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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공립고등학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는 고교서열화를 강화했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일반고는 '똥통학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런 가운데, 일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혁신학교로 탈바꿈한 고교에서는 행복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혁신고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일반고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 편집자말 [편집자말]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에서 학생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등교하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에서 학생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등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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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 한 학생은 "어른들이 우리학교를 볼 때 'SKY'에 몇 명 보냈는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3년 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고 어떤 꿈을 설계했는지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옥여고 한 학생은 "어른들이 우리학교를 볼 때 'SKY'에 몇 명 보냈는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3년 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고 어떤 꿈을 설계했는지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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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에 배정받았다고 우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금옥여고 3학년생 천혜린양은 2012년 3월 교실의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김종구 금옥여고 교무부장은 "당시 목동의 한 중학교에서 내신 성적 최상위권이었던 학생도 우리 학교에 배정받았다"면서 "부모가 서울시교육청에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전학갔다"고 말했다.

금옥여고는 '금오크'라 불렸다. '오크'는 판타지 소설·영화·게임에 등장하는 괴물 종족이다. 금옥여고 학생들의 자존감은 높지 않았다. 이 학교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정랑고개 기슭에 있다. 정랑고개 너머에는 목동 아파트단지가 펼쳐진다. 금옥여고는 '사교육 1번지'라는 목동 바깥에 있는 학교다. 양천구청에서 입시설명회를 하면, 금옥여고 차례 때 목동 학부모들이 대거 빠져 나갔다.

고교선택제가 처음 시행된 2010년 금옥여고 신입생은 예년에 비해 100명이 줄어든 300명이었다. 목동 학부모 눈치를 본 서울시교육청이 금옥여고 배정 인원을 줄였다는 뒷말이 나왔다. 김종구 부장은 "항의 못하는 부모의 학생들이 배정받았다, 2011년 신입생의 27.7%가 저소득층 자녀였다"면서 "학생들은 열패감을, 교사들은 무력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목동에 사는 문화영양은 2012년 입학 직전 부모와 함께 금옥여고를 찾았다. 당시 혁신학교로 지정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화영양은 "다양한 교육 과정을 보고,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의대 3곳에 1차 합격한 그는 "목동에 있는 학교로 간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금옥여고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목동 학교는 삭막하고, 우리 학교는 활기차다"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에서 학생들이 직접 마련한 '아침 활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친구들끼리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 쓰고 사과를 건네주는 애플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옥여고는 학교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교사들의 강압적인 생활지도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학생자치활동을 만들어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에서 학생들이 직접 마련한 '아침 활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친구들끼리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 쓰고 사과를 건네주는 애플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옥여고는 학교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교사들의 강압적인 생활지도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학생자치활동을 만들어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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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뜻을 담은 '노란 리본'을 학교에서 달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지만, 학생들은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일반 승객들을 애도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적어 교실 복도에 붙여놓았다.
 교육부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뜻을 담은 '노란 리본'을 학교에서 달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지만, 학생들은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일반 승객들을 애도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적어 교실 복도에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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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 동아리 '탐구하고 행동하라'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지난해 동아리 축제 때 학생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알리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금옥여고 동아리 '탐구하고 행동하라'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지난해 동아리 축제 때 학생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를 알리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금옥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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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는 아침 등교부터 다른 학교와 다르다. 교문을 지키고 있는 건 복장을 검사하는 교사의 매서운 눈초리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꾸린 아침활력 프로젝트다. 지난 23일에는 친구들끼리 사과편지와 사과를 주고받도록 하는 '애플데이' 행사가 열렸다. 이날 '고딩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계단에서 낙서를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 층계마다 '사랑해', '불금이다'와 같은 글자를 직접 붙였다. 학교는 낙서를 떼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러한 낙서를 오히려 권장한다. 미술 수업 시간을 이용해 낙서를 하러 가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학교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추모 게시판이 있다. 2학년 1반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곳에는 100여 개의 포스트잇과 리본이 달렸다. 한 학생은 "하늘에서 못다 이룬 꿈 이루고 꼭 행복해야 해"라고 적었고, 다른 학생은 "(실종된) 모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썼다. 학생들은 실종자가 모두 돌아올 때까지 게시판을 운영할 예정이다.

동아리 '탐구하고 행동하라'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동아리 축제 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6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동아리를 만든 황수연양은 "동아리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원을 해준다"면서 "목동에 있는 학교는 삭막한 분위기인데, 우리 학교는 활기차다"고 말했다. 현재 50여 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고3 학생들 가운데 입학 당시 긍정적인 느낌을 받은 비율은 26.82%였다. 부정적인 느낌을 받은 학생은 전체의 35.15%로 더 많았다. 세 학기 뒤인 2013년 9월 조사에서 학교에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은 전체의 54.35%로 늘었다. 부정적인 답변을 한 학생은 11.23%에 불과했다.

문화영양은 "명문여고에 간 친언니는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성적과 상관없이 모두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전했다.

꿈꾸게 하는 학교... "다른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해"

주혜연 금옥여고 학생이 자신의 18년 뒤 모습을 담은 <나의 커리어 로드맵>을 들어보이고 있다.
금옥여고는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 칸만 채우는 것이 아닌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주혜연 금옥여고 학생이 자신의 18년 뒤 모습을 담은 <나의 커리어 로드맵>을 들어보이고 있다. 금옥여고는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 칸만 채우는 것이 아닌 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꿈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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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 1학년 4반 교실 벽면에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적어놓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상이나 교실 벽면에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적어놓고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금옥여고 학생들은 자신을 꿈을 적어놓고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금옥여고 1학년 4반 교실 벽면에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적어놓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상이나 교실 벽면에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을 적어놓고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금옥여고 학생들은 자신을 꿈을 적어놓고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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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옥여고 학생이 미술 수업 시간에 학교 계단에서 자신의 낙서를 붙이고 있다.
이날 낙서를 과제물로 낸 미술 선생은 "낙서를 통해 요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금옥여고 학생이 미술 수업 시간에 학교 계단에서 자신의 낙서를 붙이고 있다. 이날 낙서를 과제물로 낸 미술 선생은 "낙서를 통해 요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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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살리고 낫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피부과 의사로 진로를 확실히 정했죠. 워낙 제가 봉사를 좋아하는데, 그 점을 살려 피부병으로 고민하는 나라로 해외봉사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아요."

서른다섯 살 주혜연 의사의 인터뷰 내용이다. 금옥여고 2학년 주혜연양은 자신의 18년 뒤 모습을 직접 만든 8쪽짜리 책 <나의 커리어 로드맵>에 담았다.

금옥여고 학생들은 모두 2학년 1학기 때 이러한 책을 만든다. 주혜연양은 "진로 시간에 책을 만들면서 내 꿈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자를 꿈꾸는 3학년 천혜린양은 "미디어 비평과 같은 창의적 체험활동 그리고 진로수업을 통해 꿈을 정할 수 있었다"면서 "입학 때는 4년제 대학에 가기 어려운 성적이었지만, 이후 꿈을 좇아 공부를 했더니 성적이 좋아졌다, 다른 학교에 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올해 2월에 졸업한 성하경씨는 "학교에서 입시 부담을 주지 않고, 꿈을 찾도록 도와줬다"면서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다, 3년 동안 한 번도 학교에 가기 싫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임한욱 진로상담부장은 "다른 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 칸만 채우고, 진로 수업 시간에는 자습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금옥여고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진로상담이 쇄도해 방학 때도 학교에 나와야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나의 커리어 로드맵> 만들기는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도 실렸다.

일반고에서는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금옥여고는 어떨까. 이종배 교장은 "지금까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못했지만, 내년부터 기본 수학 과정을 마무리하는 2학년 1학기 이후, 심화 수학과정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이 수학 대신 미술과 음악 등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SKY 진학률로 학교를 평가하지 말아 달라"

금옥여고 영어 교사가 4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수업컨설팅룸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옥여고 교사들은 원맨쇼 수업이 아닌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자신의 수업이 녹화된 영상물을 들여다보며 수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수업혁신에도 노력하고 있다.
 금옥여고 영어 교사가 4대의 카메라가 설치된 수업컨설팅룸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옥여고 교사들은 원맨쇼 수업이 아닌 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업을 하기 위해 자신의 수업이 녹화된 영상물을 들여다보며 수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수업혁신에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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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컨설팅룸에서 진행된 1학년 영어수업. 보통의 교실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교사가 움직일 때마다, 천장에 달린 카메라도 같이 움직였다. 학생들을 향하는 카메라도 3대나 있었다. 4대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은 실시간으로 교실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자동으로 저장돼 누구나 볼 수 있다. 김종구 부장은 "수업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금옥여고가 처한 현실을 제도 탓만으로 돌리지 않는다. 금옥여고가 혁신학교로 지정됐을 때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도 수업 혁신이었다. 국어교사 이종호씨는 "처음엔 큰 부담이었다"면서도 "내 수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고칠 수 있어서 수업컨설팅룸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23일 이 학교 국어수업을 참관한 후 "상당히 재미있게 (수업) 하신다, 학생들이 몰입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9월 이 학교로 온 유인숙 교감은 "많은 학교에서는 예산이 곧 일이다보니, 예산 내려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금옥여고 교사들은 많은 업무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조사에서 교사의 78.6%가 내년 혁신학교 재지정을 희망하고 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7.1%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교사들의 노력에도 혁신학교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 진학률로 고교를 평가하는 분위기 탓이다. 김종구 부장은 "많은 혁신학교는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지역에 설립됐다"면서 "혁신학교와 우수 학생을 독점하는 자사고 등은 출발선이 다르다. 단순한 서울 주요 대학 진학률로 학교를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금옥여고의 대학 진학률은 65.4%다. 양천·강서구 고교 28곳 중 상위권이다. 적성을 살리기 위해 전문대에 가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서울 주요 대학 진학률로 따지면, 금옥여고는 좋은 학교는 아니다. 문화영양은 "어른들이 우리학교를 볼 때 'SKY'에 몇 명 보냈는지가 아니라, 학생들이 3년 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학교를 다녔고 어떤 꿈을 설계했는지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기획 : 혁신고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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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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