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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인 J양은 과거 수능시험 때 1교시 언어영역, 2교시 수리영역을 대충 보고 3교시 외국어영역 시험시간엔 아예 시험을 보지 않고 퇴실해 버렸다. 당시 J양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수능과 상관없이 수시로 최종 합격한 상태였다.

수능과 상관 없이 합격이 결정된 J양이 굳이 수능시험에 응시한 이유는 평생 한 번뿐일 수 있는 수능시험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나 1교시 언어영역 문제를 막상 받고 보니 긴장감이 떨어져 집중할 수 없었고 수리 문제는 더욱 집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3교시 외국어영역은 시험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J양은 "솔직히 수시에 합격한 친구들 사이에선 수능시험을 대충 보자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어요. 정시나 수시최저기준을 맞춰야 하는 친구들을 위해 밑바닥을 깔아 주자라는 일종의 동료의식이 있었던 것이죠. 친구들도 농담 삼아 부탁을 했고 선생님들도 직접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수시합격생들도 수능시험에 응시하라고 권하기도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주부터 몇몇 대학들이 수시 합격자 발표를 앞당겨 하고 있다. 아직 합격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한 여학생에게 수능시험 응시여부를 물어보았다.

"당연히 볼 것입니다. 지난 12년간 수능을 위해 달려 왔는데 수능시험 순간을 경험해야죠! 그런데 시험에 100% 집중은 못할 것 같아요. 앞으로 남은 기간 수능 공부를 아예 안할 것 같기도 하구요. 지금은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풀 생각이지만 막상 수능 당일에 어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능 응시표를 받아야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시험장엔 꼭 갈 것입니다."

올해 수능면제된 수시합격생 숫자 급증할 듯

박근혜 정부의 대입 간소화 정책과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 지원사업에 맞물려 많은 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 기준을 삭제했다. 학생들에겐 학업, 학부모들에겐 사교육비 부담감을 주는 수능시험에서 일부 학생들이라도 해방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특히 과거 서울 상위권 대학들이 수시에 수능최저 기준을 적용해 수시에 합격한 일부 학생들이 수능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해 대거 불합격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엔 수시에서 많은 서울권 대학들이 수능최저기준을 없앴다.

10월 31일 수시 최종합격자 발표를 마치는 한양대학교는 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 논술, 특기자 등 약 2100명의 수시합격자들 모두에게 수능을 면제했다. 이화여대 또한 지역우수인재, 미술, 특기자 전형 등 수능최저학력기준면제 합격자 700명을 일정을 앞당겨 발표하였다. 중앙대는 특기자 177명에게 수능최저기준을 면제했고 숙명여대는 수능면제 합격자 721명을 2014년 11월 13일 수능 날보다 앞선 11월 8일 발표할 예정이다. 가천대 또한 11월 7일 2400명에 가까운 수능면제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외에도 지역의 많은 대학들이 이미 수능면제 합격자를 발표하거나 수능 전에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해까지 일부 대학에서 수능면제를 해준 것에 비해 올해 수능면제 합격자들이 대폭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수능등급에 영향 미칠 수 있나?

만약 다수의 수능면제 합격자들이 수능을 대충 볼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수능등급은 1등급 상위 4%, 2등급 11%, 3등급 23%, 4등급 40%, 5등급 60%, 6등급 77%, 8등급 96%, 9등급 100% 순으로 나뉜다. 이렇게 각 등급 간 범위는 적게는 4%에서 많게는 20%까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각 등급 간 경계에 있는 학생들은 아주 적은 차이에 의해 서로 다른 등급을 받을 수 있어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평소 모의고사 1등급인 수시합격생이 실제 수능에서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다면 평소 2등급 최상위권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학생이 1등급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럴 경우 각 등급 중간 정도 있는 학생들은 실제 등급 변동이 없는 반면 하위등급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자신과 동일한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수능 이후로 수시면제 합격자 발표 늦춘다면

평소 수험생들과 자주 만나는 나는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곤 한다. 이에 대교협 관계자에게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교협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수시 합격생들이 수능을 대충 본다고 해도 특정 친구를 위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수시합격자 발표를 수능 이후로 하면 어떻겠냐는 기자의 의견에 합격자 발표를 서두르는 것은 초조하게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또 합격자를 늦추면 수능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수시합격자의 실제 수능점수에 대한 통계가 이루어졌는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통계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관계자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수능문제 출제를 위한 합숙 때문에 수능 이후까진 연락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14학년도 수능 영역별 응시자 수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2013년 수능시험에서 1교시 언어영역 응시 원서 접수자는 64만9762명 이었고 실제 응시자는 60만6074명으로 약 4만4천 명이 결시했다. 그러나 3교시 외국어영역에서는 원서 접수자 64만8048명 중 59만6478명이 실제 시험에 응시해 결시자가 5만2천 명으로 언어영역 응시자보다 무려 8천 명이나 늘었다. 이런 현상은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매년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사교육비 감소를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수능 최저기준 면제는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되는 시험을 보게 되는 수험생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생길 수도 있는 불합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관계자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태그:#2014년 수능시험, #수능최저기준면제합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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