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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자리에서 하차한 김현정 PD가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CBS 사옥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뉴스쇼는 강자들에게도 여는 프로들처럼 마이크를 들이대지만, 약자들에게도 마이크를 꼭 열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했기에 청취자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자리에서 하차한 김현정 PD가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CBS 사옥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뉴스쇼는 강자들에게도 여는 프로들처럼 마이크를 들이대지만, 약자들에게도 마이크를 꼭 열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했기에 청취자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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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그리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쓴소리 잘 못하고요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요, 강하기보다 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10년간 시사(프로그램)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애청자 여러분의 격려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한숨 쉬었던 그 많은 순간들, 잊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 부디 건강하시고요,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 약한 이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김현정이었습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아래 뉴스쇼)>의 앵커였던 김현정 PD가 하차하며 청취자에게 전한 마지막 인사의 일부다. 지난 7일 김 PD는 재충전을 위해, 그동안 진행하던 <뉴스쇼>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뉴스쇼> 앵커를 맡은 지 6년 6개월 만이다.

김 PD는 2001년에 PD로 CBS에 입사하여 줄곧 음악방송의 연출을 맡아왔다. 그랬던 그가 시사프로그램을, 그것도 연출이 아닌 진행을 맡은 건 2004년이었다. 오후 시사프로그램 <이슈와 사람> 진행자가 2주 휴가를 가서 대타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좋아 눌러앉았다.

4년 정도 진행을 하던 김 PD는 2008년 새롭게 시작한 <뉴스쇼>에 앵커로 발탁되었다. 당시 아침 시사프로그램은 현재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이 진행하던 MBC <시선집중>의 독무대였다. 당시 누구도 <뉴스쇼>가 이처럼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 PD의 진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차츰 청취율도 올랐고 손석희 앵커의 <시선집중> 하차와 맞물려 <뉴스쇼>는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간판이 되었다. <뉴스쇼>는 사회의 뜨거운 이슈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방송이 끝나면 인터뷰를 인용하는 기사들로 넘쳐났다. 김 PD는 때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청취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가 하면 진정성 있는 질문으로 청취자들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김 PD가 하차하던 7일 아침 <뉴스쇼>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청취자들은 <뉴스쇼> 홈페이지 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그의 하차를 아쉬워했다. 지난 10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김 PD를 만나 소회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

마지막 순간 깔린 <이매진>... "그렇게 슬픈 노래인지 처음 알았다"

- 당장 하루 일과가 달라져셔 어색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느긋하게 일어나려고 알람을 7시로 맞추고 잤지만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지더군요. 몸이 거짓말을 못해요(웃음). 그래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침을 맞았어요. 게다가 의도적으로라도 뉴스를 보지 않고 머리를 식히려 하는데 어느샌가 자동으로 뉴스를 찾아보고 있는 저를 발견하죠. 출근하고 나서는 정오 방송을 위한 노래를 선곡해요. 창밖을 보면서 그날의 습도와 바람의 세기, 구름의 색깔 모든 걸 고려하며 한 곡 한 곡 정성스레 선곡을…. 정말 전혀 다른 생활이죠."

- 10년 만에 음악프로그램 연출자로 돌아왔는데, 어땠어요?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거라 낯설고 긴장되더라고요. 밥도 안 먹혔어요(웃음). 그런데 저를 따라서 와주신 <뉴스쇼> 청취자들이 문자 메시지로 알은 척도 해주시고 노래 신청도 해주셔서 덜 외로웠습니다."

- <뉴스쇼> 마지막 날 이야기를 좀 해보죠. 전날까지만 해도 '시원섭섭'하다고 하셨는데 당일 마지막 방송에서는 울먹이셨습니다. 심정이 어땠나요?
"'영영 먼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닌데 울긴 뭘 울어'라는 생각이었어요. 실제로 당일 아침까지 여느 때처럼 방송을 준비하느라 마지막이란 걸 실감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김장훈씨와 인터뷰를 끝내고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깔리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그 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인지 처음 알았습니다(웃음). 그래도 감정을 겨우 억누르며 인사멘트까지는 했는데 온-에어 불이 꺼지자마자 참았던 게 복받쳐올랐어요. 10년 동안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묘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깔린 배경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당일 아침까지도 방송을 준비하느라 저도, 제작진도 미리 배경음악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3부 직전에 '뭘 틀까' 하고 PD가 물었는데 순간적으로 떠오른 곡이 <이매진(imagine)>이었어요. <뉴스쇼>에서 매일 들려드리는 '오늘의 노래'로 이매진을 가장 많이 틀었거든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자는…. 의미가 좋아 틀자고 제가 제안했는데 막상 전주가 나오니, 맙소사 이렇게 구슬플 줄이야!"

- 2010년 출산휴직으로 잠시 프로그램을 떠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혀 달랐어요. 당시에는 잠깐 쉬는 거였는데 이렇게까지 묘한 감정은 아니었어요, <뉴스쇼>를 한 지도 얼마 안 된 시점이었구요. 그러나 지금은 마치 10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에요.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봅니다. 서로를 위해 합의하에 헤어지는 건데도 그러네요(웃음)."

- 그 후 복귀 인터뷰 때 '헤어진 연인과 재회한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맞아요. 당시 인터뷰 때도 그랬죠. 그러고보니 제가 <뉴스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 같아요."

- 지난해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에 해당하는 조치를 받기도 했잖아요. 혹시 그것이 하차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계시던데요?
"전혀 아닙니다. CBS에선 그런 것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아요. 말 그대로 재충전을 위한 쉼이에요. 지난 10년을 돌아보자면, 말에게 양쪽 가리개를 끼우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한 시간 같아요. 그저 밤낮으로 주야장천 뉴스만 보고 달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 소진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금쯤은 잠깐 안대를 떼고 다른 곳도 바라보면서 저를 더 채워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방송 하루이틀 하고 말 게 아니라면 말이죠. 손에 쥔 것을 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만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아쉽다', '서운하다'는 각종 문자며 전화가 쇄도하고, 제 마지막 인사를 듣고 엉엉 울었다는 분들까지 전국 각지에서…. 정말 놀랐고 감동했습니다. 어떤 분은 '급속 충전'을 하고 돌아오라며 협박성 문자도 보내셨는데요, 실제로 '아니, 이렇게까지 청취자들이 원한다면 급속충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

"지난 10년 평가하자면 '80점'... 치열했기에 후회는 없다"

김현정 PD가 재충전을 위해 방송에서 잠시 하차한다고하자, 아쉬워하는 한 청취자가 '급속 충전'을 하고 빨리 돌아오라는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며 "청취자들의 사랑에 다시 한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김현정 PD가 재충전을 위해 방송에서 잠시 하차한다고하자, 아쉬워하는 한 청취자가 '급속 충전'을 하고 빨리 돌아오라는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며 "청취자들의 사랑에 다시 한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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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사를 들을 때 저도 울컥하더라고요. 청취자들이 그렇게 아쉬워한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아마도 정(情)이겠죠. 어떤 청취자는 '와이프 목소리보다 더 많이 들은 목소리인데 헤어지려니 너무 서운하다' 하시고요, 어떤 청취자는 '친언니 같았다' 혹은 '동생 같았다' 하세요. 공통점은 저에게서 가족 같은 친근함을 느끼셨다는 거예요. 친구 같고 가족 같은 '만만한(?) 시사 진행자'이다보니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 하차를 후회하진 않아요?
"아니요. 정말 오래가려면 지금은 충전해야 할 때 같아요. 그렇다면 아예 음악 프로그램도 하지 말고 휴직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 음악 FM은 제겐 고향 같은 곳이잖아요. 고향으로 돌아가서 음악을 들으며 저도 힐링하고 청취자들도 힐링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시사프로그램을 할 때보다는 여유가 있을 테니 주변도 돌아보고 못 읽은 책들도 읽고요."

- 시사프로그램 진행 10년을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프로그램이거든요. 김현정이 누군지도 모르고 <뉴스쇼>가 무슨 프로그램인 줄도 모를 때였지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이보다는 더 치열하게 할 수 없을 것처럼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 그간 직설적이면서도 쉬운,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호응이 높았어요. 인터뷰 대상자가 사회적 약자일 경우와 정치인일 경우 등 대상에 따라 화법이 달랐던 것 같은데?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하다고 할까요? 평범한 할머니를 인터뷰 하는데 시사 진행자라고 목에 힘을 주고 해선 안 돼죠. 할머니를 하면 할머니 눈높이에서, 아이를 하면 아이 눈높이에서. 왜냐하면 좋은 인터뷰란 청취자들이 궁금해하는 '그것'을 제가 대신 묻고 답을 듣는 것인데, 평범한 이웃 앞에서는 이웃의 언어로 물어야 청취자들이 듣고 싶은 답을 편안하게 말씀하실 수 있고, 정치인 앞에서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물어야 청취자들이 듣고 싶은 답을 하실 테니까요. 이렇게 제 질문법은 단순합니다."     

- 방송을 들어보면 말씀 하실 때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데 연출인가요, 습관인가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여러 청취자들이 말씀해주셔서 알았네요.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그럴까요. 저도 모르게 리듬을 탄다고. 아마도 판소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수가 '얼쑤' 하면서 흥을 돋우잖아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그런 역할을 했던 모양입니다."

- 2011년 인터뷰에서 뉴스앵커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진정성과 용기, 겸손 세 가지를 꼽았는데, 지난 10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 주시겠어요?
"제가 인터뷰할 때 자주 던진 질문인데 똑같이 하시네요(웃음). 80점 정도 주고 싶어요. 노력한 것으로 따지면 90점?"

- 세 가지 중 어떤 게 가장 힘들었어요?
"용기죠. 돌직구 마구 던지는 것, 보통 용기로는 안 돼요(웃음)."

"청취자가 원하시면 빨리 충전해서 어디가 됐든 일할 것"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자리에서 하차한 김현정 PD는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방송되는 가요전문 프로그램 FM 93.9 <김필원의 12시에 만납시다> 연출을 맡게 됐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앵커 자리에서 하차한 김현정 PD는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방송되는 가요전문 프로그램 FM 93.9 <김필원의 12시에 만납시다> 연출을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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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사 중 스스로를 '이성적이기보단 감성적인 사람'이라며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청취자들의 감정도 대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감성적이라는 것이 약점은 아닐 것 같은데요?
"꼭 단점이라고 말한 건 아니었어요. 전 자칭 '감성소녀'예요. 그 점이 다른 시사프로그램과 <뉴스쇼>를 다르게 만든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억지로 되는 건 아니고 타고난 성품이 그래요. 슬플 땐 같이 슬퍼할 줄 알고 화날 땐 같이 화 낼 줄 알았던 것이 청취자들이 들으시기엔 '공감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 감정을 제어하기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세월호 사건이 막 터졌을때 많이 힘들었죠. 정말 슬픈 인터뷰이지만 제가 울지 않아야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팔뚝을 마구 꼬집었어요. 방송이 끝나고 나면 팔뚝에 피멍이 들 때가 많았을 정도죠."

- <뉴스쇼> 1주년 인터뷰 때 "이 프로그램이 사회의 약한 부분들을 비출 수 있는 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마지막 인사에서도 "소외된 이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잖아요. 아마도 <뉴스쇼>가 사회의 약한 부분을 비추고 소외된 이들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청취자한테 사랑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권력을 향해서는 수많은 마이크가 달려드는데 소외된 이들은 뭔가 말을 하고 싶어도 통로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뉴스쇼>는 물론 강자들에게도 여느 프로들처럼 마이크를 들이대지만, 약자들에게도 마이크 꼭 열어야 한다고 처음부터 다짐했고요, 그것에 있어서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저희 스스로 평합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요?
"몇 년 전 훈련소에서 뇌수막염 걸린 장병에게 타이레놀만 복용시키다가 결국 그 훈련병이 숨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유사한 사건이 또 발생한 거죠. 여느 때처럼 전문가를 불러 이성적으로 진단할 수도 있었지만, 저희는 대중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훈련병의 아버님께 전화를 돌렸습니다. 당연히 처음엔 화를 내셨죠. '아들을 잃었는데 거기 나가서 무슨 말을 하면 아들이 살아오느냐?' 꾸준히 설득 전화를 드렸고 결국 아버님이 'OK'를 하셨어요.

죽어가던 그 순간을 담담히 풀어내시는데 어찌나 슬프던지 앞에 있던 엔지니어와 남자 PD들 모두 목놓아 울었고, 역시나 청취자들의 반응도 대단했습니다. 그 인터뷰 전문이 포털사이트에 실리면서 반향은 더 커졌고요, 결국 다음 날 '군 의료 시스템 전면 검토'라는 국방부의 발표까지 이끌어냈습니다. '나가서 뭘 하겠냐'던 아버님께서 '정말 고맙다. 우리 아들 이제야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화를 여러 번 하셨어요. '나를 설득해줘서 정말 고맙다'던 그 아버님. 이런 게 시사 PD의 보람이겠죠."

- 감성이 여론을 움직인 거네요?
"그렇죠. 아버님이 전문적인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고 군을 비판하신 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버님의 솔직한 심정들을 담담히 이야기하셨는데, 가슴이 움직이니까 결국 세상이 움직이더라고요. 잊을 수 없는 인터뷰죠."

- 이제 충전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충전을 하는 것은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잖아요, <뉴스쇼>가 아니라도 시사 프로그램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인가요?
"'청취자가 원하시면'이란 전제가 붙죠. 어차피 저는 방송을 하는 사람이고 방송이란 대중에 의해 움직이는 거니까요. 많은 분들이 저를 바라시면 빨리 충전해서 어디가 됐든 부르심을 받아 일을 해야겠죠."

- 끝으로 <뉴스쇼>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고 함께 호흡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저보다 더 아쉬워 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동안에는 추상적으로만 들리던 '청취자 사랑'이란 말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더군요. 10년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은 이런 분들이 제 뒤에서 버텨주셨기에 제가 버틸 수 있었겠지요.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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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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