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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참 징그럽네요. 신해철이, 우리의 마왕이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아직 너무 젊기에, 그의 죽음이 석연찮기에, 그가 우리에게 주었던 위로가 너무 크기에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 글의 기본 틀은 2007년, [신해철이 출마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정치컨설팅 용으로 썼던 글이지만, 그가 갔으니 추모의 글로 바꾸어 게재합니다. 우리 기억의 한 편에 전설로 머무를 마왕, 신해철을 추모합니다.

사실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그리고 '신해철'이 진행하는 방송이 공중파를 탄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는 MBC 백분토론에 정식 패널로 출연해서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체벌 금지> 등 사회적 이슈화가 될 만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거침없이 설파했습니다. 간통죄 폐지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락 그룹 대중가수답게 후드 티와 장갑을 끼고 나온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개인의 미니홈피에서는 한 술 더 떴습니다. 복장불량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이라는 것을 걸어놓고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옳지 못한 모습]은 아니라며 좀 세련되라고 일갈하기도 했지요.

그가 DJ로 활동했던 고스트네이션을 듣다 보면 그의 생각과 그의 돌출적인 행동까지 의미를 또박또박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고스트네이션이라는 자기의 [진지]를 구축하고서 열혈 마니아그룹으로부터 [교주]로 추앙되었습니다. - 음악방송에서 음악을 한 번도 틀지 않고 그저 음악계의 문제를 열혈 토로하는 그의 음악적 집착에 누리꾼들은 '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 그만큼 그의 색깔이 진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점잖은(?) 음악방송만 듣던 사람이 사실 이 고스트네이션을 듣게 되면 보통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뭐.... 이따위 방송이 다 있어?"
"어랏? 이러고도 방송이 되네?"
"오호!! 재밌다!!"

90년대에 70년대를 노래했던 락커

제가 충격으로 받아 들였던 노래는 1996년에 발표한 앨범'정글스토리'의 '70년대에 바침'이라는 노래였습니다. 박정희 피격소식을 노래의 앞에, 전두환의 후보수락 연설을 뒤에 배치한 충격적인 실험음악에 전율했고, 전두환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그만 끄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70년대를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가위를 든 경찰들   
지금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70년대를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 정글스토리, 1996, 신해철 작사․곡․편곡

그가 인기절정이었던 90년대에 기억하고 싶지 않고 불편해 할 수 있었던 70년대를 노래했다는 것은 "그때는 모든 게 그랬"지만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노래했을 것입니다.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있었고 "가위를 든 경찰들"이 장발족을 단속하던, "지금와선 이상하다 해도 그땐 모든 게 그랬"던 그 "촌스럽"던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사실은 촌스러운 게 아니라 살풍경한 시절이었죠. 그래서 그의 앨범도 약육강식의 '정글'을 주제로 한 '스토리(이야기)'였나 봅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국민들이 맘 조리면서 카톡을 닫고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시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신해철의 음악적 영감을 받은 어느 후배 가수가 나중에 2014년을 비웃으며 '2010년대에 바침'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란 보장은 누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해철 음악을 듣다보니 참 심란합니다.

민물장어를 노래했던 그는 어떤 꿈을 꾸었나?

그는 노래를 업으로 삼는 대중 가수였습니다. 보통 대중 유명인은 자신의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어중간하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정확하게, 명징하게 표현을 했지요. 고스트네이션도, 100분 토론도 에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의 논법자체가 저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최상으로 올릴까를 목표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의 논법은 흰색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까만색을 칠하면 흰색이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적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다면 예의상으로는 주먹으로 한대 쳐야 맞는데, 외투가 너무 두껍다면 망치로 때려 버리는 거죠. 욕먹더라도 망치로 때려야 주먹으로 때리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거고, 그래서 적들에게(?) 많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는 거죠."

자신의 논리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주위에 까만색을 칠한다는 것은, 그리고 예의상 주먹으로 한 대 쳐야 하는데 망치로 때려버린다는 것은,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방송토론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죠.

이 깡다구 사나이 신해철,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며 열정적으로 살아갔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은 도대체 어떤 꿈이었을까요?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The Best Of Shin hae-Chul / Struggling, 2002, 신해철 작사․작곡

신해철이 가고자 했던, 꿈꾸었던 민물장어의 꿈은 "두고 온 고향"또는 "보고픈 얼굴"이나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져야만 "좁고 좁은"문을 통과할 수 있고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것 없이 "자존심"하나만 겨우 남는 곳이랍니다. "강들이 모여 드는 곳"이고 "성난 파도 아래"라고 합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듬해에 문화부 장관 후보에 거론되던 즈음,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장관 나부랭이나 하려고 음악을 해온 줄 아느냐"고 대꾸한 것을 보아서 그 꿈은 권력이나 돈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친 잠자리"조차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두렵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보아 아주 원대하고 커다란 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해철은 그까짓 병아리 한 마리 '얄리' 가 죽은 것 때문에 노래까지 만든 사람인데, 도대체 어떤 꿈이기에 이렇게 헷갈리게 할까요?

약속하고, 헌신하고,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운명이라는 사나이

신해철은 고음불가라는 비아냥이 돈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그의 최초의 싱글앨범 'Here I stand for you' 는 그가 꿈꾸었던 민물장어의 꿈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 The Best Of Shin hae-Chul / Struggling, 2002, 신해철 작사․작곡

그룹 N.EX.T의 싱글앨범에서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노래하는 신해철이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따위의 아주 흔한, 어쩌면 진부하다고들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는다고, 그것도 아주 "영원히"믿는다고 읊조리고 있습니다.

사실 신해철이 내뱉는 말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모공연에서는 직설적으로'욕'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국회도 19금"이라든지 "대마초의 유해성과 중독성은 과장됐다."등의 이야기는 지금도 듣기 거북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이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나서도 그를 폄훼하고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악플이 지금 현재 달리고도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뉴스가 지금도 나오고 있지요.

그런 그가 꿈꾸었던 것은 지극히 단순했던 것이었습니다. 약속하고 헌신하고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혜성처럼 등장한 88년 대학가요제 이후 그는 팬들과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항상 뉴스에 가운데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중 음악가로 '헌신'했으며 가족과 팬들을 '영원'히 '사랑'했지요.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듯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왕 신해철도 잊혀 질 수 있겠지요. 하지만 쉽사리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민물장어의 꿈이 약속, 헌신, 영원, 사랑 그리고 운명이라는 평범한 단어라는 것이기에 이 단어들이 지구상에 없어지기 전에는 그의 이름도 지워지기 힘들 것 같네요.

끝으로, "굿바이~ 마왕 해철형! 형이 있어서 그동안 행복 했어! 아픔 없는 곳에서 얄리하고 노짱하고 편하게 쉬세요!"
첨부파일
[추모] 신해철.pdf

덧붙이는 글 | 뱀발 : 글을 쓰다가 대통령이 국회에 시정연설을 왔지만 세월호 유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도대체‘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국민에게 ‘헌신’하겠다는 다짐은 어디에 있는지, 당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태그:#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노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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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한, 1969년 서울 산(産), 2000년부터 방송에 관심 있어 주변을 맴돌다 2005년 우연히 얻어 걸린 라디오 전화인터뷰부터 시사평론 방송시작, 2014년부터는 경제 Agenda에 집중, 시사경제평론을 하면서 몇몇 경제채널 출연하고 있음,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종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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