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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10월 26일) 아침, 요란하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오랜만에 아점이나 먹자는 전화인가 싶어 통화 버튼을 누르니, 전화 속 친구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침울하다.

"재크가 죽었어…."

재크? 재크라면... 친구 시누이의 아들? 설마… 이제 겨우 고등학교 졸업한 열여덟 살짜리가… 무슨…. 말뜻을 이해 못하고 눈만 끔뻑이고 있으니 친구가 말을 잇는다.

"어제, 시누이 집 차고에서 친구들하고 권총을 갖고 장난을 쳤나 봐. 그런데 총알이 든 줄 모르고 그만 머리에…."

권총? 장난? 머리? 영화 속 끔찍한 러시안룰렛 장면들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사고 후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현재 뇌사 상태란다. 총알이 밖으로 나오지 않아 얼굴은 크게 상하지 않았지만 엉망이 된 머릿속 총알을 꺼내는 수술은 포기한 상태라고.

오늘 중으로 호흡기를 뗄 예정이고 목요일에 장례를 치를 거라는 말까지 친구는 차분히 전했다. 볕 좋은 일요일 아침에 듣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끔찍하고, 놀라운 얘기였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조심스레 물은 나의 첫 마디는 "…바니(시누이) 집에 총이 있었어?"였다.

운동광이었던  재크는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소년이었다.
 운동광이었던 재크는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소년이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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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새로 이사한 바니의 1.5층 아담한 집 어디에도 총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총은 재크의 친구가 잠시 맡겨놓은 것이었단다. 그러니까 재크 또래의 10대가 총을 갖고 있다가 무슨 문제가 생겨 같은 10대 친구 집에 뒀던 것이다.

시누이도 총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단다. 토요일 새벽에 총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그 사단이 나 있었던 거였다. 사냥, 낚시를 비롯해 아웃도어 스포츠를 좋아하던 재크는 총을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날도 권총의 탄창을 빼고는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부에 남아있는 총알이 있는 줄 모르고 친구들끼리 서로 겨누며 놀았던 거다. 어울리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재크가 오늘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미국서 매년 3만여 명이 죽는 이유

미국에서 총기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다큐(<볼링 포 콜롬바인>)로도 만든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사건(13명 사망, 24명 부상)을 비롯해 32명이 사망해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2007년 버지니아 텍 사건, 그리고 2011년 6명이 사망하고 연방 하원의원 등 12명이 부상당한 애리조나주 쇼핑몰 총격 사건, 26명이 사망한 2012년 커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의 대 참사, 여기에 영화 개봉을 기다리던 관객 12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한 콜로라도 극장 총기 난사 사건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도 잦고 많다.

최근 총기 규제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오노 요코에 의하면 남편 존 레논이 정신 이상자의 총격으로 사망한 1980년 12월 8일 이후 미국인 105만7000명이 같은 방법으로 사망했다. 이는 매년 3만1537명이 전쟁이 아닌 일상에서 죽고 있는 거다.

지난달 3명의 사망자를 낸 시애틀 고등학교 총격 사건처럼, 이젠 미국 뉴스에서도 대규모 인명 피해가 안 나면 주요하게 처리하지 않을 정도로 총기 사고는 '흔한' 뉴스가 됐다. 10대 청소년이었던 재크의 총기 사망 사고도 파고 지역 뉴스에서 단신으로 짧게 보도했을 뿐이다. 

지역 스포츠 매장에서 전시.판매되고 있는 어린이용 라이플. 30~400달러까지 다양한 제품이 구비되어 있다.
 지역 스포츠 매장에서 전시.판매되고 있는 어린이용 라이플. 30~400달러까지 다양한 제품이 구비되어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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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수정헌법에도 나와 있는, 총기 소유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게 옳다고 믿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끊이지 않는 어린이 총기 사고 소식을 낳고 있다.

2012년 성탄절엔 크리스라는 세 살짜리 어린이가 아빠의 38구경 총을 가지고 장난치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어린이 자신의 총으로 일어난 사고도 줄을 잇는다. 지난 2월, 행크라는 아홉 살 소년은 혼자 총을 들고 토끼 사냥을 갔다가 다음 날 이마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살 때부터 부모를 따라다니며 사냥을 익힌 이 어린이는 엄마가 사준 소총을 들고 나갔다 오발 사고를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5월엔 다섯 살 남자 아이가 두 살 여동생을 "My First Rifle(내 생애 첫 번째 라이플 : 장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사고도 있었다. 새로운 소비 계층인 어린이를 상대로 한 마케팅이 활발해지는 것과 비례한 사고들이다.

여론 호도로 규제되지 못하는 총기

2007년, 버지니아 텍에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는 반자동 권총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동네 총포상에서 두 번째 총을 샀고 범행을 저질렀다. 언론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학생이 어떻게 한 달 사이 두 정의 권총을 구입할 수 있었는지를 두고 놀라워했다. 총기 규제에 대한 느슨한 법망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그의 2기 행정부 핵심 과제로 이민법 개정과 더불어 총기 규제를 내걸었다. 스무 명의 유치원생을 포함한 26명이 사망한 샌디 훅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오바마는 박차를 가해 '공격용 총기와 대용량 탄창을 금지하고 총기를 사는 사람의 신원 확인을 강화하는 총기 규제 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의회에서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73%의 미국인들이 총기 규제를 제한하는 법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과 의원들의 소극적인 행동 때문이다. 이런 반응의 배후에는 배우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으로 상징됐던, 회원 420만의 미국 최대 압력단체인 '전미 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 그리고 '미국 총기 소유자 협회(Gun Owners of America)' 같은 강력한 로비 단체의 영향력이 자리 잡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3월, 이들 단체의 영향력이 커진 배경으로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지적했다. 현 민주당 정부와 각을 세우는 공화당의 경우, 이민법과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동조하는 의견이 많지만 총기 규제에 대해선 결사반대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위에 열거한 총격 사건이 났을 때도 총기를 규제하자는 여론보다 이들 로비단체들의 논리가 더 부각됐다. 이들은 총격 사건은 '좌파들이 위험한 정신병자나 괴물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탓에 선량한 이들이 희생을 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총은 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총기 사고에 대한 공포를 역으로 총에 대한 규제 거부와 소유로까지 이끄는 전략인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학교 내 총기 사고 대책으로 교사의 총기 휴대가 제안됐다. 이는 현실이 돼 올 가을학기부터 미국 28개 주 공립학교에서 교사들의 총기 소지가 허용되었다. 좋은 총(Good Gun)으로 나쁜 총(Bad Gun)을 막는다는 논리다. 이는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참사 때와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의 총기 구입자들이 '자기 방어와 보호가 총기 구입의 목적'이라고 대답한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총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재크의 장례식은 지난 10월 30일, 웨스트 파고에 있는 루터란 교회에서 치렀다. 식이 시작되기 전, 관속에 누워 있는 재크의 시신이 지인들에게 공개됐다. 평일 오후 2시임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교회당을 가득 채우며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눈물을 지었다. 생전 처음 보는 친구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서로 토닥이며 슬픔을 이기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함께 파티하고 낚시 다니던 그 친구가 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장례식장엔 회색 재킷을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엄마인 바니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5년 전 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총기는 미국 중·장년층 자살 방법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총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들은 오랫동안 껴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재크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시애틀 총기 사고에 대한 작은 뉴스가 신문을 장식했다. 친구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5살 고등학생 제일런 프라이버그가 범행에 사용한 바레타 권총, 그 총은 그의 부모가 생일 선물로 준 것이었다.

재크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남긴 방명록
 재크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남긴 방명록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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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규제 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총기로 목숨을 잃거나 큰 피해를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총기 규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4일 미국 전역에서 중간 선거가 치러진다. 각 지역별 현안이 주민 투표를 거치게 되는데 이 중 워싱턴 주 등지에선 총기 규제나 총기 소지 권리 확대 여부가 가장 큰 이슈다. 11월 4일,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미국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총기사고, #오바마, #중간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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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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