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프>  1948년 작 히치콕의 최초 컬러 영화. 우리 말로는 <올가미>로도 번역이 되었다.

▲ 영화 <로프> 1948년 작 히치콕의 최초 컬러 영화. 우리 말로는 <올가미>로도 번역이 되었다. ⓒ 트랜스 애틀랜틱 픽쳐스


영화 속 대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성인자를 가진 사람은 어떤 도덕이나 규율에도 잣대지어 질 수 없으며, 열성인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살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살인의 계절 혹은 살인의 시간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열등한 사람들을 정당하게 죽임으로써 세상은 좀 더 우등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할 수 있다'

이에 반박하며 다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등과 열등한 차이를 누가 규정할 수 있나? 어떻게 같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나?'

역사적으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할 경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는 미개한 인종을 우월한 인종이 가르치며 교화한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제갈량은 촉한의 민심을 잠재우고 현재의 윈난성(베트남 북부지역)인 남만(南蠻) 지역을 토벌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은 바로 변방의 오랑캐들에게 황제의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함이었다.

히틀러가 유럽을 침공하며 내세운 명분 또한 아리안족 우월주의를 강조하며 슬라브족과 유대인, 집시들을 핍박하는 논리였다. 이는 또한 대동아경영을 주장하며 한반도 및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손아귀에 쓸어 담으려 했던 일본식 군국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왜 뜬금없이 <로프>란 영화이야기를 하려다가 이런 소모적 논쟁을 끌어오는지는 히치콕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당시 세계는 1, 2차 대전을 겪으며 이데올로기적 돌파구를 찾지 못해 음울하게 거리를 헤매는 집단 노숙자와도 같았다. 이는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독교적 가치가 무너진 서구 사회에서 그 대안을 찾다가 니체가 역설한 권력의지와 초인사상에 매료된 것과 같다.

공리주의 또한 행복을 계량화하여 소수가 희생함으로써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살인마저 공익을 위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주의는 1950년엔 미국 전역에 불어 닥친 매카시열풍에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당한 살인에 대해 논쟁하는 브랜든과 켄틀리 데이빗 우등한 사람들이 열등한 사람들과 미치광이들을 정당하게 살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브랜든과 인간에게 그럴 권리도 없으며 그런식으로 인류를 경멸하지 말라고 대변하는 켄틀리 데이빗(죽은 데이빗의 아버지)

▲ 정당한 살인에 대해 논쟁하는 브랜든과 켄틀리 데이빗 우등한 사람들이 열등한 사람들과 미치광이들을 정당하게 살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브랜든과 인간에게 그럴 권리도 없으며 그런식으로 인류를 경멸하지 말라고 대변하는 켄틀리 데이빗(죽은 데이빗의 아버지) ⓒ 트랜스 애틀랜틱 픽쳐스


1948년에 미국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이 만든 영화 <로프(Rope)>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심취했던 그는 영화 곳곳에 그만의 생각을 표현한 시각적 장치를 만들었고, 배우들의 대사에는 인간의 저변에 깔린 무의식이 내뱉는 진실이 용해되어 있다. 또한 위의 이야기처럼 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니힐리즘과 공산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사를 통해 관객을 깊게 끌어들이고 있다.

편집이 없는 영화

영화 <로프>는 카메라 편집이 없는 영화이다. 일반적으로 편집은 영화적 상상력과 시각적 효과를 최대치로 자극시키는 중요한 장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프>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의 대표작 <사이코>에서는 여주인공의 샤워 장면만을 위해 70컷 이상의 편집을 사용한 것으로 봤을 때 상당히 실험적인 영화라 볼 수 있다.

당시 카메라 필름의 길이는 10여분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 그 10여 분의 시간을 온전히 롱테이크로 잡아낸다. 그러다 필름의 길이가 다했다 싶으면,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등이나 벽에 가까이 다가가며 암전이 된다. 그리고 바로 다시 롱테이크로 다른 필름을 소화한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 또한 뉴욕의 고층건물이 보이는 고급 아파트 내로 한정된다. 초반 3~4분 정도 아파트 밖을 보여주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줄곧 실내에서 모든 사건이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그래서인지 영화 <로프>는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연극이 시작하는 시간이요, 영화의 엔딩 컷은 연극의 막이 내려오는 시간이다. 여기에서 어떤 시간의 압축이나 뛰어넘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80분간 아파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는 것 뿐이다. 이를 위해 히치콕은 배우들의 동선은 물론 그들이 향하는 시선과 배우들 간의 거리 및 카메라 움직임까지 사전에 완벽하게 계획했다

인간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히치콕

스릴러 영화답게 감독은 관객에게 영화 초반부터 살인 장면을 목격하게 한다. 고등학교 동창인 브랜든 쇼와 필립은 친구인 데이빗을 불러 로프로 목 졸라 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데이빗의 시체를 책장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에 그 위에 식탁보를 깔고 음식을 올려놓은 후 파티를 시작한다. 이후 파티 초대 손님으로 죽은 데이빗의 약혼녀인 자넷과 그의 아버지, 이모, 자넷의 옛 연인이었던 케네스, 브랜든과 필립의 옛 스승인 루퍼트가 등장한다.

초대 손님들은 데이빗의 시체가 들어 있는 책장 위의 음식을 먹으며 파티를 시작한다. 등장인물 간 묘한 관계와 신경전이 관객들로 하여금 두 젊은이들의 살인행위가 드러날까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브랜든과는 달리 예민하고 소극적인 필립은 옛 스승 루퍼트의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에 자주 실언을 하게 된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스승답게 제자들의 눈빛과 그들이 당황할 때 드러나는 사소한 말투까지 해석해 내며 살인의 실체에 거의 다가서게 된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대사는 무의식의 파편을 드러내는 인간의 심리를 나타내고, 살인자의 복잡한 심경을 자극하는 루퍼트의 계획된 언행은 범인 스스로 범인임을 자백하게 만든다.

루퍼트와 필립, 브랜든과의 대화에 집중하라! 범죄심리학 선생답게 루퍼트는 집요하게 브랜든과 필립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말을 더듬는 브랜든과 당황하는 필립. 그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들이 데이빗을 살해하였슴을 암시한다.

▲ 루퍼트와 필립, 브랜든과의 대화에 집중하라! 범죄심리학 선생답게 루퍼트는 집요하게 브랜든과 필립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말을 더듬는 브랜든과 당황하는 필립. 그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들이 데이빗을 살해하였슴을 암시한다. ⓒ 트랜스 애틀랜틱 픽쳐스


루퍼트와 필립의 대화, 루퍼트와 브랜든의 대화 혹은 이미 죽은 '데이빗'과 브랜든, 필립과 관련된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 보자. 살인자로서 초대 손님들과 대화하는 동안 그들의 무의식은 은연 중에 자신들이 데이빗을 로프로 살해했음을 시인하고 있다.

배우들의 철학적 논쟁은 왜?

히치콕은 여타 영화와 달리 배우들의 대사에 상당히 철학적이고 당시 만연하였던 사회적 담론을 표현하고 있다.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로프>는 1, 2차 대전 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인간존엄의 상실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브랜든과 필립이 있으며 그들은 오늘의 초대 손님인 루퍼트의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브랜든과 필립은 재미로 사람을 죽이고, 파티에 온 손님들이 시체가 들어있는 책장 위에서 음식을 먹게 하며, 과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챌까 아슬아슬한 희열을 느끼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학생들이 배웠을 지난 시대의 무질서하고 무개념인 사회에 대한 조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히치콕 그 자신도 금발의 백인 여성과 키 크고 위트 넘치는 백인 남성을 선호하였다.

어쩌면 감독 또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인종차별적 비판'을 우등한 인간들의 정당한 살인이라든지, 니체의 초인이론과 히틀러나 제국주의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열등한 인간들에 대한 사회적 고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60여 년 전 영화이기 때문에 현재의 영화 문법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조여지는 관객들의 감정선은 잔뜩 움츠리며 '내가 살인자요'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주고 만다.

히치콕은 영화 장면에 많은 장치를 숨겨 놓았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실없이 던지는 한마디마다, '데이빗은 죽었다' 혹은 '그의 시체는 이 방안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살인자는 브랜든과 필립이다'라는 암시가 숨어 있다.

왼쪽부터 필립, 루퍼트, 브랜든 파티가 끝난 후 담배 케이스를 찾으러 왔다는 핑게를 대고 다시 아파트로 올라온 루퍼트는 데이빗이 브랜든과 필립에 의해 목졸려 죽고 책장 안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된다.

▲ 왼쪽부터 필립, 루퍼트, 브랜든 파티가 끝난 후 담배 케이스를 찾으러 왔다는 핑게를 대고 다시 아파트로 올라온 루퍼트는 데이빗이 브랜든과 필립에 의해 목졸려 죽고 책장 안에 누워 있음을 알게 된다. ⓒ 트랜스 애틀랜틱 픽쳐스


뿐만 아니라 감독은 대사 중에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든지 '케리 그랜트'같은 배우들을 언급하며 관객과 장난을 치고 있다. 이런 매력적인 영화의 키(Key)를 하나씩 찾아내며 곱씹어 본다면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로프>를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로 <로프>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천재성을 가진 두 남학생들은 게이였으며, 또한 게이였던 스승으로부터 범죄심리학을 배웠다. 두 학생은 재미로 14살짜리 어린아이를 죽이고 타자기로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어린아이의 부모에게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재미로 했던 살인행각은 경찰에 의해 드러나게 되고 감옥에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본인의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됩니다.
http://blog.naver.com/office3000/220165539115
로프 올가미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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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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