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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통과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진도 팽목항 현수막에 적힌 "당신을 삼킨 바다보다 포기하려는 국가가 더무섭습니다"라는 글귀가 향후 지난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 국가가 더 무서운 나라 세월호특별법 통과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진도 팽목항 현수막에 적힌 "당신을 삼킨 바다보다 포기하려는 국가가 더무섭습니다"라는 글귀가 향후 지난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 강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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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함께했다. 아이 때문에 만들어진 자리지만 정작 아이만 함께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었다.

지난 6일 안산시 구 상록구청에서 안산 통일포럼 주최로 세월호 유족 간담회가 열렸다. 소중한 아들을 잃은 한 부부가 지난 200여 일의 풍찬노숙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떨리는 심장보다 더 떨리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부부가 앉은 자리 귀퉁이엔 두루마기 휴지가 놓여 있었다. '슬픈 예감'을 암시하며. 엄마가 말을 시작했다.

"애를 떠나보낸 부모는 죄인입니다. 애를 보내놓고 간담회라고 다니고 있지만 막상 이 자리에 앉으면 할 말이 없어지고 머리는 온통 하얘질 뿐입니다."

오늘(6일) 간담회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 자리일지, 말하는 이의 마음이 듣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사고 첫날 전원구조 됐다는 문자를 보고 아이에게 갈아입힐 옷을 챙겨 진도로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TV라도 보고 싶은데, 제가 탄 버스는 TV가 고장이 났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고 하던데…. 현장에 도착하니 너무 썰렁했습니다. 오징어 배만 몇 척 보일 뿐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구조할 마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것이 힘에 겨운 듯 잠시 말음 멈춘 엄마는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말을 잇는다.

"우리나라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한숨) 엄마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는 기도뿐이었습니다."

엄마가 말하는 기도는 비단 교회에서 행해지는 그 기도만이 아니었다.

"울다가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찾다가 부처님도 찾고…. 아이가 좋아하던 사과를 바다에 던져주기도 하다가, (화가 나서) 염주도 바다에 던져버리고, (노하실까 두려워) 다시 찾아오고…."

엄마의 목소리에 축축한 물기가 느껴지는 순간, 간담회장 이곳저곳에선 조그만 흐느낌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5월 2일.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우리 아들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 아빠라는 사람이 자기 아들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겁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이 일만 끝나면 넌 이혼인 줄 알아'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아들 얼굴을 보려고 다가섰다가… 무서워서 뒷걸음을 쳤습니다.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손조차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오직 이거 하나만...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인 줄 몰랐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월 22일 오후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월 22일 오후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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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두려움은 아이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의 배경이 된 수많은 의혹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사고 전날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전화통화를 하던 아이는 '안개가 껴서 배가 안 뜨고 있어, 거봐 내가 수학여행 가기 싫다고 했잖아'라고 투덜거렸습니다. 사고가 난 후 여려 의문이 듭니다. 다른 배는 모두 떠나지 않았는데 왜 유독 세월호만 떠났는지, 왜 하필 물살이 가장 센 곳으로 운항했는지…. 그런데 아무도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제(5일) 청운동 천막을 철거했습니다. 청와대 옆 바닥에 살면서 대통령을 향해 '살려주십시오'라고 두 시간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은 없다."

엄마의 말은 개인적 다짐이자 사회적 선언이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오직 이거 하나만 하다가 가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인 줄 몰랐습니다."

예전 유가협, 민가협 어머니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발언은 숨죽인 절규였다. 처절한 부탁이었다.

"의지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번엔 아빠가 마이크를 이어 받았습니다.

"우리는 정부로부터 여론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고 초기 진도실내체육관에 약 1500명이 있었다면 그 중에 500명은 정보과 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것을 녹취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간담회에 함께하고 있던 한 시민이 일어나 소리친다. 그동안 세월호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답답한 점이 많았던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격앙되더니 결국엔 연대의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앞으로는 (유가족만이 아닌) 우리 전체의 문제입니다. 유가족 여러분들도 분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장기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후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마련돼 있는 정부합동분향소에 집결해 힘을 모을 예정이라고 한다. '세월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한 안산시의원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산지역 인터넷뉴스 데일리안산(www.dailyansan.net)에도 게재돼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유가족, #단원고, #안산,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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