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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노인문화예술제 합주공연
▲ 청노아코디언 우쿨렐레공연 충북노인문화예술제 합주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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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성영화제 초청 오프닝공연
 청주여성영화제 초청 오프닝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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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점심 시간에 글을 쓴다. 아니 글 자체를 아주 오랜만에 쓴다.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은행잎이 절정이다. 노오란 은행잎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나 황금옷을 입었어요' ' 난 희망 풍선이에요' '세월호 잊어 먹지 말아요'하는 듯하다. 사무실이 삭막해서 집 베란다에 있던 허브 몇 개와 연산홍과 대죽을 갖다 놓았는데 그 푸른 잎과 노란 잎이 조화가 돼 눈을 자꾸 창가로 돌리게 된다.

최근까지 공연뿐만 아니라 기관 평가와 여러 행사도 겹쳐서 집에 가면 고꾸라지듯 엎어졌다. 내가 함께 하는 청주의 청노합창단은 최근 충북 대표로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2년 전 공연에 이어 두번째다.

비록 입상하진 못했지만 2년 전 국립극장 무대에서 '다시 이곳에서 노래 부를 수 있을까' 하시던 투병 어르신과 팔순이 넘은 고령 어르신 들은 무척 기뻐하셨다. 전국 32개 팀 중에서 예선을 거쳐 17개팀이 경연을 펼쳤다. 청노합창단 어르신들은 노래하고 내려오면서 무척 홀가분하다고 하셨다. 2년 전처럼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연습도 할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후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공연을 했을 때도 무척 즐거워하셨다. 지휘자가 공연 일정이 겹쳐 못 오게 됐는데 한 중후한 남자 지휘자님이 오셔서 재능기부로 며칠 동안 헌신적으로 해주셨다.

아코디언과 우쿨렐레 수상후 신부님 및 일부 단원들과 함께
▲ 공연 직후 아코디언과 우쿨렐레 수상후 신부님 및 일부 단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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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의 우리 합창단뿐만 아니라 크로마하프 반도 청주와 청원이 통합되어 열린 축제 한마당에서 공연하고 우수상을 받았다. 우쿨렐레반은 청주여성영화제의 오프닝에 초청돼 공연하고 왔다. 그런데 공연 전에 고령의 할머니 두 분이 공연 안내를 위한 인사 문제로 말하다 말꼬리를 물고 소녀처럼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한 분이 토라져 그냥 간다고 해서 놀라 붙잡기도 했다. 한 분은 갑상선암이신데 사소한 말에도 예민해지시고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오해를 받아 짜증이 나신 것 같았다.

그리고 간주와 전주 없이 하는 독자적인 우쿨렐레 공연은 처음이라 리허설 때는 박자가 안 맞아 사회자가 긴장하기도 했다. 어떤 높은 사람은 "누가 이 팀을 불렀어? 인솔자(나)가 귀가 안 들리다니 이해가 안 가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을 흥겹게 잘 마치자 주최 측도 자리를 빛내주어 감사하다고 나중에 인사했다. 나아가 아코디언과 우쿨렐레와 기타는 '나성에 가면'과 '과꽃' 합주를 해서 충북노인문화예술제에서 우수상을 수상, 감격스러운 포옹을 했다.

8년 전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내가 음악반을 만들려고 했을 때는 악기도, 강사도 없었다. 처음에는 시작한 사람들도 악기 연주가 생각보다 어렵자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진심을 담은 꾸준함이 듯이 나는 꾸준히 노력했다.

악기들은 외부 펀드 사업을 공모로 하나씩 하나씩 준비했다. 강사들은 나의 수십 년 인맥을 통해 지역에서 중견예술가로 자리잡은 강사 풀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재능 기부를 받아 성악, 악기, 작곡 등의 다양한 강사들을 확보했다. 보수를 못 드리긴 했지만 전시회를 하면 작품을 하나씩 드리면서 노고에 보답했다.

이 가을, 나는 많이 뿌듯하다. 마음은 뿌듯한데 최근에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많이 굳었다. 거기에다 바깥 먼지를 많이 마셔 기침이 잦아들고 있다. 오래도록 기침이 떠나지 않아 문하생을 비롯한 지인들이 집에서 키운 약도라지를 비롯해 한약을 보내주기도 했다.

뿌듯한 마음처럼 내 몸은 가뿐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소리의 세상을 넘어 나는 아름다운 빛 속에서 살아간다. 마치 황무지에 돌을 골라내 온갖 씨를 뿌리고 고구마와 늙은 호박을 비롯해 다양한 유기농작물을 수확한 농부의 마음처럼. 8년 전에는 정말 못할 것 같았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방울이 돌을 뚫어 구멍을 만든다는 말처럼 조금씩 구멍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와주는 분들도 점점 늘어난다. 이러한 점들이 눈에 드러나는 어떤 대회나 공연의 결실보다 내 마음을 뿌듯하게 한다.


태그:#청노음악단, #이영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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