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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누슈 코르착이 쓴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겉 표지
 야누슈 코르착이 쓴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겉 표지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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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부모는 옛날 부모보다 아이 키우는 것을 더 힘들어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하는 것은 옛날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오늘날은 아이를 잘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텔레비전은 교양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고, 백화점 문화센터부터 학교 학부모 교육까지 다양한 부모교육이 열리고 있고 유명 강사도 넘칩니다. 그런데도 왜 부모들은 아이 키우는 일을 점점 더 힘들어 할까요? 제가 보기에 그 까닭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전수 받지 못하였거나 깨닫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혜'를 담은 책입니다.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유대인 야누슈 코르착은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빈민거주 지역으로 이사한 뒤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재능이 있었던 코르착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잡지사나 문학주간지에 원고를 실어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폴란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파데레프스키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이 문학상에 응모하면서 지었던 필명이 바로 야누슈 코르착이라고 하는 일생 동안의 필명이 되었습니다.

의사이자 작가면서 교육운동가였던 코르착

작가와 의사의 길을 두고 고민하던 코르착은 먼저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의사가 된 까닭은 가난하고 아픈 사람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글쓰기는 그저 글일 뿐이지만 의술은 행동이다"라고 생각하여 의사의 길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의대 생활을 하면서 빈민지역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이때 만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이 바로 <거리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코르착은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며 빈곤층 아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합니다.

10여 년 후 의사로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의술이나 문학작품으로 아이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고아원 원장이 되어 직접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며 이후 죽는 날까지 교육자로 살아갑니다.

훗날 사람들은 코르착을 "의사이자 작가, 교육자, 철학자이며 위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아동 인권 옹호 운동의 선구자"라고 합니다.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 킹, 소크라테스에 비견되는 그는 사후에 독일 평화상을 받았으며 그의 저서는 20여 개국에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코르착이 테레사 수녀나 킹목사와 같은 전설적인 존재가 된 것은 확고한 신념과 책임감으로 죽음을 피하지 않고 나치에 맞섰기 때문입니다. 나치가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을 소탕하기 시작하였을 때 자신을 구해내려는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수백 명의 유대인 고아들과 함께 트레블링카의 가스실로 가는 기차를 탔다고 합니다.

"1942년 8월 6일 코르착과 아이들의 죽음의 행진은 전설이 되었다. 피로에 지치고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코르착은 200명의 아이들을 조용하고 질서 정연하게 이끌며 기차역을 향해 숨죽인 바르샤바의 거리를 힘차게 행진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책을 손에 들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들과 트레블링카의 가스실이 종착지인 화물차에 올랐다." (본문 중에서)

많은 아이들을 자기 손으로 길렀던 코르착은 그 아이들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인간의 선을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죽음을 향해 함께 걸어갔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코르착>은 폴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안제이 바이다에 의하여 제작되어 전 세계에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상영되었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모른다는 것이지요.

마음과 영혼을 파고드는 '지혜'를 담은 책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은 평생을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다 전설같은 죽음을 선택했던 야누슈 코르착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에 관하여 쓴 책입니다. 운문 형식으로 짧게 짧게 쓰인 글들은 마음과 영혼을 파고드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런 지혜의 문장을 골라 일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어린이는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살 사람입니다."
"사실 아이가 죄책감을 느낄 때, 그때는 바로 어른들이 따뜻함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이 때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주장합니다. 미래를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르착은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서 오늘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비밀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호소든 협박이든 비밀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나쁩니다. 그렇게 해서 비밀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는 당신에게 가까워지기는커녕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많은 어른들은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도 아이들에겐 마치 비밀을 가지는 것이 정직하지 않은 일인 듯 비밀을 캐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야누슈 코르착은 아이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어른의 노력은 아이와 어른을 더 멀어지게 만들 뿐이라고 말합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아이들이 어른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딱 한 가지뿐이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돈을 버는데 "아이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못 버는 것을 빼고는 어른에 비해 결코 열등하거나 모자라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만약 아이들이 어른에게 생계를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면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말을 잘 듣도록 강요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아이들은 생계를 어른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어른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데,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아이들의 비밀을 캐내려 협박하지 마시라!

아이가 하는 행동을 좌절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이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거나 그만두라고 말하겠지요. 그런데 야누슈 코르착은 무심코 하는 그런 행동이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합니다.

"아이가 숟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고 있을 때 그 숟가락을 빼앗아 버린다면, 단지 물건 하나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던 손의 일부를 빼앗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에게 "얼굴 표정만 봐도 다 안다"고 합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할 때라면 반드시 그렇게 말합니다. "말 안해도 다 안다", "니 표정만 봐도 거짓말인지 아닌지 엄마는 다 안다"라고.

하지만 정작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은 아이들이 더 뛰어납니다. 아이들은 "마치 농부가 하늘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듯이" 어른들의 표정을 읽어낸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그것을(표정을 읽는 능력)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압니다. 친절함을 느끼고, 거짓을 알아차리고, 어떤 것이 엉터리인지 알아차립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그것을 관찰하고 연구해왔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오늘날 많은 어른들은 좋은 장난감과 맛있는 음식을 사 주는 것으로 아이들이 기쁨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누슈 코르착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껏 기뻐하는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그런 최고조의 기쁨은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나 궁금증이 풀렸을 때. 이 순간은 승리했다는 행복감과 스스로 해냈다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본문 중에서)

야누슈 코르착은 '아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말도 옳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겐 익숙한 말이지만 아이들을 미완성의 존재로 보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는 미래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것은 '앞으로 될' 사람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린이들은 인류, 국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 할 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고, 현재 여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현재도 주인공

아이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현재도 주인공'입니다.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되어 잘 살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아니라 지금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경험하는 두려움에 대한 저자의 통찰도 놀랍습니다.

"세상에는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신 겁내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오래 전에 읽은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그도 야누슈 코르착의 영향을 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아이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신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을 묻는다고 타박을 들었거나 재미있는 얘기를 했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거나, 비밀을 털어놓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폭로 당해 본 한 아이는 '어른들은 길들여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믿을 수 없는 야생 동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아이가 질문할 때 타박하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 관심있게 들어주고,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지켜주는 작은 일로 부모와 교사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 있습니다.  코르착이 아이들의 '침묵과 정직함에' 대해 쓴 글은 이 책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문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직합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아이는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얘기할 수 없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침묵은 때때로 정직함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나 교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쳐 본 경험이 있나요? 이런 경험이 없는 부모나 교사가 있을까요? 저 역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아이를 다그쳐 본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침묵은 때로 정직함을 표현하는 방법

그렇지만 한 번도 아이가 '침묵을 통해 정직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아이의 침묵에서 그리고 타인의 침묵에서 정직함을 읽어내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깊이 해 보게 됩니다.

운문 형식으로 짧게 짧게 쓴 글에는 철학과 문학, 교육과 종교가 어우러진 시적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는 부모와 교사라면 한 번 읽고 책꽂이 꽂아 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늘 가까이 두고 다시 새기며 읽어야 하는 어린이 교육의 경전으로 삼을 만한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양철북(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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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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