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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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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주석

충북 음성에서 차를 타고 산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기괴한 로봇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정크아트 갤러리'가 눈에 띈다. '국내 정크 아티스트 1호' 오대호 작가의 갤러리다. 버려진 기계 부속품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오 작가와 지난 27일 만나 예술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한민국 1호 정크 아티스트, 오대호

- 정크 아트라니 생소하네요.
"정크 아트가 사회 고발적 의미가 있었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군수물자가 필요 없어지니까 '전쟁의 폐해를 고발한다'는 주제를 많이 담곤 했었으니까. 그런데 정크 아트를 하는 작가 중에 '내가 정크 아티스트요' 하는 작가들이 없어. 그냥 조각 일부라고 말하지. 소재가 고물이기 때문에 평가를 절하 하는 거지. 근데 이게 정크 아트요 내놓고 시작한 게 내가 세계 최초일 거야. '이것이 정크 아트다... 내 소재는 고물이다'라고 말이야."

- 정크 아트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한 20년 전에 재활용 업체를 운영했어. 그런데 IMF를 맞으면서 문을 닫아야 했지. 이제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고민했어. 낚시터에서 허송세월했지. 그러다가 한 잡지를 우연히 봤어. 빌딩 앞에 쓰레기로 만든 거대한 상이 서 있었는데 그게 25억이라고 하더라고. '이게 원가가 얼마나 된다고 25억이나 되는 거야?' 싶더라고. 난 예술에 관심이 없었으니, 모를 때 했던 생각이지. 그렇게 시작한 이 일이 평생 직업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우리나라에 없던 분야였잖아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난 예술을 전공했던 사람이 아니야. 기계공학을 전공했지.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게 기분 좋더라고. 일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가족들에게 미안했어. 2년 가까이 수입이 없었으니까. 당시 대학에 다니던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게 모은 돈을 봉투에 담아 '재료비로 쓰라'며 내밀더라고.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몰라. '보란 듯이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어."

- '정크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은 어떻게 얻으신 거예요?
"충북 음성군에서 축사를 빌려 작업을 했어.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게 기계를 다루는 일이다 보니 동네에서 기계 수리하러 많이 왔었지. 그러다 보니 동네에 소문이 났던 모양이야. '우리 동네에 엉뚱한 짓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우연하게 동네 사람의 조카 중에 방송국 PD가 있었나 봐. 공중파에서 취재를 나왔어. 15분 방송 나가는데 3박 4일간 촬영을 하더라고.

그 방송이 나가고 나서 처음 매출이 있었어. 2년 만이었어. 사업할 때에 비하면 보잘 것없는 수입이었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 돈을 쓰지를 못하겠더라고. 이후에 크고 작은 행사에서 작품 의뢰가 계속 들어왔어. 의뢰가 이어지다 보니 작업량이 한참 부족했지. 사람을 써가면서 일해도 일손이 부족하더라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지."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 제일 선호하는 소재는 어떤 것일까요?
"크게 만들 때는 자동차 부속을, 작게 만들 때는 오토바이 부속을 선호하는 편이야. 농기계 부속도 좋고. 공장에서 불량품으로 버려지는 것들을 쓰는 편이야. 폐차장이나 고물상을 많이 다니지. 하도 다니다 보니까 업자들이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알더라고. 여러 부품을 모아서 작업 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고철로 다시 팔아. 참 속 편한 작업이지."

- 금속이라는 소재가 가공이 쉽지 않잖아요.
"금속이 어떻게 보면 가공이 제일 쉬워. 알루미늄은 불에 달구면 다 구부려지고, 산소용접이나 기계로 자르면 다 잘리잖아. 어떻게 보면 응답성이 무척 빨라. 다른 작가들이 흉상 하나를 만들려면, 흙으로 대상을 뜬 다음에 실리콘으로 가짜를 만들고… 절차가 복잡하지. 그에 비해 금속은 응답성이 빨라서 내가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야.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키기 좋다는 뜻이야."

- 이런 것이 참 재밌어요. 무가치한 소재에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요.
"용광로에 들어갈 금속이 작품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재밌어. 오래된 기계 부속 같은 고철은 타임캡슐의 의미도 있을 거야. 소재 자체가 세월을 품고 있잖아. 작품에 세월이 녹아 들어가는 셈이지. 이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내 나름의 철학이 생겼어. 난 젊을 때부터 사업을 했었어. 돈도 적잖게 벌고, 나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돌이켜보니 목표가 없는 삶이었던 거야. 그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싶었어.

풍요로워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던 거야.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고. 정크 아트를 하면서 결핍을 경험하게 됐어. 2년간 아무 수입도 없었고, 집안 반대도 심했고 미쳤느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 나 스스로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도 있었어. 오기가 생기더라고. 쓰레기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 나라는 쓰레기를 잘 이어 붙이면 완성품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지. '나'라는 사람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세상에 무가치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어떻게 바라보는가'하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야."

정크 아티스트, 그 너머로

- '성공한 예술가'라는 수식어, 어떠세요?
"남들은 늘 그렇게 얘기해. 하기사 객관적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정크 아트 분야에서는 작업 수도 제일 많으니까. 그런데 처음이랑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내일은 어떤 소재를 어떻게 작업할까 고민하지. 항상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 속에 있는 거지. 나와의 싸움이지 뭐. 싸우다 보면 나도 이제 기술이 느는 거지. 속도도 빨라지고, 더 세련돼지고. 시간이 필요한 거지. 결과만 놓고 보면 좋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보는 면은 딱 한 면뿐이잖아. 본질은 아예 다른 것일 수 있고. 거기에 신경 쓸 필요도, 휘둘릴 필요도 없지."

- 그러면,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세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이뤘어.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이었어. 그런데 충북 보은에 '펀파크'가 들어서면서 내 갤러리가 그 안에 들어갔어. 방문객이 일 년에 10만 명 가량 되니까 어마어마한 거지. 그런데 이것도 잠깐이더라고. 준비하고 계획하는 동안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았는데 몇 달 가지 않더라. 또 다른 목표를 세웠어.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처럼 전 세계인이 다 알 만한 대작 말이야. 지금도 교과서에 내 작품 5점이 실렸다던데, 꿈을 좀 크게 가져보려고."

- 대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우리나라 교육이 참 문제야.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을 갔더니 졸업 후에 취업이라는 관문이 또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우리는 늘 남들이 가는 길이 최고인 줄 알고 살아.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어 하지. 1등만 알아주는 대한민국에서 남들 뒤를 따라가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지. 거기서 경쟁하는 것보다 나만의 길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

용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더 좋잖아?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찬 우리 삶에서 이런 소리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어. 하지만 생각보다 인생은 짧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찾아서 해도 한없이 짧은 인생, 구태여 남들 뒤만 쫓아 죽으라 달릴 이유가 없잖아. 청춘들에게 이런 얘기 꼭 해주고 싶었어."

인터뷰가 끝난 후 인사를 하고 돌아섰는데, "한 잔 하고 가"라며 술을 권했다. 오대호 작가와 감자탕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기울였다. 권위 있는 사람이 권위 의식을 내려놓았을 때 얼마나 편안할 수 있는가 생각해봤다. '세상에 무가치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그의 말이 한 발짝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2014.11.3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제 548호에 실리는 글입니다.



태그:#정크, #홍순오, #오대호, #아티스트,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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