또 그렇잖아요. 주변에 양로원 등 더 어려우신 분들 많으니까, 나눠 드렸지요."

"웃음도 함부로 흘릴 수 없어"

- 비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차를 농성장 앞에 세우고 손가락질 하면서 지나가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저희 유가족이 '얘기하며 웃는다'고 해서 웃음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죠.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희가 들어오시라고 해서 차근차근 보고, 듣고, 느낀 상황을 얘기하니 눈물 흘리면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신 분도 있었죠. 저는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요."

- 대책위 임원을 맞으신 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시네요.
"처음엔 유가족 중 하나였죠. (임원 일을 하면서) 사실 말 못할 고충이 있어요. 남이 아무리 칭찬해도 제 마음속에 있는 한 가지는 저는 새엄마여서... 할 말도 못 할 때가 있어요. 조금 모진 말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때가 많죠. 제 나름대로 애써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새엄마가 왜 나서느냐'라는 말이 족쇄가 되기도 하죠. 그래도 제가 이렇게 하는 게 동혁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죽고 없으니 밥을 해줄 수도 없고, 잠자리를 마련해 줄 수도 없고, 용돈을 줄 수도 없잖아요. 동혁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 동혁이가 고 박수현군이 찍은 동영상에 나오잖아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 동생 어떡하지?'라는 말에 많은 국민이 울었습니다.
"동영상을 찍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특히 동혁이는 휴대폰이 없었어요. 휴대폰 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건 제 제안이었기 때문에 사고 후 휴대폰 없앤 걸 많이 후회했어요. 동혁이 아빠 눈치도 보였어요.

수현이가 찍은 동영상에 동혁이가 마치 주인공처럼 많이 나왔잖아요. 원본에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이 많이 나왔거든요. 그걸 보는 순간, (동혁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전에는 이렇게 나와서 적극적으로 (행동) 하는 것도 생각 안 했는데 영상을 보는 순간 '아이가 뭔가 메시지를 보내는구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동혁이가 동생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 것 같아요.
"동생을 많이 챙겼어요. 항상 동혁이가 동생에게 양보했어요. 간식이나 용돈을 동생이 가져가도 말을 안 했어요. 동생 안 얄밉냐고 물으면 동생인데 뭐 어떠냐고 했죠. 아이가 죽어가면서도 동생을 생각했다는 건 그만큼 동생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길었기 때문이고, 자기 없이 동생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했겠지요. 그 상황에서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던 아이였어요."

- 동생은 지금 어때요?
"집에서 가장 어른스러워요. 오빠 있을 땐 고집 세고, 애기처럼 말썽쟁이였지만 오빠가 그렇게 되고 저희랑 같이 있을 시간이 없는데도 자기 일 잘하고 성적도 그 전에 비해 많이 올랐어요. 평균 20점 가까이. 이것 또한 동혁이가 가면서 동생에게 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요. 어른스러운 척하는 마음엔 얼마나 아픔이 있겠어요? 저희는 진상 규명 일로 바쁘니 딸에게 미안하죠."

- 수학여행 떠나던 날 어땠나요?
"4월 15일 아침에 수업 받고 저녁에 배를 탔어요. 그 전날 대학생인 동혁이 형이 군대에 갔어요. 제가 형 옷이 더 멋있으니 형 옷 입고 가라고 해서 이것저것 입었죠. 제가 동생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자기도 뽀뽀해달라길래 저는 징그럽다고 수학여행 다녀와서 놀자며 재웠어요. 15일 밤 11시 반 쯤 '밥 잘 먹고 날씨 때문에 출항 못 하다가 (방금) 출항했다'고 전화 와서 아이 아빠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 많이 사귀고 건강히 와라'고 했어요. 나중에 '말 잘 들으라는 말을 괜히 했다'고 아빠가 그랬죠. 하지만 전 아니에요. 부모라면 똑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죠."

- 언제 가장 보고 싶으세요.
"해 저물 때요. 해질 때 쯤 되면 늘 사무실에서 나와 마트 가서 장을 봤어요. 그날 먹을 동혁이 간식하고 찌개 거리를 샀거든요. 오후 10시 15분쯤 동혁이가 왔어요. 그 시간마다 현관문을 보게 되요."

"우리 아이는 4월 16일에 죽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기자회견을 함께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다.
 세월호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7일 국회 정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와 기자회견을 함께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사고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사고 뉴스가 YTN에 떴잖아요. 동혁이 아빠와 함께 학교로 갔더니 이미 기자들이 많이 와 있더라고요. '단원고 학생은 구명조끼 다 입었다'거나 '단원고 학생만 구조하고 있다' 혹은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고 뜨길래 믿었어요. 군산 쯤 갔을 때 동혁이 반인 차웅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인터넷 뉴스에 나와서 이게 아니란 걸 느꼈죠. 많은 부모님들이 사고 후 3일까지 아이가 살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동혁이가 4월 16일 당일에 죽은 게 아니라고 확신해요. 동혁이가 4월 22일 밤에 올라와서 23일에 만났거든요. (아이 몸이) 차긴 했지만 피부는 말랑말랑했어요. 아이가 언제 죽었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조차 모르고 살아야 하는 부모예요. 우리는 배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잖아요."

- 처음 진도 갔을 때 어떠셨나요.
"처음 진도체육관에 가서 실종자와 생존자를 확인하고 팽목항으로 바로 갔거든요. 저희가 정신을 차릴 경황이 없었어요. 처음 진도에 내려간 날 밤에 비가 부슬부슬 왔어요.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언론사 카메라들이 해안으로 나가더라고요. 조명탄을 터지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찍고 있더라고요.

그게 다음날 '지상 최대 인력 조명탄 300발'이란 기사로 나왔죠. 저희는 거짓말인 걸 아니 너무 답답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게 실종자 가족을 진도체육관으로 유도했잖아요. 체육관은 산 중턱에 있을 뿐만 아니라 팽목항하고 30~40분 거리인데 그렇게 먼 곳에 가족들을 내려놓는다는 건 정보를 차단한다는 것과 같죠. 해경 관계자들이 몇 번씩 와서 브리핑했어요. '절차, 원칙, 날씨 때문에 구조 안 된다'는 식으로 늘 똑같았어요."

- 언론에 할 말이 많을 것 같아요.
"많죠. 언론은 그러면 안 돼요. 저희 아이들 사망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언론입니다. 전원 구조 오보만 아니었어도...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 애들 구조하겠다고 (정부에서) 달려왔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실종된) 아이가 올라오기도 전에 나온 기사가 '실종자 가족들이 추모공원을 요구한다'였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애도 못 찾았는데 추모공원 요구할 정신이 어딨어요? 자기 가족들이 피해를 당하고, 거짓말과 탐욕 속에서 피해를 입어 봐야 '내가 잘못했구나' 하지... 언론이 각성하지 않으면 절대 사회 구조는 바뀔 수 없습니다. 그만큼 큰 역할을 하는 게 언론이라고 생각해요."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희생자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위한 범국민서명호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희생자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위한 범국민서명호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 유가족들이 대학에서 간담회를 하고, 영화 <다이빙벨>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도 하던데요. .
"영화를 보지 않은 유가족 중 반은 '다이빙벨'을 사기라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설득하기도 했죠. 가장 큰 문제는 다이빙벨이 사기든 아니든 애들을 구할 마음이 있었다면 사고 첫날부터 국가 차원에서 다이빙벨을 투입했어야 해요. 밑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저희가 봤다면 국가를 믿었겠죠. (여러) 부모님들께 거짓이든 참이든 영화를 보고 말하라고 했어요.

영화를 본 엄마들은 울면서 국가에게 속았다고 말해요. 이 영화가 다는 아닐 거예요. 이면에 우리가 모르는 것도 있겠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다이빙벨은 투입했어야죠. <다이빙벨>을 보러 왔다면 저희와 함께할 마음이 있는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간담회보단 관객과의 대화가 더 수월하게 느껴져요."

- 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생계에 관한 질문도 있고, 대학 특례입학 요구한 적 없는지, 또 특별법 되면 뭐할 거냐고 물으세요."

- 유가족들은 이제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서도 말했듯 미완의 특별법이잖아요. 오히려 그 법 때문에 진상규명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어요. 올해 안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초엔 활동이 시작되도록 하는 것이 저희 목표예요. 그 과정에서 간담회 등으로 국민 여론을 모으려고 합니다. 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가 제대로 안 되면 법 개정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더욱 저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더 할 일이 많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성실, #김동혁, #세월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