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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자유언론 실천선언'의 일부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 정보기관 직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면서 기사 하나 하나를 검열했고, 정부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가 있으면 누락되곤 했다. 이를 참다못한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년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하며 자유언론 투쟁에 나섰고 이듬해 3월 17일, 134명의 언론인이 해직됐다.

어느덧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40년을 맞았다. 그러나 언론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권의 낙하산이 방송사에 투하되었고, 교과서에서나 보던 해직 언론인들이 다시 등장했다.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했던 언론인들은 현재의 언론을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지난 3일 정동익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을 서울 종로에 위치한 사월혁명회 사무실에서 만나 '자유언론 실천선언' 40년을 맞은 소감 등을 들었다. 다음은 정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유신독재 정권보다 지능적이고 교활"

정동익 전 동아투위 위원장
 정동익 전 동아투위 위원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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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 지 지난 10월 24일로 40주년을 맞았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어릴 때 '일제 36년'하면 엄청나게 긴 세월로 느꼈는데 우리가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 지가 벌써 40년이 넘었다니 세월이 빠름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습니다. 그때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시절이었는데 그의 딸이 집권한 요즘 언론 상황이 그때와 유사해요. 그래서 착잡한 심정입니다.

요즘 '신(新) 유신언론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론들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40년 동안 헛고생을 한 것은 아닌지 회의감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 어떤 점이 비슷한 것 같나요?
"지금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세월호만 하더라도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과 안전 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도를 해야 하는데,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는 데에 언론들이 앞장서고 있어요. 또 이명박 정부에서 해직 언론인이 여러 명 나왔는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현재 방송사들은 청와대 낙하산 인사가 장악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방송이 전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신문은 신문대로 족벌 사주들이 인사권과 편집권을 틀어쥐고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죠. 유신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주류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점에서 비슷해요."

- 1970년대 언론은 어땠나요?
"그때는 유신 독재정권 시절이기 때문에 언론탄압이 극심했어요. 지금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원들이 매일 언론사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신문과 방송 제작을 일일이 통제했어요. 그 당시엔 학생 데모, 종교인 기도회, 인권, 노동운동 등의 기사는 싣지도 못하게 했고 야당 당수가 기자회견 하면 사진도 못 싣도록 시시콜콜한 것까지 지시를 내렸어요.

사당동 달동네 연탄 값이 시내보다 비싸다는 기사를 쓴 기자가 계급투쟁을 선동했다고 붙들려가 매를 맞기도 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언론탄압을 했어요.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언론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언론인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싸우기가 훨씬 쉬웠죠.

하지만 지금은 아주 지능적이고 교활해요. 사주들을 통해 언론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언론 종사자들은 정권과 싸우기 전에 사주와 싸워야 해요. 그러나 사주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주에게 밉게 보이면 쫓겨나거나 정직 처분 등 불이익을 당해서 예전보다 싸우기가 훨씬 어려워요."

- 20~30대들은 '자유언론 실천선언'에 대해 대부분 잘 모르는데,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앞서도 말했지만 1970년대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시절, 언론탄압이 극심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습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회사 앞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것도 신문이냐며 동아일보 화형식을 갖고, 구속 학생 학부모들이 기자들이 취재 나가면 멱살을 잡고 '취재해도 쓰지도 못하는 기자들이 무슨 기자냐'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개와 기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까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참다못한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일 역사적인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냐면 서울농대생 300명이 데모한 기사를 실었다고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담당부장들이 연행됐습니다. 이에 기자들은 모두 퇴근하지 않고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밤샘 농성을 했어요. 그리고 24일 편집국에 모여서 '자유언론은 본질적으로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언론인이 스스로 쟁취해야 할 과제다'라고 선언하고 3개항을 결의했습니다.

첫째, 어떠한 외부 간섭도 일치된 단결로 엄격히 배제한다. 둘째, 기관원 출입을 엄격히 배제한다. 셋째,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거부하며 불법연행될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아니한다. 이날 이후 기관원들이 회사에 출입하지 못했고 그동안 실리지 못했던 학생 데모, 종교계의 인권회복 기도회, 민청학련, 인혁당 고문 조작사건들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아일보 쓰레기' 구호 들으면 가슴 아프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이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2008년 10월 29일 오후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동아사태'는 '정권 차원의 언론탄압'이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동익 위원장을 비롯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회원들이 2008년 10월 29일 오후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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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백지광고가 아직도 회자되는데요.
"그해 11월 12일에 천주교에서 전국동시인권회복기도회를 열었어요. 그때 저희 판단으로는 전국적인 인권기도회기 때문에 톱기사감이니 크게 보도하라고 회사에 요구했어요. 그런데 간부들은 정권이 무서워서 크게 보도 못한다고 했죠.

그날 기자 총회에서 "이렇게 중요한 기사를 제대로 보도 못한다면 그런 신문은 우리가 제작할 필요가 없다. 보도될 때까지 제작 거부에 들어가자"고 제가 긴급 제의했어요. 당시 석간신문이라 오후 4시까지 신문을 제작해야 했는데 밤 12시까지 제작을 못했어요. 그런 진통 끝에 다음 날 사회면 중간 톱기사로 크게 보도되었지요. 우리는 매일 회의를 통해 어떤 기사가 누락되고 어떤 기사가 제대로 보도 안 되었는지 점검하고, 개선책을 논의하고, 필요하면 데스크에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보도 못되던 기사들이 나갔어요.

인혁당이나 민청학련 고문 사건까지 크게 보도되자, 이에 당황하고 체제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광고 탄압을 가해왔습니다. 광고면이 하얗게 빈 채로 나가자 국민들이 격려 광고 성금을 들고 와 자유언론 수호투쟁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러자 정권은 동아일보 사주 측에 압력을 넣은 것 같아요. 사측은 자기 재산이 날아갈 위지에 처했다고 생각했는지, 끝내 권력과 야합해서 1975년 3월 17일 새벽 농성 중이던 134명의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을 깡패들을 동원해 회사 밖으로 축출하였습니다. 그중 113명의 해직 언론인들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 6개월 동안 매일 회사 앞에서 도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언론 민주화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제가 듣기론 <동아일보>가 한때 야당지였다던데, 그 기간이 짧았네요.
"자유당 정권 때는 가장 바른 말 하는 데가 <동아일보>였어요. 제가 1967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는데 그 당시 <동아일보>는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신문이었어요. 지금은 3류 신문이 됐지만 그땐 조선이나 중앙이 못 따라 오는 독보적인 1등 신문이었어요. 그런 신문이 저희를 내쫓고 난 뒤부터 논조나 신문 성격이 변한 거죠."

- 말씀을 들으니 혹여 MBC가 <동아일보>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 어떻게 보세요?
"요즘 MBC가 방송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기자, 프로듀서들을 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복직시키지 않고, 110명이나 되는 능력 있는 기자, 피디들을 현업에서 배제 시키는 걸 보면 <동아일보>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국민들이 사랑하는 방송이었는데 요즘 MBC는 국민들에게 완전히 외면 받고 있습니다. 언론이라면 정권의 눈치보다 국민을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의 <동아일보>를 보면 가슴 아프실 것 같아요.
"가슴 아프죠. 촛불집회 때 시민들이 <동아일보>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동아일보 쓰레기"라는 구호를 외쳐요. 그런 소릴 들을 땐 마음이 씁쓸해요. 그래도 <동아일보>는 제 친정과 마찬가지잖아요. 친정이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기분이 좋은데 <동아일보>가 저렇게까지 변질했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착잡하죠."

- 민주정부 시절에도 <동아일보> 해직자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요.
"소위 민주정부라 불리는 시절에 저희 문제를 해결했어야 해요. 좋은 기회였죠. 제가 13개 시민언론단체가 결성한 '해직언론인원상회복쟁취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아 민주정부 시절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안 됐죠. 국회에 법안 상정까지 시켰는데 협조를 안 해요. 왜냐면 정치인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언론에 약해요. <동아일보> 눈치를 보는 거죠. '겉으로는 원상회복 되셔야죠' 하면서도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배신감을 느끼죠. 언론문제를 해결하는 정부가 진정한 민주정부라고 봐요."

"지금이야말로 제2의 자유언론 실천선언 나와야할 때"

'교양제작국 해체, 110명에 이르는 기자와 PD의 현업 배제' 등 MBC경영진의 인사를 규탄하는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대표자들이 4일 오후 상암동 MBC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할 MBC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 "MBC는 언론인대학살 중단하라" '교양제작국 해체, 110명에 이르는 기자와 PD의 현업 배제' 등 MBC경영진의 인사를 규탄하는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조, 기자협회, PD연합회 대표자들이 4일 오후 상암동 MBC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할 MBC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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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들어 해직 언론인이 다시 등장했어요, 후배 해직 언론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씁쓸할 것 같은데.
"정말 그렇습니다. 저희 같은 불행한 언론인이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랐는데, 선배 해직 언론인으로서 후배 해직 언론인들 볼 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특히 그들의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제가 2008년 동아투위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YTN 기자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현장을 격려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 정권이 가면 얼마나 가겠느냐 국민이 여러분 편이다. 국민을 믿고 끝까지 투쟁해 달라 여러분은 승리한다. 모두 힘내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정부가 바뀌었는데도 YTN을 비롯해 MBC등 해직자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답답한 심정입니다."

-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와 싸우셨잖아요. 다시 엄혹해진 언론환경 속에서 후배 언론인들의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이랄까요, 그런 것이 선배님들이 보기에 부족해 보일 것 같은데.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잘 싸우고 있습니다만 좀 아쉬운 대목도 있습니다. 방송사 파업할 때 후배들에게 "파업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보도투쟁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파업하는 이유와 언론계 현실을 알게 되지 그런 걸 안하고 파업만 하면 국민들은 파업하는 이유도 모른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선 언론인들은 매일 매일 신문 방송에서 누락되거나 기사의 비중에 맞지 않게 보도됐는지 점검하고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래도 방송사 후배들은 잘 해보려고 몸부림이라도 치는데, 조중동 등 주류 신문 쪽에서는 아예 미동도 않고 자기들이 뭘 잘못하는지도 못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들도 빨리 의식이 깨어나서 자유언론 수호투쟁에 동참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 지난달 8일 성유보 선생이 타계하셨어요. 충격이 크실 것 같은데.
"성유보 선생과 저는 대학 1학년 때 동숭동에서 함께 하숙을 한 이래 반세기가 넘도록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갑자기 먼저 떠나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희 동아투위원이 모두 113명이었는데 어느새 19명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1975년 3월 17일 쫓겨났기 때문에 저희는 매달 17일이면 어김없이 40년 동안 모이고 있어요. 그런데 숫자가 줄어드는 걸 느낄 때 마음이 안 좋죠. 그래서 모이는 숫자가 더 줄기 전에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자유언론이 활짝 꽃피는 세상을 하루 빨리 보고 싶습니다."

- 아직도 복직이 꿈이세요?
"저희는 단 하루라도 복직하는 것이 꿈이었죠. 그것도 안 받아들여졌죠. 40년 동안 길거리 언론인으로 살았는데 아직도 떳떳하게 복직해서 <동아일보>가 예전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바뀌는 게 꿈이에요."

- 후회한 적 없나요?
"그 당시로 되돌아간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한 적 있는데, 똑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후회 안 해요."

- 마지막으로 후배 언론인 그리고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희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는데 '언론자유야말로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선결적 자유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언론이 심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진실에 목 말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제2의 자유언론 실천선언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 후배 언론인들의 분발이 있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국민이 깨어 있어야 깨어 있는 언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국민들이 언론 바로 세우기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빙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유언론실천선언, #정동익, #동아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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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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