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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비밀의 문>의 김택(김창완 연기).
 드라마 <비밀의 문>의 김택(김창완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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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 드라마 <비밀의 문>에는 영조·사도세자 부자를 압박하는 강력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자기와 자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살인은 물론이고 자식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노론당의 영수, 김택(김창완 연기)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택은 '맹의'로 약칭되는 대일통맹의란 문서를 무기로 영조를 압박하고 있다. 경종을 몰아내기 위해 영조와 노론당이 함께 서약한 문서라는 대일통맹의를 내세워 영조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김택은 겉으로는 신하의 예를 다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영조에게 반말도 서슴지 않는다. 일례로, 지난 9월 29일 방송된 3회에서 김택은 "어이, 이금!"이라며 영조의 실명까지 입에 담았다. 이것도 모자라 그는 "우리가 죽으면 너도 죽어!"라며 영조를 협박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영조가 갑이지만, 둘만의 자리에서는 김택이 갑이다.

김택은 영조가 말을 안 들으면 자기가 언제든 새로운 임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군주를 택할 수 있는 택군(擇君)의 권력이 있다는 게 그에게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권력이라는 기타가 있다면, 김택이 치는 기타 소리는 경복궁 뒤편 북악산에 산울림이라도 일으킬 만할 것이다. 

그 같은 김택의 위력은 이름 자체에서도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제시한 그의 한자 이름은 김택(金澤)이다. 이때의 택(澤)은 못 혹은 연못을 뜻하지만, 이것은 그냥 듣기에는 '택군'의 택(擇)을 연상케 한다. 이름에서부터 킹메이커의 위상을 풍기게 하려고 이런 이름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조 압박하는 김택이 존재할 수 없었던 이유

김택은 실존 인물은 아니다.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 실존했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 수도 있다. 영조가 특정 당파의 권력 독점을 금하는 탕평 정치를 실시한 시대에도 노론당이 가장 강력했으므로 김택 같은 노론당 영수가 배후에서 영조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20대 주상인 경종의 말기와 제21대인 영조 시대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김택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 속의 김택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도 노론당 영수였고, 왕이 된 후에도 노론당 영수였다.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그는 영조를 끌어들여 정권교체를 이루어냈고, 왕이 된 후에는 영조를 압박하며 노론당 천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정치인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영조(한석규 연기)와 김택.
 영조(한석규 연기)와 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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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대권 승계를 위해 노력한 네 명의 노론당 핵심 인물이 있었다.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전 좌의정 이이명, 전 우의정 조태채가 바로 그들이다. 흔히 '노론 4대신'으로 불리는 이들은 영조의 킹메이커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들은 영조가 왕이 되기 전에 모두 역모죄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경종을 무력화시키고 영조의 대권 승계를 앞당기려 하자, 경종의 여당인 소론당이 일치단결하여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 후로도 일시적으로 부각된 노론당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에서 영조 즉위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한 인물은 없었다. 그래서 영조 즉위 전에는 김택 같은 인물이 없었다.

그럼, 영조가 즉위한 이후는 어떠했을까? 영조가 노론당의 지지로 왕이 됐으므로, 그의 즉위 후에 김택 같은 인물이 실력자로 부상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영조가 즉위한 1724년 당시의 집권당은 노론당이 아닌 소론당이었다. 소론당은 경종 시대의 여당이었지만, 영조는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인한 혼란을 막고자 소론당 온건파와 손잡고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서 영조 즉위 이전과 즉위 직후에 계속해서 최고 권력을 행사한 노론당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 뒤 영조는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준 노론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1727년에 일으킨 정미환국이란 정계개편을 통해 영조는 노론당을 밀어내고 소론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노론당의 권력이 다소 불안정했기 때문에, 영조 집권 초기에도 김택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는 힘들었다.

영조는 탕평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면, 자기편이든 상대방이든 간에 과감하게 타격을 주었다. 그는 소론당은 물론이고 노론당도 너무 강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는 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되 너무 크게 승리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통치자였다. 여당이 압승할 것 같으면 야당을 은근히 지원해주는 통치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각 당파를 골고루 견제하는 가운데, 영조는 각 당파의 온건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노론당 및 소론당 강경파들은 상대방 당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이들은 탕평 정치에 찬동할 가능성이 적었다. 그래서 영조는 각 당파의 온건 그룹을 포섭해서 탕평의 우군으로 삼았다. 각 당파의 온건파들이 탕평 정치를 위해 일종의 대연정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드라마 속 김택 같은 노론당 강경파가 최고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탕평정치 시대에도 가장 강력한 세력은 노론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보관된 비각.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있다. 사진은 성균관대학교 정문이 바뀌기 전에 찍은 것이다.
 영조가 세운 탕평비가 보관된 비각.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있다. 사진은 성균관대학교 정문이 바뀌기 전에 찍은 것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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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탕평정치 시대에도 가장 강력한 세력은 여전히 노론당이었다. 이들은 재력이나 사회적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조선 최강이었다. 영조를 지지하는 대연정 세력 내부에서도 노론당 온건파가 다수였다.

하지만 탕평을 기조로 국가가 운영되는 상황인지라, 노론당의 이해관계가 국가정책으로 연결되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이 시대 보수파인 노론당의 권력은 노무현 정권 하의 보수파보다는 강하지만 이명박 정권 하의 보수파보다는 약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영조가 즉위한 지 26년 뒤인 175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정국 주도 세력에 변화가 생겼다. 왕실과 혼인 관계로 연결된 인물들 혹은 이런 이들과 연계된 인물들이 영조의 탕평을 떠받치는 최강 집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영조의 사돈인 홍봉한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혼인으로 연결된 인물들을 정권 핵심부에 앉힐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영조의 권력이 이전보다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현재, 드라마 <비밀의 문>은 영조 30년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점은 영조의 인척 그룹이 탕평 정치의 기치 하에 정국을 주도하던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는 김택 같은 인물이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다.

김택이 등장하기 힘들었음을 보여주는 근거

이처럼 영조 즉위 이전과 즉위 이후의 두 시기에 계속해서 정권을 장악한 노론당 인사는 없었다. 즉위 전에 영조를 지지한 노론당 지도자들은 영조가 왕이 되기도 전에 사형을 당했고, 영조가 즉위한 후에는 영조의 견제 때문에 강력한 노론당 인사가 등장하기 힘들었다.  

굳이 이런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김택 같은 인물이 등장하기 힘들었음을 보여줄 만한 상식적인 근거가 있다. 만약 그런 인물이 영조의 약점을 이용해서 영조를 쥐고 흔들었다면, 영조는 노론당의 이익을 침해하는 탕평정치를 펼 수 없었을 것이다. 영조를 압박해서 노론당의 이익을 관철시킬 만한 인물이 있었다면, 탕평정치는 애당초 시도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조가 탕평을 표방한 이후에는, 상소문에서 당파의 명칭을 거론하거나 임금이 묻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하가 먼저 당파를 언급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것은 영조의 탕평정치가 비록 완벽하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힘을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노론당이 노골적으로 자기편의 이익을 내세우기 힘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택 같은 인물은 그저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인물이다. 영조시대에 북악산에 산울림을 일으킬 만한 노론당 정치인은 출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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