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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진보해왔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에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웠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듯했다. 그러나 견고하지 않아서였을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정권의 언론 장악이 눈에 띄었다. 물론 민주화 이후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꾸준히 진행됐다. 그러나 '퇴행'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1970~80년대로 되돌려놓았다. 해직자는 10명이 넘고 징계자는 수백 명에 이른다.

가장 먼저 해고자가 발생한 곳은 보도전문 채널인 YTN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 출신이 낙하산으로 오자 YTN 노조원들은 극열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권석재 기자 등 6명이 2008년 10월 6일 해고됐다. 그 후 6년이 지났다. 그 6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지난 10월 29일 목동방송회관에서 조승호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명박 정부가 YTN을 제일 처음 건드린 이유

 조승호 YTN 해직기자
 조승호 YTN 해직기자
ⓒ 방송기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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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로 해직 6년을 맞았어요. 6년을 일수로 계산하니 2190일이더라고요. 그리고도 20여일이 지나서 오늘(10월 29일)이 2215일이죠. 적지 않은 시간인데 지난 시간을 술회하면 어떠세요?
"군대 제대한 사람들이 '하루하루는 힘들지만 제대할 땐 시간이 훌쩍 지난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6년이란 시간이 하루하루는 길고 고통스러운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까 6년이 금세 지난 것 같아요. 제가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고, 다시 같은 상황이 생겨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다만 가장으로서 '인생의 황금기'라는 40대에 일터에서 6년간 쫓겨났다는 것, 그로 인해 아이들에게 출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아쉬움이 남아요."

- 6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처음 1년은 회사에 나가서 노조 사무실이나 근처 카페에서 노조원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2010년엔 언론노조에서 민주언론 실천위원장을 했어요. 다음해에 2심 판결이 났는데 '해고는 정당했다'로 나와 '멘붕'에 빠졌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집에서 공부하면서 은둔 생활 비슷하게 했었어요. 그러다 올해는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는데 원인이 있을까요?
"알 수 없죠. 보도된 기사를 보면 대법원 쪽에서는 지금도 심리중이라는 게 답변이고 지금 3년 6개월이 지났어요. 그래서 추측하기론 대법원이 자기들 손에 피를 안 묻히려고 회피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이대로 지나가면 정치적으로 해결이 되든 안 되든 자기들이 판결을 내리지 않아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방기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 2008년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해 투쟁하시다가 해직되었는데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을까요?
"2003년 참여정부 때 대선 캠프에서 고문을 지낸 서동구씨를 KBS사장에 임명했어요. 그러나 노동조합, 언론·시민 단체들은 물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도 '대선 캠프 고문을 지낸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이 돼서는 방송의 독립성이 지켜질 수 없다'는 논리로 반대했죠. 개인적으로 저는 당시 한나라당 주장에 동의했고 지금도 마친가지예요.

그러나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여당이 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YTN 사장에 임명했어요. 저도 당연히 2003년의 논리로 반대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바뀌긴 했지만 불과 5년 전에 자기들이 한 게 있으니까 구본홍씨 임명을 철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경 대응했죠. 그래서 6명이 해직되고 33명이 중징계를 받으면서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입성한 거죠. 큰 맥락에서 보면 YTN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반대한 것인데 그 이유로 해직되었죠.  

낙하산 사장을 강력하게 막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YTN 밖은 물론 안에도 없었어요. 노조가 경험도 없었고 투쟁력도 없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YTN 앞을 행진하면서 "YTN 불꺼라"를 외쳤어요. 당시 근무자가 아니면 몰랐겠지만 어느 노조원이 동영상을 찍어서 노조게시판에 올렸어요.

이것을 본 노조원들은 '우리가 시민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고 있는 줄 몰랐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어요. 구본홍씨 사장설이 파다했을 때여서 시민들은 '그렇게 되면 YTN의 공정성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구본홍씨를 막지 않으면 언론으로서의 공신력을 잃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열심히 막으려고 했죠.

결국 해직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YTN 불꺼라"고 외친 시민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동영상을 찍어 올린 노조원, 언론인으로서 쪽팔리지 않으려고 낙하산 사장 반대에 열심히 나섰던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응원해 주신 시민들 모두 때문에 저희가 깨우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 만약 그때 시민들이 "YTN 불꺼라"고 하지 않았거나, 노조원이 동영상을 안 올렸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네요.
"다른 노조원들은 모르겠지만 최소 저같은 경우,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긴 했겠지만 피흘리면서까지 싸우진 않았을 것 같아요."

-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이 YTN부터 시작했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제 생각엔 YTN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목표는 공영방송인데 거기는 역사도 있고 노조가 힘도 있으니까, 그동안 언론 투쟁했던 동력이 있잖아요. 공영방송을 먼저 장악하기엔 부담스럽고 해서 만만한 YTN을 먼저 장악한 것 같아요. 왜냐면 저희는 역사도 짧고 노조가 그런 투쟁을 한 경험도 없어요. 스스로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YTN을 먼저 장악하고 다음에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러나 예상 외로 저항이 심해서 저희에게 발목 잡혀서 공영방송이 늦어졌죠."

- 대안언론이 많이 생겨났잖아요. 그곳애서 언론활동을 하는 동료도 있는데 그분들을 보면 어떠세요?
"YTN 해직자 가운데는 노종면 기자가 지금 <국민TV>에서 일을 하고, 권석재·정유신 기자가 <뉴스타파>에서 일을 해요. 동료들이 매체는 다르지만 기자로서 활동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정유신 기자가 며칠 전에 통일언론상 대상 수상했어요. 대안 언론에 가서도 잘하기 때문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YTN 기자로서가 아니라 <뉴스타파>라는 점 그리고 보도도 YTN이 아니라서 아쉽죠. 그러나 지금과 같은 YTN이라면 국정원 사건을 기자가 취재했어도 보도가 나갈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뉴스타파>에서 의미있는 기사를 발굴한 게 다행이라 생각해요."

- 대안언론에서 제의는 없었나요?
"있었어요. 2심판결 이후였어요. '해고는 정당하다'는 사법부 판결이 마치 저에게 먹고 살 자격이 없다고 한 거 같았어요. 해고는 살인이라잖아요. 그래서 기자를 하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제의를 거절했어요."

- MBC에서 해직된 박성제 기자는 MBC를 고향으로 생각하던데, 조 기자께 YTN는 무엇인가요?
"제가 기자생활을 한 뒤 연합통신에 잠시 있었고, 1994년부터 YTN에 있었으니까 기자생활의 전부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신방과에 진학했을 때부터 기자 외엔 생각을 안 했어요. 기자가 좋다기보다는 신방과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자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죠. YTN은 제 인생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YTN이 아닌 다른 언론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약간 꺼려지는 부분도 있어요. YTN으로 복직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죠."

- 지난해 해직기자들이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등 국토순례를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처음부터 국토순례를 기획했던 것은 아니고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고민을 하다 결정된 것이에요. YTN 사태 당시 제도권 언론의 왜곡보도에 YTN 조합원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거든요. 그때 생각한 게 '언론인인 우리조차 이럴 정도라면 과연 힘없는 국민들, 힘없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외면을 당하고, 왜곡 보도를 당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곳에 직접 가서 반성도 하고 느끼자'고 해서 갔어요.

솔직히 저 기자생활할 때 현장 안 가고 기사 쓸 때 많았어요. 그러나 4대강, 강정마을, 쌍용차, 밀양 송전탑 등등 현장을 직접 보니 다르더라고요. 반성을 했죠. '기자들은 무조건 현장을 가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게 됐죠. 제가 마이크를 다시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잡게 된다면 이런 이슈 때 반드시 현장을 직접 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아마도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맞아요.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하잖아요. 내가 87학번인데 '언론투쟁사' 이런 것들 공부할 때 동아투위에 관해서도 공부했어요. 1975년에 100명 이상 해직을 당하셨잖아요. 그 때 느낌이 역사책 보는 독립운동처럼 아득히 지난 일로 느껴졌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불과 1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죠. 제가 해직된 지 6년이 지났어요. 그럼 누군가 나처럼 언론 투쟁사를 공부할 때 아득한 옛날일로 느껴질 시간이 6년 밖에 안 남았고, 6년 지나면 우리도 잊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해직 2000일이다', '해직 몇 주년이다' 이런 기사가 나올 때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가 지나면 잊히는 느낌이에요.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서운하지는 않아요. 제 친구들조차도 가끔 "너 요즘 어디 출입하냐?"고 묻곤 해요. 아직 복직 안 됐다고 하면 "다 복직하지 않았어?"라고 되묻죠. 친구조차 일반인들에게 잊혀지는 게 서운한 일만은 아니죠. 그리고 저에겐 해직이 큰일이지만 저희보다 더 억울하고 원통한 분들이 많잖아요. 거기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요."

'기레기' 욕 먹으면 괴로워 하는 사람들, 따로 있다

- 그 외에 무엇이 힘든가요?
"해결에 대한 전망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주식시장에 악재보다 더 나쁜 건 불투명한 것이다'란 말이 있어요. 가령 악재가 있으면, 이로 인해 얼마만큼 주식이 떨어질까 예측할 수 있고 또 다음엔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근데 저희는 예측이 불가능해요. 가장 걱정은 해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단 거예요. 그건 곧 사회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할 시기에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죠."

- 해직자들 중엔 아픈 가족도 있다고 들었어요.
"해직자 6명의 부모님이 해직 당시에는 살아계셨어요. 그런데 6년 동안 3명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죠. 해직이 부모님께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죄송스러웠어요. 다들 곧 복직할 거라고 했을 거예요. 부모님도 복직되길 기다리셨겠죠. 근데 3분이 아들 복직을 못 보고 돌아가셨고, 다른 3분의 부모님들도 거의 80살 가까이 되셨어요. 돌아가시기전에 복직이 안 되면 자식으로는서 엄청난 불효일 거라는 걱정이 있어요."

-  지난 8일 동아투위 성유보 선생이 별세하셨잖아요. YTN 해직 2000일 즈음에 성유보 선생이 <기자협회보>에 YTN 해직 기작들이 복직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글을 기고하셨더라고요. 해직기자로 선배의 부고는 일반기자들과 다를 것 같아요.
"성 선생이 YTN 해직기자들에게 '동아투위랑 시작은 비슷하지만, 끝은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즉 그 분들은 40년 동안 복직을 못했으나 저희는 복직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죠. 저희가 집회할 때 몸이 안 좋으셨는데 많이 오셨어요. 그러나 끝내 복직 못하고 돌아가신 게 안타까워요.

동아투위 선배들의 복직을 바라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분들은 언론인의 정도를 걸으셨던 분들이라는 당위성도 있지만, 복직함으로써 '이 땅에 언론자유를 위해 노력한 언론인들은 반드시 복직된다'는 선례를 남겨주셨으면 했어요. 그런데도 40년째 되지 않고 있고, 벌써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하니까 마음이 착찹하죠.

제가 해직되고 동아투위 선배들을 많이 뵈었어요. 이 분들을 존경하면서도 가슴이 아파요.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 분들을 보면 언론 선배라는 생각보다 재야인사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야라는 게 이분들이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해직 이후에도 중앙정보부로부터 사찰을 받고 취직도 막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분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 분들의 인생 여정이 그 분들을 재야인사로 만들었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언론인은 권력에 들어가서도 안 되지만, 재야와도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동아투위 선배들을 존경하지만 그 분들의 길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요. 언론인의 정도를 지켰는데 어쩌다가 투사처럼 되었을까요. 며칠 전에 뵈었을 때 '우리도 투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더 가슴 아팠죠. 그러나 한 인간으로 보면 정도와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오셨잖아요. 그런 점은 제가 본받고 싶어요."

- 지난 9월 불법 사찰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했는데요.
"판결 요지를 보면 '국가기관이 사찰은 했지만, 문제는 없다'는 거예요. 국가 공무원이 기업인 YTN을 들락거리며 기자들 동향을 캐고, 문건을 보면서 언론사 사장 교체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고, 심지어 남대문 경찰서에서 수사를 할 때 사찰팀이 경찰서장을 직접 만나 경찰 수사에까지 개입했어요. 그런데 어째서 이것이 문제가 안 되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요. 제가 법을 공부하지 않아서 문외한이지만 법이란 상식의 총합으로 알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요. 자칫하면 앞으로 국가 기관이 민간인을 사찰해도 거기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판결이 될 수 있죠. 2심에서 제대로 된다면 뒤집힐 수 있고 그게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 KBS새노조가 해직기자를 돕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잖아요. 같은 동료라지만 회사가 다르기 때문에 더 고마울 것 같아요.
"당연히 고맙죠. KBS 새노조 위원장이 노조원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지원할 수 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을 때 고맙더라고요. 제정적인 지원 때문이 아니라 저희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때문이죠. 동료애는 회사 안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자들끼리는 경쟁 상대잖아요. 그런데도 도와주려고 하는 게 고마웠어요.

또 하나 KBS 노조원들이 타사 해직자들을 도와주는 건 물론 동료애가 가장 크겠지만, 동시에 이명박 정부 이후 언론 상황을 봤을 때 공정방송의 문제가 어느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권력층에서는 방송사를 장악하기 위해 종합적인 작전을 펴는데 언론인들이 개별 사업장으로 대응하다간 깨질 수밖에 없죠. 공정방송은 어느 한 회사의 문제는 아니고 정권의 장악 노력에 맞춰 언론인들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스스로 자각한 것 같았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욕을 먹고 있는데 욕을 먹을 만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분명히 기자들을 구별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도 방송사 내부에서는 제대로 보도하려는 기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요. 문제는 그 기자들이 안에서 열심히 공정하게 보도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노력이 사측에 의해 좌절되고 있는 거죠.

해직자가 생기고 징계가 생기거나 지방으로 쫓겨나가는 일이 많잖아요. MBC가 대표적이죠. 사실 국민들이 '기레기'라는 욕을 할 대상은 '기레기'라는 욕을 들어도 신경도 안 써요. 그러나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기자들은 밖에서 '기레기'라고 욕하는 것에 고민하고 자괴감을 느껴요. 그런 기자들이 언론을 떠날 때 언론사는 진짜 기레기들로 채워질 거예요.

국민들이 원하는 결과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권력에 야합하는 기자는 '기레기'라고 욕을 해야 겠지만 그 안에서 핍박 받으면서도 제대로 보도하려는 기자들만큼은 분리해서 격려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들은 지금도 간부와 피터지게 싸워서 한 줄이라도 내보내려고 하거든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l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승호, #YTN,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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