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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른바 '싱글세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싱글세 도입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이를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싱글세란 표현을 언급한 적이 없다"면서 "1인 가구가 기혼 가구나 다자녀 가구에 비해 세제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5년에도 싱글세(독신세)가 문제가 됐지만, 그때는 정부가 아닌 민간연구소에서 그런 언급을 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싱글세란 표현을 언급했든 안 했든 간에, 그가 '1인 가구에 대해 세제상의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또 이 관계자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과거 민간연구소에서 독신세란 표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사실이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나 민간연구소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관료나 지식인들 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독신 문제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결혼식.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황해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복도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조선시대 결혼식.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황해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복도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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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를 넘기는 주된 원인, '경기불황'

아마 옛날 같았으면 이런 발상을 갖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1인 가구에 대해 세제상의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사람들은 독신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옛날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 문제를 국가경제적 문제로 파악하고 이것을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노총각·노처녀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부가 복지비용을 투입해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했던 것은, 한두 명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기는 것은 상당부분은 국가적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기는 주된 원인은 경기불황 때문이었다.

경기불황은 일차적으로 농업생산성의 감소에 따른 것이었다. 농업생산은 농민만의 몫이 아니었다. 정부가 저수지나 제방을 잘 관리해주고 백성과 영토를 잘 보호해야만 농업생산성의 증대도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생산 부진으로 경기불황이 생기는 것은 농민이나 하늘만의 책임만이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기도 했다.

옛날 정부가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기록은 매우 충분하다.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게 남은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옛날 정부가 싱글들에게 세제상의 불이익을 준 게 아니라 오히려 복지비용을 풀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1485년부터 시행된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결혼 적령기를 넘길 경우에는 한성부 및 도(道)가 도움을 제공하고,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호조·감영·읍에서 별도의 지원을 제공한다"고 규정했다. 요즘 말로 바꾸면, 노총각·노처녀가 생기면 서울시청과 도청이 지원을 베풀고, 사안이 심각한 경우에는 재정경제부·도청·읍면동사무소에서 별도의 지원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결혼식의 절차를 담은 그림.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에 있는 향토민속관에서 찍은 사진.
 전통 결혼식의 절차를 담은 그림.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에 있는 향토민속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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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들에게 혼수비용 명목으로 쌀과 콩 지급

1485년부터 시행된 법전에 이런 규정이 있다고 해서, 이 규정이 그때 처음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다. <경국대전>은 종래의 성문법과 관습법을 총망라한 법이었다. 그러므로 <경국대전>에 규정된 법규의 상당부분은 그 이전부터 시행된 것이었다.

정부의 싱글 대책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은, <경국대전> 시행 이전에 정부가 싱글들을 지원한 사례에서 확인된다. 일례로, 성종 3년 5월 7일자(양력 1472년 6월 14일자) <성종실록>에서는 정부가 가난한 노처녀들에게 혼수비용을 지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군주들이 싱글 대책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는 연산군 2년 4월 29일자(1496년 6월 10일자) <연산군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결혼 못한 노총각·노처녀들이 많으니 대책을 세우시라'는 신하들의 건의를 연산군이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연산군 같은 왕도 싱글 대책을 중요시했다면 다른 군주들이 어떻게 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정부는 어떤 식으로 싱글들을 도왔을까? 위의 <성종실록>에 따르면, 정부는 싱글들에게 혼수비용 명목으로 쌀과 콩을 지급했다. 상평통보가 유통되기 이전인 17세기 중반 이전만 해도 쌀과 옷감이 화폐 역할을 했다. 따라서 혼수비용으로 쌀을 지원했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현금을 지급한 것과 마찬가지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싱글들의 은행계좌로 정부가 입금을 해준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국가가 싱글 문제를 국가경제적인 문제로 파악했음을 보여준다. 만약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파악했다면, 싱글들에게 결혼을 독려하거나 이들에게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는 차원에서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고를 열어 결혼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은 '국가가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가난하게 됐고, 이 때문에 백성들이 결혼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이 같은 지원을 받는 연령은, 여성의 경우는 원칙상 20세 이상, 남성의 경우는 원칙상 30세 이상이었다. 이것은 결혼 적령기에 관한 전통적인 관념에 따른 것이었다. 아동용 유교 교재인 <소학>의 해설서인 <소학집주>에 따르면, 여자는 20세, 남자는 30세에 결혼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이것은 스무 살이 넘으면 노처녀, 서른 살이 넘으면 노총각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

싱글대책을 위해 국고를 연 과거 정부들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실제로 거행된 전통 결혼식. 신랑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포토샵으로 얼굴을 지웠다.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실제로 거행된 전통 결혼식. 신랑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포토샵으로 얼굴을 지웠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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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세 이상의 처녀, 30세 이상의 총각을 무조건 지원할 수는 없었다. 국가재정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살 이상의 싱글에게 지원을 베풀 것인가?'는 그때그때의 재정 형편에 따라 결정했다.

총각인 경우에는, 대체로 30세 이상이 되어야 지원을 제공했다. 이에 비해 처녀인 경우에는, 어떤 때는 20세 이상에게 제공하고 어떤 때는 25세 이상에게 제공했다.

일례로, 정조 18년 1월 8일자(1794년 2월 7일자) <일성록>에는 정부가 수원유수부(수원광역시) 장족면에서 사는 22세 처녀에게 결혼 비용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일성록>은 정부의 공식 일기였다. 한편, 위에 소개한 <성종실록>에는 정부가 25세 이상의 처녀들에게 지원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처녀의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지원 연령을 조정했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는 것은, 조선 정부를 포함한 옛날 정부들은 싱글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국가경제적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못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복지비용을 투입해서 결혼을 장려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싱글세를 거두자'느니 '싱글에게 세제상의 불이익을 주자'는 발상이 나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국가가 현대 국가보다 훨씬 더 부유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과 비교할 때, 옛날에는 인구도 훨씬 더 적고 산업생산성도 훨씬 더 낮았다. 또 생산 현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토지의 크기도 작았다. 세율도 지금보다 높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싱글 대책을 위해 국고를 연 것은 이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개인의 경제생활에 대해 국가가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더 커졌다. 국가의 조세정책이나 경제정책이 개인 경제에 더욱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불황으로 인한 싱글 문제는 더욱 더 국가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일부 관료나 지식인들이 싱글 문제를 순전히 개인적 문제로 인식하고 싱글에 대한 세제상의 불이익을 거론하는 것은, 이들이 문제의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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