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밤 10시 MBC 주말드라마로 찾아온 <전설의 마녀>와, 오랜만에 선을 보인 tvN 아침드라마 <가족의 비밀>은 전혀 다른 방송국, 전혀 다른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임에도 막상 보고 있노라면,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모양새이다.

감옥에 갇힌 네 명의 사연 많은 여자를 추적해 들어가는 <전설의 마녀>와 사랑하는 외동딸을 잃게 된 <가족의 비밀>이 새롭게 미스터리 형식을 가미했음에도, 엄밀히 이들 두 작품 모두 최근 중장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막장' 드라마들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이겠다.

하지만 음험한 비밀과 복수, 치정이 얽힌 '막장'의 공식을 답보하는 이들 드라마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주 시청층을 노리는 흥미 위주의 서사를 넘어, 섬뜩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어 서늘해진다.

결혼 통해 신분상승 했지만...돈 앞에 힘없는 며느리들

 MBC <전설의 마녀>의 문수인(한지혜 분).

MBC <전설의 마녀>의 문수인(한지혜 분). ⓒ MBC


우선, <전설의 마녀>와 <가족의 비밀> 모두 대기업의 며느리가 된 평범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전설의 마녀> 문수인(한지혜 분)은 고아에 지방 대학 출신이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집안에서 축출되기를 마다하지 않겠다던 남편은 신화 그룹의 맏아들 도현(고주원 분)이다.

그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신화그룹의 며느리가 되었지만, 문수인의 처지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집안사람들은 신화그룹 후계자의 며느리인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불철주야 모시는 등,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남편이 죽자 하루아침에 내처지게 된 처지일 뿐이다.

<가족의 비밀>의 한정연(신은경 분)도 다르지 않다. 역시나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집안의 딸인 그녀는 진왕그룹 후계자인 고태성(김승수 분)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녀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새롭게 연 진왕갤러리의 관장이란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식구들은 그녀를 자기 집안사람으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계단을 굴러 다리를 절면서도 시어머니 말 한 마디에 전전긍긍하며, 그녀는 진왕그룹 며느리의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면 재벌가 며느리이면서도 며느리답지 않은 그녀들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두 드라마는 그 어떤 사회적 비판 의식이 뚜렷한 미니시리즈보다도 자본. 즉 '돈'이 지배하는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전설의 마녀>의 신화그룹, <가족의 비밀>의 진왕그룹은 그 자체가 '돈'의 힘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권력이요, 권위이다.

신화그룹의 실세 마태산(박근형 분) 회장의 한 마디라면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 없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두들 그 앞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세계이다. 지금까지 그의 맘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 아들의 결혼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 탐탁지 않은 며느리는 처리 대상이 될 뿐이다.

진왕그룹의 진주란(차화연 분) 회장도 못지않다. 19살 먹은 손녀를, 그녀의 어머니인 한정연을 내치는 조건으로 거래, 법조계 중요 집안의 아들 검사와 약혼하도록 밀어붙일 만큼 집안 내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그룹의 대표인 아들도, 딸도 그녀의 눈빛 한 마디에 좌불안석 전전긍긍할 만큼, 그녀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두 드라마는 이런 재벌 그룹의 며느리가 된 평범한 집안의 딸인 여주인공을 통해 '돈'으로 움직이는 '괴물'같은 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진력한다. '돈'이 전부인 세상, 하지만 결국 '돈'만 있는 세상이다. 인간의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가족의 소중함도, 가족 간의 정도, 도덕도 '돈' 앞에서 무기력한 세상이다.

결혼 제도의 공허함 보여주는 여자들의 홀로서기

 tvN <가족의 비밀>의 한정연(신은경 분).

tvN <가족의 비밀>의 한정연(신은경 분). ⓒ CJ E&M


결혼이란 제도적 장치를 통해 돈의 세계로 성공적으로 입성한 여주인공의 현실은 재벌가의 안주인이란 그럴 듯한 명목과 달리 보잘 것 없다. 그녀들만이 아니다. 재벌가의 딸들과 결혼한 극 중 사위들 역시 천덕꾸러기 처지이다. 그렇게 재벌가 실세의 말 한 마디에 내처질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며느리와 사위를 통해,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고한 '핏줄'과 '신분 상승'의 허명을 드라마들은 통속적으로 폭로한다.

하지만 그런 허명의 관계임에도, 그녀들을 핍박하는 '시월드'의 존재는 강고하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집안이거나 재벌가거나, 우리 집안사람이 아닌 며느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구박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드라마 속에 등장한다. '돈'이 있건 없건, 한 집안의 며느리란 존재는 영원한 우리 집안의 타자요, 화합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비밀>과 <전설의 마녀>에서 여주인공은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예전 드라마들이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 드라마의 결말인 것과 달리, 최근 드라마들은 바로 성공의 그 지점에서 시작하여, 결혼이란 제도의 공허함을 증명한다. 

여기에 드라마 속 남편들은 일조를 마다치 않는다. 뜻밖의 비명횡사를 하거나, 함께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외도를 하거나, 가족 내 실세인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아내의 편을 들 수 없다. '사랑'을 통해 '결혼'이란 제도로 가족을 이루었지만, 남편은 무기력하고 아내의 삶에 실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 '결혼'에 기대할 것이 더더욱 없다.

그나마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결혼'이란 제도에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남은 사랑이라 믿는 그녀의 성실성이나, 혈연으로 이루어진 자식이라는 관계들뿐이다. 그것마저 붕괴된 상황에서의 결혼은 그녀에게 일말의 미련이 남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드라마들은 말한다. 세상에 믿을 건 너 자신 밖에 없다고. 결혼을 통해 얻은 부도, 그럴 듯한 신분도, 결국은 다 '도로 아미타불' 아니냐고, 그래서 드라마들은 '돈'과 '시월드'에 배신당하고, 남편의 도움조차 받지 못한 그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극진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현실에서 역시나 돈이 없어 고달프고, 무기력한 남편에게 지치고, 시월드에 여전히 상처받은 우리네 여성들에게 위로가 된다. 드라마 속 그녀들도 나와 다르지 않는데 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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