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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랜스젠더이자 여성으로서 지금까지 겪은 성 전이(Transition)에 대한 기록을 총 3회에 걸쳐 게재하고자 한다. 이 글에는 수술에 대한 내 경험담, '어느 트랜스젠더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내가 Transition을 '성 전이'로 번역한 이유를 담았다... 기자 말

방콕의 숙소 1층 식당 테이블에 있던 장식. 하얀 조약돌 모양 초콜릿인 줄 알고 씹었는데 진짜 조약돌이었다. 같이 방콕에 온 언니가 다급히 말했다. "은하씨, 이거 돌! 돌돌돌!"
▲ 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방콕의 숙소 1층 식당 테이블에 있던 장식. 하얀 조약돌 모양 초콜릿인 줄 알고 씹었는데 진짜 조약돌이었다. 같이 방콕에 온 언니가 다급히 말했다. "은하씨, 이거 돌! 돌돌돌!"
ⓒ 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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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일. 나와 동네 언니들은 내가 수술을 받은 뒤 약 한 달 동안 요양할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은 무척 덥고 습했다. 아파트 벽 균열 사이로 핀 꽃이 멀쩡하게 옥상을 향해 쭉쭉 뻗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더위에 약한 체질인 나는 어떻게 한 달을 방콕에서 견딜지 걱정했는데,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방콕에 도착한 뒤 수술일까지 며칠을 제외하면, 병원이나 숙소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

여름나라에서 보낸 한 달... 나에게 일어난 변화

나와 언니들은 방콕에 도착한 후 한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신기하고 예쁜 것들을 잔뜩 구경했다.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앞둔 내게 먹지 말라고 당부한 것들을 제외하고도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휴식은 금방 끝났다.

9월 4일. 나는 병원에서 받은 알약과 끈적한 물약(이 물약 맛은 아주 끔찍했다)을 먹고 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십수 번에 걸쳐 뱃속에 든 걸 모조리 비워내고 금식까지 하니, 우스갯소리로 내겐 수술이 두렵다며 징징 짤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9월 6일. 나는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복을 입었다. 간호사는 수술 부위의 털을 면도기로 깨끗하게 밀어주고는 나를 수술실로 안내했다. 내가 받을 수술은 목젖제거수술과 성기수술. 목젖제거수술은 그리 큰 수술이 아니지만 성기수술은 전신마취를 하고 약 4~5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큰 수술이다. 전신마취를 해야 할 정도로 큰 수술을 받는 것도 수술실에 들어간 것도 처음이었던 나는 그 상황이 눈물이 찔끔 나도록 무서웠다.

'마취 깨고 나면 엄청 아프겠지? 그래도 전신마취는 안 아프겠지? 아픈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수술은 잘 되겠지? 나, 잘 깨어날 수 있겠지?'

물론 수술을 할 의사와 간호사들은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파들파들 떠는 나를 토닥여줬다. 곧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고 전신마취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푹 잠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회복실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여름나라라는 것을 까맣게 잊게 해줄 만큼 싸늘했다. 수술 부위는 하얀 거즈와 솜 따위로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는 핏물이 빠져나가는 줄과 소변 줄이 내 몸과 바깥을 잇고 있었다.

이날부터 지루한 요양이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 며칠 동안 침대에 누운 채 상체를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는 지정된 숙소로 이동해 마저 요양을 했는데, 초기에는 움직이는 게 매우 불편했다. 조심스럽게 소변 줄을 잡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 통을 비울 때를 제외하고는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다.

소변 줄을 제거한 뒤에도 나는 숙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환자인 내 체력이 평상시보다 훨씬 떨어져 있었고 수술 부위를 통해 생길 수 있는 감염 위험성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면 아직 안정되지 않은 수술 부위에 상처가 덧나거나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내가 혼자 몸을 움직여 숙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기까지는 수술일로부터 약 보름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이 기간 동안 마냥 괴롭고 심심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큰 수술을 받은 내 몸이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는 과정을 직접 느끼는 것은 아주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통역사님으로부터 내가 수술을 받은 환자 치고 회복이 상당히 빠르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딱히 내가 뭘 잘 한 게 아닌데도 괜히 으쓱했다. 또 함께 방콕에 온 언니들에게 숙소 바깥에서 보고 겪은 태국 얘기를 들을 때면, 시간은 다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9월 30일, 나는 언니들과 함께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방콕 야시장에서 먹은 음식들
 방콕 야시장에서 먹은 음식들
ⓒ 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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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을 뿐

나는 병원으로부터 수술 후 일정기간 동안 수술 부위가 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 나는 이를 착실히 지키며 내 몸을 돌보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거동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 회복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심심할 때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에는 내가 학교에서 MTF 트랜스젠더로서 커밍아웃하기 전에 군대에 갔던 후배를 만났는데, 그는 몇 년 만에 본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후배는 나를 보고 고개를 몇 번 갸우뚱 하더니 내게 물었다.

"혹시 강OO(내가 개명하기 전의 이름)형 누나 되세요?"

나는 그에게 "걔(강OO)가 접니다. 누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2010년 말부터 최근까지 내 사진들을 쭉 훑어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그 후배가 말한 것처럼, 예전의 나를 닮은 '여자 모습'으로 천천히 변해왔다. 만족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지난 수년에 걸친 나의 우화는 어느덧 끝자락에 와 있다.

하지만 나는 남은 삶이 순탄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나의 성 전이, 특히 지난 여름에 받은 수술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든, 이로 인해 내 삶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모두 바뀐 것은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와 여성에게 어처구니없는 공격과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또 성소수자와 여성을 향하는 차별은 사람들의 인식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구조에 스며있는 것이고, 나는 그 차별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 숱한 차별들은 결코 내 삶을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다. 다음 산을 넘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불완전성'

나는 태어날 적에 페니스를 가지고 있었다. 남중, 남고를 나왔다. 넓은 어깨와 좁은 골반, 그리고 다소 '남성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내가 사람들로부터 여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지난 성 전이 과정 내내 나를 괴롭혔고 내 본질에 대한 신념을 공격했다. 그러나 몇 달 전, 한 편의 영화가 나를 절망 속에서 구했다.

지난 여름, 수술 직후 방콕의 숙소에서 침대에 누워 꼼짝 못 하던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2000)>을 보고 또 보았다. 나는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 마틴의 삶과 그의 투쟁에 깊이 감명 받았다.

 앤드류 마틴의 얼굴이 될 반죽을 빚는 루퍼트 번즈
▲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한 장면 앤드류 마틴의 얼굴이 될 반죽을 빚는 루퍼트 번즈
ⓒ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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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마틴은 가정용 로봇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가전제품' '로봇'이라 불렀다. 그러나 앤드류는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그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유를 갈망했고 인간으로서 인정받고자 했다.

앤드류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기계라고 불렀을 때에도, 재판관이 영원한 수명을 가진 앤드류를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을 때에도, 앤드류는 자기 본질에 대한 그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앤드류는 영원한 수명을 포기하고 인간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목숨을 내놓고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영화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앤드류가 인간의 얼굴을 가지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받는 장면에서 로봇 연구자 루퍼트 번즈가 앤드류에게 한 말이다. 루퍼트는 앤드류의 얼굴이 될 반죽을 빚으며 앤드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이 기술의 핵심은 불완전성입니다. 주름, 덧니, 희미한 흉터 같은. 내 코를 봐요. 주먹코에 휘었죠. 이 코 덕분에 나는 나만의 개성을 가지는 거예요. (중략) 그러므로 불완전성이 우리를 특별하게 합니다."

루퍼트의 이 대사는 내가 한때 잊고 살던 매우 단순한 사실 하나를 말해준다.

"세상에 완전한 인간은 없다."

그러니 완전한 여자도 완전한 남자도 없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고, 이 불완전성은 인간의 차이를 구성하며, 이 차이로 모든 인간은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내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도 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없다.

※ '성 전이(Transition)'에 대하여
총 3회에 걸친 글, "어느 트랜스젠더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글에서 Transition을 '성 전이'로 번역했다. Transition을 '성 전이'로 번역하든 '성 전환'으로 번역하든 단어의 의미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성 전이'라는 단어를 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성 전환'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성별을 바꾼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성의 생물학적 성별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로 인해 남성으로 살 것을 강요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건대, 나는 한 순간도 남성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원래 남성이었던 강은하가 자기 성별을 여성으로 바꾼 이야기'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마 이 글의 독자 중 절대다수에게 '성전환수술'은 매우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SRS(sex reassignment surgery)를 '성전환수술'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환수술'은 '성전환'과 같은 이유로 이 글에 쓰이기에 적절치 못하다. 대신 '성별적합수술'이 SRS를 적절하고 올바르게 번역한 단어이며, 나는 사람들이 이제는 '성별적합수술'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둘째, Transition은 수술이나 호르몬투여(내지는 복용)와 같이 트랜스젠더가 자기 몸에 가하는 의료적 조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생활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때문에 Transition을, 사람들로 하여금 곧바로 수술을 연상케 하는 '성 전환'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성 전이'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덧붙이는 글 | 글의 검토를 도와준 소중한 친구와 존경하는 선배 활동가, 독자여러분, 그리고 부족한 글을 기꺼이 기사로 실어주신 오마이뉴스에 감사드립니다.



태그:#트랜스젠더, #MTF, #성 전이, #성별적합수술, #여정의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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