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알 수 없는 불면증으로 잠을 설친다. 세상이 어지럽고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핑퐁>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필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막연한 불안감 하나를 떨칠 수 있었다. 책 속의 문장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군중 속의 고독, 다수에 속하지만 그 안의 개인은 외롭다. 결국 세계를 이루는 인류는 하나의 종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의 집합이다. 지배당하는 자와 지배하는 자로 나뉘기 보다는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과 친밀한 자로 구분될 뿐이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상대의 몸집이 커지는 이유가 그러하다.

박민규의 소설은 엉뚱하고 창의적이다. 쉬운 이야기 같지만 숨은 내용을 잘 드러내지 않아 많은 이들이 가벼운 소설로 치부해 버린다. 포커페이스 문학이다. 뜬금없는 묘사와 이야기의 전개는, 파블로 피카소의 정면과 옆면을 동시에 나타내는 얼굴처럼 기괴하게 다가온다.

심리적 거리감과 친밀감의 이분법

핑.
퐁.

박민규는 세계를 탁구로 제시한다. 랠리는 항상 58대 59 또는 3457대 3458처럼 두 지배자 사이에서 한 점 차이로 상대에게 넘어간다. 소설 마지막, 인류의 운명을 제시할 거대한 외계인이 등장한다. 등장인물 '못'과 '모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외계인이 눈앞에 다가올수록 작아지는 모순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크기가 결국 거리에 따른 시각의 차이보다는 심리적 차이임을 나타낸 것이다.

못과 모아이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류 대표 두 명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심리학자 스키너가 탁구를 치도록 훈련시킨 새, 쥐와 탁구 시합을 하게 한다. 인류를 유지할 것인지 '언인스톨'(삭제)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대결이 시작된다. 탁구를 치도록 훈련시킨 쥐나 새에 비해 두 인류 대표는 숙련되지 못했다. 두 인류 대표는 쥐나 새보다 먼저 지친다. 인류가 키워내고 가르친 결과물이 인류의 존망을 선택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행히 쥐와 새는 기력소진으로 게임이 끝나기 전에 죽는다. 못과 모아이는 인류의 언인스톨을 선택한다. 그렇게 현재의 인류는 사라진다. 다음 인류는 오랜 시간 후 생겨날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못과 모아이는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간다. 특히 못은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뜬금없이 마지막에 못이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에서 인류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60억 인류, 더 작게 말하면 못이 다니는 반의 학생들조차 못에게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속에서 못은 학교를 다녔고, 그들이 없어도 못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왜냐면 아무도 못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모아이도 넘쳐나는 물질 속에서 스스로 배제시키고 있었던 터라 모든 경제권이 사라진 새로운 삶 속에서, 자신의 유일한 능력인 숟가락 구부리기를 하며 살기로 한다.

인류를 언인스톨 하면 어떻게 될까

소설가 박민규의 <핑퐁>은 재미있고 쉬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는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두 학생이 자신들의 삶을 비관하고, 더불어 인류에 불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박민규는 이 내용을 다양한 이야기들과 함께 전개한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 같기도 하고, 성장 소설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고, 더 깊이 생각한다면 철학 소설 같기도 하다.

특히 박민규의 소설 <핑퐁>에는 독특한 표현력이 있다. 문장 사이에 쉼표를 첨가하여 한 문장을 마치 두 세 문장과 같은 호흡으로 풀어낸다. 동시에 긴박한 심리 상태도 드러난다. 특정 문장을 강조할 때는 문장 위에 강조점을 찍거나, 한 줄 띄고 강조하고픈 말을 적은 뒤 다시 한 줄을 띄어 도드라지게 적었다.

또한 대화문, 독백 등이 문장 부호 표시 없이 하나의 문단속에서 지문처럼 흐른다. 그래서인지 세계를 초월하여 무의식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다. 두 소년 '못'과 '모아이'의 소망이 한낱 꿈속의 삶처럼 느껴진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들은 다시 학생 신분이고 바뀌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운명인 것처럼 말이다.

소설은 벌판의 중심에 놓인 탁구대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두 소년 '못'과 '모아이'이다. 못은 치수라는 따돌림 주도 학생이 머리를 때릴 때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모아이는 담임이 붙여준 별명이다.

모아이는 부잣집 아이로, 치수를 돈으로 살 수 있다. 경호원을 둘 수도 있지만 치수 패거리가 요구하는 돈을 주고 순순히 따르는 역할을 택했다. 돈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삶의 공허함이 있기 때문이다. 모아이는 혜성이 나타나 인류를 멸망시켜주기를 바랐다. 같이 따돌림을 당하는 못은 모아이보다도 소심하다. 못의 대화를 평균적인 글씨보다 작은 크기의 글자로 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돌림 당하는 두 소년의 성장기일까

못과 모아이는 세계가 멈춘 것 같이, 광활한 빈 공터에서 탁구를 치는 게 낙이다. 그들은 랠리를 시작한 후부터 세계가 다시 시작됨을 믿었다. 2%가 세계를 이끌고, 98%의 다수가 세계를 만든다는 세상의 불합리를 생각한다. 못과 모아이는 인생을 끌고 나가는 2%의 인간이 되진 못해도, 나머지 98% 인간에 속하길 바랐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렵다. 두 주인공은 자신들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에어컨을 만드는 것도, 석유를 캐는 것도,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도 심지어 누군가가 투신자살을 하는 것도 실은 다수결이다. 주인공들은 이런 다수결의 세계에서 다수에도 속하지 못함에 좌절한다. 못과 모아이를 포함한 많은 소심한 인간들이 함께 동아리를 만들어 지구가 멸망하길, 아니 인류가 사라지길 기원했다. 실천으로 옮기지도 않고,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 한 번 내보지도 않고, 그저 기원만할 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인류는 아무 방해 없이 유지됐다. 못과 모아이는 60억 인류 누구도 자신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낀다. 인류에서 배제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탁구대라는 세계에서 핑퐁핑퐁 탁구를 치는 것, 이 작은 세계를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박민규의 소설 <핑퐁>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힘들다. 의식의 흐름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무의식이 첨가된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작품을 다시 의식하며 읽을 때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고백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인류를 언인스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왜 아직도 살아가고 있을까. 숨어있는 내면을 끄집어내어 인류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부분을 묘사하고, 세계를 재설정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박민규는 또 다른 자아를 만족시켰고, 핑퐁거리는 탁구 소리를 들으며 <핑퐁>을 읽는 독자들 중 자신과 비슷한 자아를 지닌 이들을 짜릿하게 했다.

필자는 탁구를 치는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경쾌한 음을 생각하며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다. 맑은 소리의 핑 하나, 맑은 소리의 퐁 둘, 맑은 소리의 핑 셋, 맑은 소리의 퐁 넷, 맑은 소리의 핑 다섯….

덧붙이는 글 | <핑퐁>(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09 / 1만 1000원)



핑퐁

박민규 지음, 창비(2006)


태그:#핑퐁, #박민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