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넥센 히어로즈 대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류중일 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넥센 히어로즈 대 삼성 라이온즈 경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류중일 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푸른 사자 군단이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완성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11일 열린 2014 한국시리즈(KS) 6차전에서 넥센을 11-1로 완파하고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11월 11일, 삼성의 4연패를 기념하듯 숫자 1만 네 자릿수가 들어간 날이었다.

전날 5차전에서 거둔 극적인 끝내기 승리가 사실상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차전은 그저 삼성의 우승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했다. 시리즈 내내 넥센 마운드에 다소 고전해온 삼성 타선은 그동안의 답답함을 만회하듯 화끈하게 폭발했다.

3회 1사 만루의 찬스에서 채태인의 2타점 우전 적시타와 최형우의 2타점 우중간 2루타로 대거 4득점하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6회에는 나바로가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나바로는 7회와 9회에도 1타점씩을 추가하는 등 이날 5타수 3안타 5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마운드에서는 선발 윤성환이 6이닝 3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2차전에 이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2승째를 챙기며 이날의 MVP에 선정됐다.

승부는 이미 5차전에서 끝났다

나바로는 한국시리즈 총 6경기에 출장해 24타수 8안타로 타율 0.333, 4홈런, 10타점, 8득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외국인 선수로는 지난 2000년 퀸란(현대)과 2001년 우즈(두산)에 이어 3번째 기록. 특히 나바로는 한국시리즈에서만 4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2001년 우즈가 작성한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홈런과 타이기록도 세웠다. 나바로는 기자단 투표에서 총 73표 중 32표를 얻어 25표의 최형우와 16표의 윤성환을 제쳤다.

반면 넥센은 5차전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이날 실망스러운 플레이로 일관했다. 3차전에서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던 오재영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듯 이날 2와 3분의1이닝 동안 2피안타 4실점(3자책점)으로 조기 강판됐다. 타선은 전날에 이어 4안타의 빈공에 허덕이며 이택근의 적시타로 고작 1점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어이없는 실책도 이어졌다. 전날 9회초 강정호의 결정적 실책이 빌미가 되어 통한의 역전패를 허용한 넥센 수비는 이날 총체적으로 무너지는 양상을 보였다. 3회 무사 1루에서 투수 오재영이 김상수의 번트타구를 흘린 것이 빌미가 되어 만루위기로 이어지며 대량 4실점을 허용했고, 강정호는 4회 1사에서 이지영의 땅볼타구를 놓쳐 지난 경기의 데자뷔를 드러냈다.

이어 6회에는 무사 1루에서 1루수 박병호가 김상수의 희생번트를 잡으려다가 미끄러지며 3회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곧이어 나바로의 3점포가 이어지며 분위기를 내준 넥센은 별다른 반격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힘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정규시즌 팀 최소 실책(59개)를 기록했던 넥센의 집중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삼성, '마운드-깊이-경험'에서 넥센에 앞섰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삼성의 방패가 넥센의 창을 압도한 대결로 요약할 수 있다. 두 팀은 올 시즌 나란히 팀홈런-타율 1,2위를 양분했지만 넥센이 좀 더 타격 의존도가 높다면, 삼성은 투타밸런스에서 앞섰다.

넥센은 서건창, 박병호, 강정호 등 MVP급 선수 세 명에 이택근, 유한준, 김민성까지 막강 타선을 구축했다. 반면 투수 엔트리는 삼성(12명)보다 적은 10명만 등록했다. 넥센으로서는 철저한 '소수정예' 시스템을 앞세워 화력 대결로 삼성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삼성의 경기 감각이 아직 올라오지 않은 1차전에서 강정호의 결승 투런포를 앞세워 4-2로 승리할 때만해도 이 전략은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력한 마운드가 반격의 원동력이었다. 벤덴헐크(1.5차전 13.1이닝, 3실점), 윤성환(2.6차전, 13이닝 2실점), 장원삼(3차전 6.1이닝 1실점)은 5경기에서 32.2이닝간 6실점만 내주며 평균자책점 1.65를 합작했다. 넥센전에서 유난히 약했던 4선발 JD마틴이 4차전에서 1⅓이닝 4실점(3자책)으로 부진한 것을 제외하면 선발 싸움에서는 삼성의 완승이었다.

불펜에서는 안지만의 활약이 돋보였다. 필승조 차우찬이 한국시리즈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정규시즌 블론세이브 1위 임창용 역시 신뢰감이 떨어진 삼성 마운드에서, '셋업맨' 안지만은 승부처에서 4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하여 5⅔이닝 동안 안타 2개 탈삼진 4개, 무사사구, 무실점의 완벽투를 펼쳤다. 선발 윤성환과 2승씩을 나눠가진 안지만이 이번 시리즈에서 사실 일본으로 진출한 특급 마무리 오승환의 공백을 메운 셈이다. 결국 단기전은 마운드 싸움임을 보여줬다.

삼성 타선은 이번 시리즈 내내 대체로 넥센 마운드에 고전했다. 장타가 폭발한 2,6차전을 제외하면 팀타율이 1할대를 밑돌았다. 하지만 역전승을 거둔 3, 5차전에서 먼저 선취점을 빼앗기고 종반까지 끌려가면서도 상대 타선을 1점으로 막아낸 것이 막판 뒤집기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승엽, 박석민, 김상수 등이 시리즈 내내 대체로 부진했고, 박해민이 부상을 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나바로, 최형우, 채태인 등이 고비마다 제몫을 해주며 뒷심을 발휘했다.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넥센의 경우, 믿었던 박병호와 강정호가 끝까지 침묵하자 실마리를 풀 선수가 없었다. 정규시즌의 MVP급 활약이 무색하게 타격이 풀리지 않으면서 박병호와 강정호는 수비에서도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경험의 차이가 곧 넥센의 한계였다.

유한준 정도가 공수에서 꾸준히 분전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부족했다. 에이스 앤디 밴헤켄을 받쳐줄 2, 3선발의 부재와 손승락-조상우 외에 이렇다 할 불펜 카드가 없었던 것도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마운드의 열세가 두드러졌다.

삼성, 시스템 야구로 역대 최강 넘본다

삼성은 통합 4연패를 바탕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강의 반열에 올랐다. 종전 프로야구 사상 한국시리즈 4연패는 종전까지 1986~1989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한 해태 타이거즈(현 KIA)가 유일하지만 당시 정규시즌 1위는 한 번 뿐이었다. 삼성은 장기 레이스인 정규시즌과 단기전인 한국시리즈서 모두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해태를 뛰어넘는다.

삼성은 전후기 통합 우승을 차지한 1985년을 포함하며 2000년대 이후에만 무려 7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추가했다. 'V8'은 역대 최다우승팀 KIA(전 해태)의 10회 우승에 이은 역대 2위의 기록. 1980~1990년대만 해도 해태의 그늘에 가려서 한국시리즈 무관의 설움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더구나 삼성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탄탄한 선수단과 치밀한 프런트의 조화가 돋보이는 안정적인 '시스템' 덕분이다. 올해 삼성의 4연패는 시스템 야구의 위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시즌으로도 평가된다.

삼성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타 선수들을 끌어 모아 우승을 노린다고 해서 '돈성'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을 거친 2000년대 중반부터 내부 육성에 전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현재 삼성의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리빌딩과 세대 교체를 통하여 자체적으로 키워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삼성은 지난 3년간 우승을 거듭하며 전력소모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삼성은 특급 마무리 오승환을 일본에 보내는 전력 출혈도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년보다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 속에서도 변함없이 1위를 독주했다. 고비는 있었어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삼성은 리그에서 가장 탄탄한 선수층을 구축하고 있다. 삼성은 1군 외에도 2.3군까지 운영하며 체계적인 투자와 지원을 가장 많이 하는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거친 코치의 숫자도 리그에서 가장 많다.

시즌 초반 진갑용과 이지영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백업포수 이흥련을 발굴해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과 사전 준비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2013년 이승엽과 채태인이 부진할 때, 2014시즌 최형우, 박석민이 잇달아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을 때도 삼성은 백업선수들의 활약으로 위기를 잘 극복했다. 올 시즌 가능성을 보여준 박해민, 백정현, 김헌곤, 우동균 등의 발굴은 이번 시즌만이 아니라 삼성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줬다.

삼성 야구만의 스타일과 자부심을 공유한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팀의 결속력을 높이고 있다. 이승엽과 임창용은 해외에 진출했다가 다시 삼성으로 귀환하여 팀의 고참으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 등은 모두 삼성의 리빌딩 정책을 통하여 성장한 선수들이다. 과거에 해태가 선동열, 이종범, 김성한, 이순철 등 지역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중심으로 '해태 정신'을 통해 똘똘 뭉쳤다면 지금은 삼성이 그러한 전통을 잇고 있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에서 프런트 야구에 대한 부작용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한국형 프런트 야구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철저한 전문성과 노하우 바탕으로 현장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프런트, 그 지원을 등에 업고 현장에서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은, 개개인이 아닌 탄탄한 '조직'으로서 삼성 야구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한국 야구계에 당분간 푸른 사자의 시대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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