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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가 자녀 두 명 이상을 가지면 탄광 속에 들어가 자녀 부양 걱정에 정신을 쏟는 바람에 작업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녀 두 명 이상을 가진 광부를 해고시키고 있다. 따라서 자녀가 많은 광부들은 해고당하지 않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정관수술을 해 산아 제한을 하고 있으니..." - <경향신문> 1966년 9월 20일자 기사 중

48년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산아제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 의원의 발언이다. 요즘은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우습고도 서글픈 이야기다. 탄광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정관 수술을 해야만 했던 사연에는 '인구증가는 경제 개발의 걸림돌'이라는 인식과 자녀의 숫자까지 통제하고자 한 유신 정권의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다.

1961년부터 1981년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실시된 정부가족계획(산아제한계획)은 다산과 대가족 제도를 미개한 것, 경제 개발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여겼다. 정관 수술, 자궁 내 장치, 콘돔 보급 등 출산을 억제하기 위한 각종 의술의 보급과 더불어 다산 가족에게는 주택 공모와 공무원 선발 등에서 각종 불이익이 뒤따랐다.

그러나 정부가족계획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반강제적 산아제한정책과 양육과 교육을 넉넉하게 할 수 없었던 열악한 경제 사정 때문이었다.

싱글세? 유신의 산아제한정책과 닮았다

서울 한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자료사진)
 서울 한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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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제한정책이 공식 폐지된 건 1996년이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국가 경쟁력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전체 인구는 노령화되어 가는데, 젊은 연령이 점점 더 줄어드는 형국이니 노동력의 감소와 복지 예산의 증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결혼이 점점 더 늦어지는 데다 아예 독신, 비혼을 선택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출산율 증가를 더욱 요원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 지난 11일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저출산 대책으로 내놓은 '1인 가구 과세' 발언이 논란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인터넷을 타고 논란이 확산되자 급히 진화에 나서면서 "싱글세 등과 같이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싱글세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꺼내놓고 여론을 보고 물러섰다가, 다시 꺼내들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사실 이런 불신은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서 '증세는 없다'고 공약하고선 불과 2년여 만에 담뱃세와 각종 간접세 인상에 열을 올리는 정부에겐 그 어떤 '신뢰'도 느끼기 어렵다.

'싱글세'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 복지를 담당한다는 관계 부처 고위 관계자의 저출산 대책에 대한 생각 또한 무척 폭력적이다. 저출산 문제를 결혼과 출산을 미룬 사람들의 과세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과거 해고를 무기로 반강제적으로 정관 수술을 독려했던 유신 정권의 산아제한 정책과 다를 바 없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만 낳으라는 정책이, 일할 사람이 없으니 더 낳으라는 정책으로 바뀌었을 뿐, 국민의 행복이 성장과 노동력 공급이라는 국가 정책에 밀린 것은 마찬가지다.

저출산 문제, 싱글세 도입하면 해결될 거라 믿나?

"세금감면 축소는 물론 비과세 철회 기도, 세율 인상, 세금 신설 등이 잇따르고 있어 국민이 세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기업도, 서민도 경제 활력을 잃으면서 국민적 세금 저항이 폭발할지도 모른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1~2인 가구 근로소득 추가공제 폐지를 추진하자,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계진 대변인은 이 같은 논평을 낸 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던지기 이전에 정부 기관과 모든 국책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통해 혈세낭비를 줄여야 한다"라고 비난했다.

가족 구성원이 소수인 가정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제혜택을 주는 것은 출산장려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바로잡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설명이었지만, 원희룡 의원은 대통령이 '틀렸다 공부하라'며 참여정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당시 한나라당이 보인 격한 반응의 잣대로 본다면, 이번 싱글세 발언은 몇 번이나 경을 치고도 남을 일이다.

"정부는 부양가족이 없거나 적은 근로자가 가족이 많은 근로자보다 세금을 너무 많이 내지 않도록 하려는 배경에서 도입된 '1~2인 가구의 근로소득에 대한 추가공제' 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로 최근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장려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의 저출산 문제가 1~2인 가구들이 연간 75만 원을 공제받기 위해서 비롯되었다고 믿습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입니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과 자녀 양육에 필요한 (기회)비용의 부담 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측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

당시 원희룡 의원이 블로그를 통해 노무현 정부에 던진 질문이다. 똑같은 질문을 박근혜 정부에게 해보면 어떨까? '정부는 지금의 저출산 문제가 싱글세 도입으로 해결되리라 믿습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싱글세는 도입할 수도 없는 법이지만,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언급했다고 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유신정권 하에서 산아제한정책이 목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와 현재의 출산장려 정책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의 바탕에는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40년 전에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정부 때문에 산아제한 정책에 동참했고, 지금은 많이 낳으면 삶이 팍팍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출산을 택하지 못한다. 모두 '경제' 때문인 것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타이틀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꼴지수준'이라는 말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출산율 높이려면, 아이 키울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전체 소득과 자산의 절반이 상위 20%에 몰려 있는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600만 명을 넘어선 사회, 실질적 실업률이 10%를 넘은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또 세계 최저 출산율을 가진 사회, 돈이 없어 결혼을 미뤄야 하는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사회, 결혼을 한 뒤에도 경제사정 때문에 2세 출산을 미뤄야 하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의 맨얼굴이다.

정부가,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출산 정책을 쏟아놓는다고 해도 출산율은 쉽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우리 사회 빈부격차가 이미 심화될 대로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빈부격차는 방치해놓고 아이를 더 낳으라고 호소한들, 그게 국민들에게 먹힐까?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핑퐁게임을 보고 있자면, 정말 애 낳고 싶은 생각이 쏙 들어갈 것 같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출산율을 올리고 싶다면, 서민들이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가가 우선이고 성장과 수출이 중심인 사회,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 사회는, 죽음을 눈앞에 둔 것이나 다름없다. 젊은이들이 쉽게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없고 인구 절대 다수가 늙어가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젊은이들에게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늙어가는 대한민국이 젊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태그:#싱글세, #출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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