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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71세 되던 1856년 10월 7일 쓴 봉은사 <판전>
 추사가 71세 되던 1856년 10월 7일 쓴 봉은사 <판전>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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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굵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우람한 거목입니다. 수형 또한 빼어나게 아름답습니다. 크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재질도 뛰어나게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토록 좋은 나무지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무의 운명은 달라질 것입니다. 나무만 보면 무조건 톱질을 해 동강이를 내고, 도끼질을 해 장작을 만들어 파는 나무꾼을 만나면 제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할지라도 한낱 땔감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나무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나무 자체를 애지중지할 뿐 아니라 무늬로 숨어 있는 나뭇결조차 그대로 잘 살려낼 능력까지 겸비한 장인을 만나게 되면 나무의 운명은 확 달라질 것입니다.

대목을 만나게 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건축물에 소용될 대들보가 돼 천년의 세월을 추앙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섬세한 감각과 꼼꼼한 손놀림을 겸비한 장인을 만나면 멋진 목공예품이 돼 대대손손 전해지며 귀히 여겨지는 값진 보물이 될 것입니다.

더더구나 평생에 걸쳐 그 나무를 기려온 사람, 나무 자체를 귀히 여길 뿐 아니라 능력 또한 대목의 실력과 장인의 심성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나무는 온전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 세세천년의 가치를 더해 갈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질 좋고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라면 평생 동안 추사를 기려온 가헌 최완수는 추사라는 나무에 세세천년의 가치를 더해가는 대목장이자 섬세한 목공예장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초판 펴낸 후 40여년을 더 기려 펴낸 <추사집>

<추사집>(저자 추사 김정희 / 역자 가헌 최완수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0월 2일 / 값 7만 5000원)
 <추사집>(저자 추사 김정희 / 역자 가헌 최완수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0월 2일 / 값 7만 5000원)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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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집>(저자 추사 김정희, 역자 가헌 최완수, 펴낸곳 (주)현암사)은 추사가 나이테처럼 남기고 잔가지처럼 늘였던 글과 그림, 추사의 서간문 등을 모으고 번역해서 엮은 책입니다.  

미당은 <국화 옆에서>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하고 서정을 읊었습니다. 미당이 국화 옆에서 느낀 시정이 이러하다면 이 책을 읽고 난 필자의 소감은 '한 권의 <추사집>을 다시 펴내기 위해 가헌은 40여년 세월을 그렇게 기렸나보다'입니다.

저자가 <추사집>을 세상에 처음 낸 것은 1976년입니다. 그 후 몇 판을 더 찍고 우여곡절이 있어 절판됐습니다. 그 후, 초판을 낸 후 40여 년 동안 다시금 추사를 기려온 저자의 일구월심이 맺은 또 하나의 결실이 이 책 <추사집>입니다.

초판 <추사집>낸 이후 수련한 36년간의 세월, 단순히 학식이라는 말로는 정량할 수 없는 세월의 안목이 보태졌습니다. 번역문과 원문을 일일이 대조하며 수정하고, 원문을 이해하는 데 소화제 역할을 해 줄 주(註)를 훨씬 더 많이 보충하고, 원본 사진을 찾아 도판을 함께 싣고, 본문이나 주에서 언급되는 비문이나 법첩 사진들도 함께 실어 나이테처럼 감추고 있던 추사의 정신, 나뭇결처럼 드리워놓고 있던 추사의 정신적 무늬까지를 온전히 다 드러내려고 애쓰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책은 전체 5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1편 서론(書論), 제2편 화론(畵論), 제3편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 제4편 경학(經學)·불교학(佛敎學), 제5편 서한문(書翰文) 이렇게 구성돼 있어 추사가 남긴 글과 그림에 대한 학문적 고찰은 물론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글까지 자세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추사가 7세 때(1792)에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에 붙였더니 노재상(老宰相)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지나다 보았다. 대대로 좋지 않게 지내는 집안인데도 특별히 찾아 들어가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에게 대문의 글씨를 쓴 사람을 물었다. 일곱 살 먹은 아들이라 하자. "이 아이가 반드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인데 그러면 앞길이 험난할 터이니 붓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다. 만약 문장으로 세상을 울린다면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과연 추사는 글씨로 세상에 크게 이름을 드날리었으며 그의 노년은 매우 비참하였다. 이 이야기는 고종 때 판서를 지냈으며 추사가 말년에 매우 귀여워하여 직접 지도하였던 재종손(再從孫) 김태제(金台濟)(1827∼1906)의 말로 전해진다. - <추사집> 41쪽-

추사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명필가였나 봅니다. 채제공의 말처럼 추사의 노후는 비참하다 할 만큼 귀양과 은거, 출가로 이어지는 우여곡절 많은 삶이었지만 그때, 채제공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붓을 잡은 것이야 말로 후세들에게 명필로 추앙받는 인고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사하면 언뜻 명필가로만 떠올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추사는 과거를 봐 급제해 병조참판까지 지낸 관료였습니다. 금석(金石)·도서(圖書)·시문(詩文)·전예(篆隸)에 대한 학문이 깊을 뿐 아니라 특히 서법(書法)으로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 편견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서가(書家)에서는 먹을 첫째로 삼는다. 대체로 글씨를 쓰는 데 붓을 쓴다는 것은 곧 붓으로 먹을 칠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종이와 벼로는 모두 먹을 도와서 서로 발현(發現) 시키는 데 쓰이게 되는 것이다. 종이가 아니면 먹을 받지 못하고, 벼루가 아니면 먹을 풀지(피어나게 하지)못한다. 먹이 피어난다는 것은 곧 먹의 아름다움이 여러 빛깔로 피어올라서 한 단계에 그치지 않는 것이니, 쇄묵(殺默)(번지지 않는 먹)보다 더 좋다. 먹을 번지지 않게 할 수 있으나 먹을 피어나게 할 수 없는 것은 또한 벼루가 좋지 않은 것이다. -<추사집> 159쪽-

글, 그림, 금석 그리고 경학과 불교학 등에 관한 추사의 학문은 깊고도 날카롭습니다. 꼭 새겨야 할 핵심들을 정확히 짚어가며 평한 감정(鑑定)의 글이기도 하고, 아쉽거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가르침의 한 수이기도 합니다.

너무 섬세하고 감미로워 의아심까지 들게 하는 아름다운 글

한문을 잘 알지 못하는 필자로서 좀 당황스러운 것은 추사의 글이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번역을 이토록 아름답게 한 것인지에 대한 의아심입니다. <추사집>에 실린 서한문들을 보면 너무도 섬세하고 감미롭기까지 합니다.

형제와 친척,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살갑고 섬세할 수가 없습니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솜이불보다도 포근한 감정을 유발 시킵니다. 막내아우 상희에게는 '눈병 때문에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없어서 종이만 꾸겨 놓았군'이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사촌 형님 교희씨께는 '바람결에 깃데 나부끼듯 하고 열 손가락은 망치질하듯 하여 억지로 이렇게 올립니다'라는 표현으로 시린 삶을 드러내고 있으니 무위자연의 질서와 춘하추동의 아름다움이 촉감에 와닿는 감정처럼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아내의 부고를 듣고 쓴 글에서는 애절한 슬픔이 절절하고, 재종손 김태제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는 할아버지로서의 위엄과 자애함이 곳곳에서 듬뿍듬뿍 묻어납니다. 귀양살이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기를 품은 삭풍처럼 손가락이 시리도록 표현하고 있으니 읽는 이의 마음이 저절로 일렁이게 합니다. 

아아, 대체로 사람마다 모두 죽음이 있거늘 홀로 부인만 죽음이 있지 않을 수 있으리오만, 죽을 수 없는데 죽은 까닭으로 죽어서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기이한 원한으로 이어져서 장차 뿜어내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될 터이니 족히 부자夫子(남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기에 착고보다도 더 심하고 산과 바다보다도 더 심함이 있었던가 봅니다.
-<추사집> 506쪽, '부인 예안 이씨가 돌아간 것을 슬퍼하는 글' 중에서-

추사가 임신 24개월 만에 탄생한 전설 속 인물?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자 나름대로 초판에 도판과 사진을 보탰다고는 하지만 추사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추사가 어떤 그림을 보고 이런 평가(?)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점점 더 커지는 데서 생기는 아쉬움입니다. 그림까지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과욕의 아쉬움입니다.

또한 '완당김공소전'에 실린 글, 추사의 탄생과 관련한 내용 중에 '어머니 되시는 유씨부인(兪氏夫人)께서 임신하신 지 24개월이 지나서 낳았는데, 이 해는 정종(正宗) 병오년(丙午年)(정조10년, 1786)이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년~1856년) 탄생신화로 그들을 신격화하거나 영웅화할 필요가 있는 전설 속 인물, 탄생신화에 생물학적인 잣대를 들여대기 시작하면 끝없는 말싸움만 반복될 전설 속 인물이 아닙니다. 역사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실존인물이자 시제로 추앙하고 있는 조상 중 한 분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잉태 후 10개월 만에 출생합니다. 포유동물 중 임신기간이 가장 길다는 코끼리가 22개월쯤 된답니다. 그러함에도 추사가 어머니 태속에서 보낸 기간이 무려 24개월, 생물학적으로는 도대체 설명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다는 것 또한 거둘 수 없는 아쉬움입니다.

<추사집>을 처음 펴내고 출판사 대표가 대물림될 만큼 오랜 세월, 40여 년 동안 다시 기리고 보태서 펴낸 <추사집>은 추사라는 거목을 가헌(최완수)이라는 거장이 다시금 빗어낸 또 하나의 명필이며 다른 추사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추사집>(저자 추사 김정희 / 역자 가헌 최완수 / 펴낸곳 (주)현암사 / 2014년 10월 2일 / 값 7만 5000원)



추사집

김정희 지음, 최완수 옮김, 현암사(2014)


태그:#추사집, #최완수, #현암사, #가헌,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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