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회사 퇴근 후 오후 9시가 되면 첫째 아들과 함께 받아쓰기 연습을 한다. 그런데 이 시간에 배꼽 잡는 일이 터졌다. 나와 아이는 받아쓰기를 하기 전 발음을 익히기 위해 먼저 읽기부터 한다. 내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정확하게 따라 읽으며 발음해보도록 한다. 그런데...

숙제할 때 머리 아프다고 하는 아이

"자, '밧줄을 놓쳤습니다' 해봐"

아이가 내 입을 보며 따라 한다.

"밥줄을 놓쳤습니다"

"...??"

한 주에 열 문장씩 받아쓰기를 한다. 받침 글자에 무척 약하다. 그리고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하여 여러번 들려주고 따라하게 시켜야 한다. 그래도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받아쓰기 하는 첫째아들 한 주에 열 문장씩 받아쓰기를 한다. 받침 글자에 무척 약하다. 그리고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하여 여러번 들려주고 따라하게 시켜야 한다. 그래도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허걱! 밥줄을 놓치다니. 이러다가 정말 커서 밥줄 놓치고 사는 것 아닌가?' 기가 막혔다. 아내도 크게 웃더니 어이가 없어 나를 쳐다본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치른다.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급수별로 나와 있는 시험지를 보고 매주 열 문장씩 연습을 시킨다.

1학기 초반에는 받침이 없는 단어 나오다 한두 달 후에는 받침 있는 단어가 주로 나왔다. 2학기로 넘어가자 이젠 문장이 나왔다. 요즘 연습하는 받아쓰기 문장은 받침도 많고 주어와 부사, 형용사, 동사 등이 연결된 완성형 문장에 가까워지고 있다. 2학기 말 정도 되면 완전한 문장 자체를 연습하게 될 거다.

받아쓰기 점수가 70점이 넘으면 아내와 나의 칭찬이 이어진다. 90점이 넘으면 거의 잔칫집 분위기다. 아이도 크게 상기된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누구누구는 20점, 30점 맞았는데 자기는 90점이라고... 아이도 조금씩 점수로 비교되는 분위기를 알아가는 눈치다.

문제는 아이가 8살임에도 아직 대화할 때 발음이 대여섯 살 수준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집 안에서는 크게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해프닝처럼 '밧줄'을 '밥줄'로 읽는 아이.

수업 진도에 맞춰 국어라든지 수학 문제를 함께 풀어보면 발음이 맞지 않아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수에 대한 이해를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동생이랑 실컷 잘 놀다가도 막상 숙제할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다든지, 머리가 아프다거나 몸이 가렵다고 난리다. 하기 싫은 걸 하려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스트레스성 두통까지

얼마 전부터 아이에 대한 아내와 나의 교육 방침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2학기 초반까지는 아내와 나도 다른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아이를 교육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이가 학교를 폭파시키고 싶대."
"뭐라고? 무슨 그런 말을 해?"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가 봐."
"..."

그것뿐만이 아니다. 평일 저녁이나 휴일에 국어와 수학 익힘 공부를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처음에는 꾀병이려니 하고 무시하고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의 행동은 여전했다. 아이의 관자놀이를 짚어봤다. 내가 편두통으로 고생할 때의 느낌과 같았다. 다음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의 말은 '스트레스성 두통'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꾀병이 아니라 실제로 공부만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왔던 게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스트레스성 두통'이라니! 집에 와서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아, 공부하느라 힘들지? △△이 공부 못해도 괜찮으니까 아프지만 마, 알았지?"
"아빠, 저 내일 받아쓰기 백 점 맞을 거예요."

"백 점 못 맞아도 아빠가 사랑하는 거 알지?"
"네, 그래도 백 점 맞을 거예요."

경쟁의 울타리 미리 넣지 않기로

웃는 모습을 잘 그린다. 동물들과 곤충들과 모두 행복하게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가족을 그릴 때에도 엄마도 웃고, 아빠도 웃고, 동생도 웃고, 자신도 웃고 있다. 학교생활도 부담없이 자신있고 즐기며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 첫째아이가 그린 그림 웃는 모습을 잘 그린다. 동물들과 곤충들과 모두 행복하게 웃으며 서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가족을 그릴 때에도 엄마도 웃고, 아빠도 웃고, 동생도 웃고, 자신도 웃고 있다. 학교생활도 부담없이 자신있고 즐기며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승한

관련사진보기


아이가 조금 못하더라도 스트레스 주지 않기로 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업 수준은 어차피 학년이 넘어가면서 비슷해진다. 벌써부터 아이를 경쟁의 울타리에 넣고 싶지 않다. 뭐든지 잘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싸늘한 방 안에서 회초리 옆에 놓고 기죽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모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한 능선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을 가리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게다. 좀 기다리기로 했다. 건강하고 기죽지 말고 자신 있게,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자라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블로그에 중복 게재됩니다.
http://blog.naver.com/office3000/220165099223



태그:#스트레스성 두통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