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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렌치와 국회상원의원 외교분과 위원장인 안토니오 라치가 이탈리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7일, 마테오 렌치(39·민주당) 총리와 안토니오 라치(66·전진국민당) 의원이 이탈리아 거의 모든 언론 정치면을 장식했다. 렌치 총리는 공식 방문 지역마다 노동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맞아서, 라치 의원은 자신이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장기간 출연하게 될 예정임을 알리는 인터뷰에서 망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들의 이와 같은 모습에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실망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연소 총리'로 주목을 받았던 렌치 총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실망은 더욱 크다.

현재 렌치 총리는 가을국회가 열리자마자 노동법 개정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 총리측은 '경기침체에 빠진 이탈리아를 회복시키고 일자리 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1970년대 이후부터 유지되고 있는 노동법을 현재에 맞게 바꿔야한다'는 이유로 노동법 18조 개정에 나섰다.

노동법 개정에 '달걀시위'로 답한 노동자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 위키피디아 공동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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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5월 20일 만들어진 노동법 18조는 부당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골자인데, 이 때문에 '평생 노동법'으로 불린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들 중 노동조합의 연대 및 권익을 가장 잘 보장하는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노동법 역시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와 여러 정당들이 개정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노동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마리오 몬티 전 총리 정부 하에서 해고에 대한 규제 완화와 실업수당 확대 등의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에 다가갔고, 결국 '경영상의 이유'가 있으면 뚜렷한 이유 없이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새로 채용을 하는 기업은 정부의 지원급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개정안은 2017년부터 전 이탈리아에서 실시될 예정인데, 렌치 정부는 2012년 개정안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총체적인 개혁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렌치 정부측은 고용주가 좀 더 쉽게 직원을 채용할 수 있게 하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발상이 해고도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법 개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대는 '달걀시위'로 이어졌다. 지난 9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진행된 곳이 달걀로 노랗게 물들었다.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렌치 총리가 연설을 하던 현장 주위에 달걀을 투척했기 때문이다. 렌치 총리를 향한 노동자들의 달걀 투척은 한 달 여가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지난 3일 롬바르디아 지방 브레시아시 상공인 모임에 참석해 연설을 할 때도경찰과 대치중이던 노동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맞아야 했고 7일 밀라노 근처 몬차 지역에 새로 들어선 프랑스 전기통신회사 알카텔 루슨트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달걀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속되는 달걀세례에 난감해하는 렌치 총리 경호원들의 모습은 전 세계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금마련 호화 파티로 논란 부른 렌치 총리

사실 렌치 총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노동법 개정 천명 때문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인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그가 내세운 개혁안들이 대부분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주장하거나 시도하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유럽연합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경제회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유로존 경제 3위의 이탈리아 업체들이 해외자본에 팔려가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노동법 18조까지 개정한다니,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과거 진보의 아이콘이기도 했기에 그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한, 달걀세례를 맞는 렌치 총리의 모습만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건, 그가 연 디너 이벤트였다. 지난 7일 렌치 총리는 밀라노 새 고층빌딩 '더 몰'에서 '이탈리아의 즐거움-총리와 함께 이벤트'를 열었다. 최근 '영원한 진보의 터'로 알려진 북부지방에서조차 민주당 지지율이 41%대로 떨어지자, 민주당 기금 마련을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 이벤트의 1인당 최하 기부금은 1000유로(한화 150만 원)였지만, 무려 800여명이 이벤트 티켓을 구입했다. 장례업체 업주들부터 재벌까지, 참석자 대부분이 기업인이나 상공인 변호사 등이었다. 이날 행사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한 렌치 총리는 노동개정안 추진자인 보스키, 농림부장관 마르티나, 유럽의회자문기관(일명, 베네치아위원회)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베네토지방 도지사 출마를 밝힌 모레티 등 평소 렌치 총리 충성파로 알려진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 초록, 흰색 광선이 현란하게 쏟아지는 무대는 마치 디스코텍을 방불케 했는데 연단에서 총리가 던진 농담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파티로 1800만 유로를 모을 수 있었기에, 적어도 우리 민주당 직원들 중에는 그 누구도 급여문제로 정부보조기금에 의존해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재정적인 부분, 돈이고 그 외에 뛰어난 발상들과 서슴없는 비판, 그리고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탈리아 경제의 회복을 위해 일할 것이며 이탈리아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르> 인터넷판에 실린 렌치 총리가 달걀사례를 맞는 장면.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르> 인터넷판에 실린 렌치 총리가 달걀사례를 맞는 장면.
ⓒ 코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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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참석 인사들 중 눈에 띄는 인물로는 디자이너 돌체 가바나 커플이 있었으며, 민주당이 집권당이 될 때마다 항상 도로공사측 수주공사 입찰을 받아 특혜 의혹을 받아온 재벌건설그룹 가비오의 3대 후계자가 메인테이블에 앉아, 다른 정당들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소수정단 모임 대표인 체자레 다미아노 의원은 렌치 총리를 향해 "지금 제정신인가? 중소기업인들이 자살하고 기업들이 연달아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노조원들이 시위로 부당해고를 외치는 지금, 민주당 기금마련을 위한 발상이 꼭 이 같은 호화 디너파티였어야 하는 건가"라고 일갈했다.

이탈리아 진보성향 신문인 <코리에르>는 렌치 총리의 행보에 대해, 개혁을 부르짖긴 하지만, 구체적인 안건 등에 허점이 너무 많다는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이날 디너파티에 참석했던 민주당 인사들은 "걱정들 마라, 우리는 베를루스코니처럼 안 될 테니까!"라고 일축했다.

8일 전해진 나폴리타노 대통령 사임 소식

한편 안토니오 라치 상원의원 또한 이탈리아인들을 실망시켰다. 렌치 총리가 디너파티를 연 날, 라치 의원은 <크리에르>와 한 독점 인터뷰에서 "2015년 1월 26일~4월까지 진행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 <The Island of the Famous People>에 출연하는 걸 고민 중"이라고 밝혀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2003년 공영방송 RAI2에서 시작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이 프로그램의 제작권은 현재 방송언론재벌인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소유의 미디어셋이 갖고 있다.

스위스의 평범한 직물업자였던 라치는 어느 날 갑자기 베를루스코니의 측근으로 등장하며 국회의원이 되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유창한 독일어, 그러나 아주 서투른 이탈리아어로 인해 자주 구설에 올랐다. 북한을 자주 방문하여 친북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때와 장소, 시기를 가리지 않고 북한 칭찬을 늘어놓는 등 엉뚱한 모습을 보여 현지 코미디프로의 단골소재가 되기도 했다.

자주 구설에 올랐던 그가 공식적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밝혔으니, 보는 이들이 놀랄 수밖에. 더구나 라치 의원은 이날 '장기간 서바이벌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데, 국회 참석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묻자 "의원직을 내놓진 않을 거다, 4월까지 출연을 다 채우지 않는 방향으로 방송사측과 어떤 조정을 해야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직을 내놓진 않을 거다, 왜냐면 국회는 보수가 확실히 보장되고 지급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해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이렇듯 두 명의 정치인이 현지인들을 실망시키는 와중에 이탈리아인들을 '멘붕'에 빠지게 만든 또 다른 소식이 8일 속보로 보도됐다. 2006년 5월 15일에 취임하여 7년 임기를 채운 뒤 재임중이던 이탈리아 대통령 조르지오 나폴리타노(89)가 곧 사임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물론 이탈리아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되는 것도 아니고 의회와 각 주 대표들에 의해 간선제로 뽑히는 등 상징적인 국가원수다. 하지만 그간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역할과 위상은 그 이상이며, 현지인들 또한 그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는 상태다. 그는 이탈리아 정계가 가장 복잡한 시기에 대통령을 맡아 부패로 낙인찍힌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사임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상황들에 지쳤다면서 쉬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탈리아 언론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오는 12월 대국민연설에서 자신의 사임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2015년 1월 이내로 모든 업무를 정리하며 떠날 것임을 알렸다.


태그:#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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