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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이 생긴 지 올해로 50년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일터는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기획 '거절된 산재'를 통해 열악한 노동 현장의 실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월 중순, 볕 좋은 가을날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김OO님을 만났다. 그분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는데 자주 손을 멈추고 김씨의 눈을 바라보게 된다. 한 마디도 허투루 하시는 게 없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김씨와 그의 동료 그리고 학교 급식 조리실 이야기다.

"가르치는 일은 교사가 하고 나머지는 교육에 꼭 필요한 일인데도 천대하는 문화가 있어요. 중요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이면 존중을 해줘야죠. 밥하는 사람은 몸의 양식을 만들고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은 영의 양식을 만드는 거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 존중받지 못하고, 아이가 커가면서 나의 일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 가슴이 아파요.

조리 노동은 전문성과 소명, 행복이 필요한 일인데 학력만으로 신분이 정해지고 차별을 당하는 게 부당해요. 학교에서는 물질과 학력으로 차별을 가르치고 있어요.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이렇게 말하는 부모도 있어요. 교실에서 내 직업을 설명하는 날이 오길 바라죠.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얘기하신 게, '책만 알아가지고 무얼 해 먹어' 였어요."

급식조리사 1명이 학생 150명 밥 지어

 급식조리원이 조리 중 화상을 입고 사망한 서울 A초등학교 조리실
 급식조리원이 조리 중 화상을 입고 사망한 서울 A초등학교 조리실
ⓒ 서울일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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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회계비로 인건비를 지급하는 노동자를 '학교회계직'이라고 한다. 30여 직종이 학교 회계직으로 학교에서 일한다. 급식 관련 직종이 6만6천여명으로 가장 많고 교무 일 하는 분이 1만5천여명, 돌봄전담사가 8500여명 특수교육이 7800여명 정도 된다. 과학, 전산, 사서, 사무, 돌봄,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 배식보조…. 학교에서 일하는 교직원 86만5천여명의 42%에 이르는 이 분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정부는 학교에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일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점차 무기계약직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무기계약직은 고용은 안정될지 몰라도 정규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서 언론에 선전할 때는 정규직처럼 말한다.

"채용했다고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해도 되는 건지, 계약만료라고 학교에서 자르고. 제일 나쁜 법들은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적은 보수에 갈등까지 깊어지고. 2010년 전에는 7일 이상 병가를 쓰면 그만둬야 했어요. 지금도 바로 알아서 그만두긴 하죠. 급식이 유기농이 많아지면서 우리 일도 많아졌어요. 벌레도 있고, 직접 만들어 먹이는 걸 좋아하니까. 떡갈비 같은 것도 냉동이 아니라 직접 만드는데 인력은 그대로니까요.

교육감이 선생님들 업무경감 시겨주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학생 150명당 한 명이 밥을 해요. 학생이 1000명이면 우리가 열 명도 안돼요. 열 명이라도 되면 좋게요? 일을 시작하던 2004년에만 해도 우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선생님들은 우리를 '아저씨, 아줌마, 여사님'이라고 부르면서 떡심부름, 과일심부름, 차심부름을 시켜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쳐서 내보내면 어떻게 하나요. 저 중학교 때 허름한 옷을 입은 아저씨가 화단 일을 하고 있어 제가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보니 사회선생님이셨어요. 그때 사회선생님이 저보고 말하셨어요. '학교에선 모두가 선생님인 거야'라고요."

10년 일하다가 얻은 병, 이게 산재가 아니면...

저임금을 받고 일했지만 김씨는 행복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엄마를 자랑스러워 했던 아이가 점차 '엄마 일이 선생님하고 다르구나' 하고 느끼게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국솥을 닦으려고 하는데 팔이 잘 안 돌아가더라고요. 작년 봄인데… 한의원 다니고 통증클리닉 다니면서 1년을 견디다가 겨울에야 병원에 갔어요. 올 봄 4월에 수술을 했는데 산재를 신청하려니, 각종 서류와 증언까지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몰랐어요. 내가 겁없이 한 거죠. 남편이 산재신청 서류를 보더니 '산재가 뉘집 장난인 줄 아냐, 겁대가리 없이 종잇값도 안 나오고 차비도 안 나오겠다'고 하더라고요. 10년 급식노동하면서 온 병인데, 이게 산재가 아니면 이 나라는….

병원비가 몇 백이 나왔는데 다인실에만 있었는데도 60%가 비급여예요. 산재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다 구비했고, 학교 도장 찍어서 내기만 하면 되요. 그런데, 산재신청 한다니까 행정실이랑 관리자가 서로 '니가 해라' 미뤄요. 그냥 서류 작성하는 건데 그래요, 보고 올리는 거.

조리실 스테인리스에 여기저기 부딪쳐서 멍자국이 많아요. 목욕탕에 가면 가정폭력으로 오해받을 만큼 멍이 생겨요. 우리가 청소, 천장 청소, 다 닦거든요. 스테인리스 시설들이 반짝반짝하도록 닦는 것도 우리고. 화상 치료도 많은데, 다 개인치료로 하죠. 일 시작하고 초기에 화상을 입었는데 영양사가 '학교에서 일하다 데었다고 말하지 말아 달라'고 전화하더라고요. 서류 보고도 해야 하고, 귀찮으니까.

산재가 나온 학교는 노동부에서도 나오고 (근로복지)공단에서서도 나와 집중적으로 괴롭혀요. 같이 급식실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프고 수술한 사람이 많아요. 산재 내본 사람은 없죠. 그래서 궁금한지 전화해서 '산재 어떻게 됐어?' 물어봐요. 내가 '기다려봐' 이러고 있어요."

김씨는 아직 산재서류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 김씨는 학교와 '대치중'이라는 말을 했다. 김씨에게 이 문제는 비단 돈이 아닌, '급식실 노동에 대한 존중'을 걸고 싸운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밥해주는 이 일을 사랑한다고 했다. 남들에게 밥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 거란다. 학교와 '대치중'인 김씨의 용기는 '일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정부, 관료들은 김씨의 산재신청을 방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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