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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입니다. 시민단체에 가입한 경험도 없고, 부끄럽지만 사회 현안과 연관된 집회에 참가해본 적도 없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제게 변화가 닥쳐온 건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뒤입니다.

 

16일, 17일, 18일...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며 제발 누구라도 살아만 나오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신이라도 무사히 다 인양되길 바라며 거의 한 달 동안을 눈물로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울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확고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홍대 앞에서 진행된 침묵행진에 나가봤습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의 눈에 띌까 마스크 넓게 펴서 눈만 빼고 다 가린 뒤, 제일 마지막 행렬에 속해 천천히 걸었습니다. 걷다보니 이제야 행동을 하게 된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또 제가 40대 어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정말 미안해졌습니다.

 

8월 중순부터는 광화문으로 향했습니다만, 역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한 시간쯤 있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서성이다보니, 리본 만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 30분쯤 망설이다가 "리본 자르는 것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리본을 만들던 분들은 자리를 내주셨고, 저는 7시간 꼬박 아무 말 없이 리본 만들 재료를 자르고 모양 만들기를 반복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전해진 노란리본, 기뻤습니다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광화문 리본공작소에서의 일이 익숙해질 무렵, 미국 뉴욕에서 세월호 관련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때 '여기에 있는 이 많은 리본들... 뉴욕 사람들이 달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NS를 수소문해 뉴욕 집회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의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다음날부터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의미를 담고 싶어서 교민들과 유가족들만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리본을 만들었고,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보냈습니다.

 

미국에 리본을 보내고 나니, 캐나다에서도 집회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집회날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일. 지금 만들어서 보낼 수는 없고, 1%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해보자는 생각에 캐나다 집회 주최측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혹시 집회 참석하는 분의 가족이나 지인 중에 집회 전에 캐나다를 방문하는 분이 계시다면, 리본을 좀 전달해달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캐나다를 가신다는 분이 계셨고, 더욱 더 다행히 그분은 저희 집과 40분 떨어진 거리에 살고 계셨습니다. 1박 2일 동안 꼬박 리본을 만들어서 풍선과 함께 지인 댁으로 갔다드렸고, 다음날 그분들은 캐나다를 방문하셨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노란 리본을 보낸 일은 평범한 주부인 제게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해 준 일입니다. 노란리본 목걸이를 목에 건 채 집회에 참석한 미국 교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영상으로 만들어져, 세월호 200일을 맞는 11월 1일 서울 청계광장 세월호 추모대회 때 상영될 예정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할 때 꼭 거창한 것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아무런 경험이 없어도 됩니다. 우리보다 먼저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면 됩니다. 저처럼 망설이고 주저했던 분들 광화문으로 오세요. 그리고 함께하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주세요. 


태그:#세월호, #노란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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